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우리 생활을 파고든 작년 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연함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에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평소에는 잊고 지내지만 심각한 문제에 부딪치면 스스로가 완벽하지 못한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위축되기도 하고 겸손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함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진화해 온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인류의 특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 개리 마커스는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로 뇌와 인지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의미한다. 그렇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우연히, 임기응변으로 대처한 해결책이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나은 경험을 한두 번쯤은 가지고 있다. 점심엔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처음 들어간 식당에서 맛있고 푸짐한 점심을 만났던 기억. 길을 잃어 우연히 도착한 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 이렇게 인간도 클루지처럼 진화의 과정에서 서툴게 짜 맞추어진 존재이기에 항상 불안정한 심리와 완벽하지 못한 판단을 하지만 우연한
학사일정 5주차에 접어든 지난 9월 29일부터 수강정원이 100명 이상인 이론 강의를 제외한 대부분의 강의가 대면수업으로 전환됐다. 이미 개강 첫날부터 실험·실습·실기가 동반되는 강의는 대면수업을 진행 중이고, 교육부 또한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70%를 상회함에 따라 단계적인 대면수업 재개를 권고한 바 있다. ