사랑하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는 남자가 있다. 3년 내내 지독히도 요란하게 짝사랑했으나 딱지를 맞았다. SBS 수목극 ‘질투의 화신’ 속 표나리(공효진 분) 입장에서 본 이화신(조정석 분)은 그런 남자다. 잘났지만 독설이 심한, 남의 가슴 무던히도 아프게 하더니 제 가슴(유방암)에도 멍울이 지고 만 남자. 반면 온통 다 마음에 드는 완벽한 남자가 있다. 재벌 3세인 그는 이화신의 친구 고정원(고경표 분)이다. 도무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는 좋은 남자. 그런데 이 말간 얼굴의 좋은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왠지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 못된 남자 이화신을 떨쳐내는 게 잘 되지 않는 것처럼. 표나리는 사랑받는 일을 선물 받기쯤으로 여기고 차곡차곡 쌓아둔다. 기상 캐스터에서 우여곡절 끝에 꿈에 그리던 아나운서가 된 뒤, 멘탈도 ‘갑’이 된 걸까. 이화신은 주인공답게, 아니 ‘질투의 화신’답게 집요한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질투와 상사병, 찌질함, 애걸복걸의 애정표현은 매회 끝도 없이 진화한다. 고정원의 전투력도 대단하다. 두 사람은 비록 승부욕일지라도, 망가지는 걸 기꺼이 감수 중이다. 매력적인 표나리만 ‘셋’이 함께이길 바라기에, 갈수록 이
이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대중문화가 사랑을 그려내는 일련의 흐름을 짚어보면, 당대의 간절함이 짐작되기도 한다. 멀리는 ‘시경(詩經)’에서도 3천년을 이어온 인간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고려가요가 전하는 곡진함도 여전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할 때의 마음은 같은 것일까.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동명의 웹소설을 바탕으로 한 궁중 로맨스다. 주연배우 박보검의 눈빛 연기가 화제다. 거의 ‘사랑’ 그 하나만을 남기고, 다른 나머지 모든 것을 ‘구름’ 뒤로 감춰버린 채 소꿉놀이 하듯 빠져서 보라는 주문을 시청자에게 걸고 있다. 남장을 하고 궁에 들어가 내시가 된 홍라온 역할의 김유정은, 역대 유사 드라마 중 가장 남장이 안 어울린다. 전혀 남성스럽지 않다. 대놓고 여자아이다. 여자도 아닌 여자아이 말이다. 제작진은 일부러 이런 캐릭터에 이런 배우를 고른 듯하다. 세자는 홍라온을 처음 본 순간부터 조금도 헷갈릴 필요가 없었다. 동성애 취향인지를 고민하는 에피소드 따위는 사족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여자였고, 세자는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면서도 여유로웠다. 게다가 이 ‘내시’는 실제적인 ‘남여상열지사’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소녀인데
어지럽다. 이 콘텐츠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극일까? 제작진의 말마따나 ‘방송 사상 최초의 팩추얼 드라마’인가? 다큐멘터리 속에서 무명배우들이 하던 ‘재연장면’에 유명 배우를 등장시킨 것인가? ‘임진왜란 1592’는 KBS와 중국 CCTV가 공동 제작한 5부작 기획물이다. 편성도 일단 ‘KBS스페셜’로 돼 있다. 기존 사극 보다 역사적 고증에 충실했다는 ‘팩추얼 드라마’임을 강조한다. 어디까지나 제작진의 주장이다. 제목부터가 서기 1592년에 있었던 한중일 3개국의 ‘전쟁’에 대하여, 그야말로 3국의 주장을 골고루 할당한 전개였다. 서구식 아니 제국주의식 관점이 이미 들어가 있다. 그야말로 양비론도 아닌 ‘삼비론(?)’을 보는 기분이었다. 3국 모두의 눈치를 보며 만든 콘텐츠가 아닌가. 당연히 비중은 제작비를 많이 댄 또는 수익이 날 것 같은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중국 방송사의 자본으로, 사상최초로 ‘한국 공영방송’이 중국 시청자들을 위해 스스로 그런 일을 했다. 주인공은 단연 첫 등장부터 강렬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김응수 분)다. 당연히 이순신(최수종 분)은 비중으로도 맞수가 되지 못한다. 이순신의 짝은 마지막회에서 보듯 명나라 장수 ‘진린’으로 보인다
길은 있을까. 그저 막연한 허상에 불과했던 것일까. MBC 드라마 ‘W’는 현재 완연히 길을 잃었다. 창도 문도 없이 사방이 막힌 집 안에 갇혀 ‘마지막회’의 압박에 시달리는 남녀 주인공들처럼 드라마의 ‘맥락’도 같은 신세다. 들어가는 문은 그럴듯했는데 나오는 곳은 지나치게 허술해져 버렸다. 초반에는 발상의 신선함과 빠른 전개로 눈길을 끌었던 드라마가, 이젠 (어떻게 끝난다 해도) 별로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가 돼버렸다. 아무리 ‘공중부양’과 ‘차원 이동’을 남발하고 키스신에 공을 들여도 화면에서는 힘이 빠져 나갔다. 실사에서 만화로 넘어가는 마술 같은 장면들의 극적 재미도 차츰 지루해졌다. ‘W’는 현실과 웹툰 세계를 오가며 두 세계의 판타지를 극대화시킨 드라마다. 오직 만화에서만 가능할 상상력이었지만 이 오글거리는 로맨스와 복수극도 처음엔 탄력이 있었다. 두 세계가 각자의 경로를 탄탄하게 구축했기 때문이다. ‘맥락’ 없이는 말판과 배경이 함부로 움직이거나 넘나들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래서 공존 불가의 두 세계의 경계에서 사랑에 빠진 남녀는 딱 드라마틱하게 애절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설정들은 간단히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바뀐다. 벽은 없다.
엄마들은 초조해 보였고 아들들은 느긋했다. 아들은 평소 모습을 드디어 어머니 앞에 공개한 것이고, 어머니만 그걸 몰랐던 듯하다. 아들 결혼이 여생의 목표인 듯한 고령의 어머니들은, 중년의 아들들을 물가에 둔 아기 바라보듯 했다. 파일럿 방송에서 정규편성을 따낸 SBS 신설 예능 ‘미운 우리 새끼’는 평균나이 ‘생후 509개월’이라는 희한한 단어를 등장시켰다. 그나마 아직 30대인 허지웅이, 김건모와 김제동의 ‘월령’을 낮춰준 덕이다.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흥미롭고 오싹했다. 오싹함이야말로 여름에는 최고의 짜릿함이다. 개인적으로 이건 거의 납량특집이다 싶었다.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통할 상상력이고 기획 같다. 이런 ‘육아일기’라니! 반백을 바라봄에도 개월 수를 세어야 하는 어떤 세대라니! 예전 같으면 (이른)손주를 볼 법도 했을 나이에, 단지 법적 결혼을 안했거나 또는 결혼제도에서 해지되었다는 이유로 ‘육아일기’를 다시 쓰는 엄마 품으로 끌려들어간 셈이다. 당연히 파일럿 방송 시청소감 중에는 비난도 있었다. 아마 출연자 나이 또래 시청자들의 느낌은 경악 그 자체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놓쳐선 안 될 게 있다. 주인공은 ‘관찰카메라’ 속의 늙
능력자들이 이렇게나 많았을 줄이야! 그 사랑과 탐구의 역사가 어찌나 다양하고 방대한지 놀라울 뿐이다. 목요일 밤 MBC ‘능력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좀 과장하자면 소우주의 운행이라도 살짝 엿보는 기분이다. 예능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어떤 한 사람의 가장 내밀하고 탄탄한 ‘덕후’의 세계가 주는 감탄은 스튜디오를 존경심으로 가득 채우곤 한다. 돈이 되기는커녕 자신의 돈과 시간과 체력을 한없이 들여야만 덕후가 된다. 유용성을 생각했다면 시작도 말았어야 할 그 장구한 덕질은 애초부터 ‘쓸모’ 바깥에 존재한다. 주변의 온갖 지청구와 무시 속에서도 꿋꿋이 그 ‘사랑하는 것’을 지켜온 우직함은 열정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파일럿 프로에서 정규 편성이 된 후 27회 동안 ‘능력자들’에는 전국의 독특한 ‘덕후‘들이 출연해 내공을 펼쳐 보이며 매회 놀라움을 주었다. 덕후란 한 분야에 빠져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일본어 ‘오타쿠’에서 생겨난 신조어다. 이 프로그램은 첫 회 첫 시작부터 이를 설명하며, ‘세상이 덕후를 존경하다’라는 자막도 띄웠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덕후를 ‘존경’하지는 않으며 어쩌면 그간 무관심했던 게 아닐까. 좋아서 하는 일에, 우리사회는 그간 별로
노래는 처음에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세상에 나오지만, 이윽고 고유한 생명체가 되는 듯하다. SBS ‘일요일이 좋다-판타스틱 듀오’를 시청하고 나면 노래에 휘감기는 기분이다. 노래는 귀로 들어와 마음을 출렁이게 한다. 5초만 보려다 빠져들어 다 시청하고 말았다는 소감, ‘이게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감동시키는 걸까요.’하는 댓글들이 이어진다. 판타스틱 듀오는 원래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부른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전송하면 그 중 최고의 듀엣 파트너를 찾는 노래 대결이다. 스마트폰에서 에브리싱 앱을 내려 받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첫 방송에서 가수 장윤정은 일흔넷의 ‘칠순 택시’ 서병순 씨와 듀오가 됐다. 첫 회부터 국가대표와 국민대표의 화음은 기대 이상의 열창과 감동을 낳았다. 같이 부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같이’ 부르려면 ‘혼자’ 부를 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서로에 대한 발견, 배려, 격려, 융합이 자연스레 어우러져야 비로소 듣는 이가 ‘화음’이라 부를 무엇이 가능해진다. 이 프로그램은 올 4월 17일 정규편성 됐다. 현재 5회까지 방송되는 동안 여기서 재탄생된 노래들은 폭발적 조회수를 기록하
도올 선생님이 돌아오셨다. 4년만의 TV 강의는 JTBC <차이나는 도올>을 통해 일요일 밤 8시30분에 방영된다. 12회 예정인데, 이제 3회가 남았을 뿐이다. 본방보다 다시보기의 시청률이 현저히 높은 프로그램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물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시청을 권할 만한 포맷이다. 굳이 ‘예능’의 형태로 찾아온 것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차이나는 도올> 1강에서 ‘도올 선생님’은 첫 등장부터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시진핑을 알아야 하는가? 현재 14억 중국의 1인자인 그를, 우리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2007년 이전까지는 완벽하게 전 세계적으로 무명이었던 시진핑. 14억 중의 한 명에 불과했던 그가 국가주석이 된 것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드라마 같고, 이후 부패척결에 중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이상’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그의 행보와 지도력에도 귀가 솔깃해졌다. 단편적인 보도와 뉴스들만으로는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 스케일과 디테일을 보여준다. 도올 선생님은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선언한다. “중국은, 우리한테 던져진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
왜 로맨스 드라마는 성공하기 힘들까? 대중은 늘 새로운 로맨스물을 기다리지만, 이 장르야말로 잘 만들기가 몹시 어렵다. 성공은 거의 보장 못한다. 우선 두 가지 양립 불가능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로맨스 드라마는 현실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되 절대 현실의 냄새를 피워서는 안 된다. 개연성은 있어도 현실의 그림자는 못 느껴야 한다. 천사 같은 선남선녀 주인공은 필수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온갖 아름다운 명분과 헌신도 등장해야 한다. 오직 그 드라마 속에만 있는 판타지 세상은 최대한 그럴싸해야 한다.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 그럼에도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디테일이 주는 정보들을 잊고 드라마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실상 로맨스물의 ‘기본’이다. 이 토대 위에 그 다음부터 무언가를 차곡차곡 얹어야 비로소 독특한 매력이 생겨난다. 인기 절정의 KBS 수목극 <태양의 후예>는 대체 어떻게 이 바늘구멍을 통과해 시청률의 신기원을 연 것일까. 요즘 같은 다매체 다채널 환경에서는 의아스러울 지경의 인기다. 이 작품의 관건은 사실 외부를 제대로 치밀하게 구성하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출혈경쟁을 젊은이들에게 강요하는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Mnet의 <프로듀스101(원오원)>이다.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게 꿈인 101명이 출연해 매주 순위 경쟁을 벌인다. 4월 1일 종영 때 최종 11명이 추려질 예정이다. 바꿔 말하면 ‘나머지’ 90명은 들러리라는 얘기다. ‘들러리’는 자신이 들러리인 줄 알면서도, 이탈하거나 반항하지도 못한 채 끝까지 자신의 ‘최선’을 보여줘야 한다. 이 지옥의 링에 연습생들을 보낸 연예기획사만 46곳이다. 만능재주꾼인 참가자들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 하나로 그 살인적인 경쟁을 견뎌내고 있다. 누구하나 빠짐없이 현란하게 예쁘다. 첫 회에서 101개의 의자를 채워나가는 그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먹먹했다. 그들도 서로를 보며 놀랐다. ‘회사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이렇게 많은 회사에서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로….’ 이것은 거의 절망적인 한숨에 가까웠다. 저 많은 경쟁자를 ‘꺾고’ 데뷔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여서 하얗게 질린 얼굴들이었다. 출연자들과 각종 트레이너들이 염려하는 부분은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무대에 올랐을 때 최고의 칭찬도 “예쁘다!”이
첫 회 시청률이 4.0%이었다. 물론 요즘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낯설지 않은 수치다. 하지만 SBS 새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는 김수현 작가의 지상파 복귀 작품이다. 아마 작가와 제작진은 ‘40’을 잘못 본 게 아닌지 눈을 비볐을 성 싶다. 한 달여가 지났지만, 시청률은 반등되지 않았다. 조금 오르긴 했지만, tvN 시그널과 겹치는 토요일에는 눈에 띄게 부진했다. 주류 언론은 여전히 칭찬일색이지만, 일단 인터넷과 친숙한 세대는 더 이상 ‘김수현 표 드라마’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엄밀히 말해 이번 작품이 특별히 이전 작들보다 못한 것은 아닌 듯하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원래가 다소 ‘무정형’에 가깝다. 틀은 애초에 결정된 가옥구조와 가족 관계에서 결정된다. 내용은 거의 일상에 대한 것이다. 아무리 치고 박고 침 튀기며 머리채를 잡고 싸워도, 모두 가족 내의 문제로 수렴된다. 어느 지역에 살든, 등장인물들의 생활범주와 관계망은 가족 혹은 친족 내로 한정된다. 따라서서 아무리 갈등이 심해봤자 ‘찻잔 속의 태풍’이다. 김수현 드라마에서 ‘사회’란 그저 막연한 외부일 뿐이다. 가족의 생태, 특히 먹고사는 문제는 언제나 세상의 변화와 무관했다. 손자가 왜 취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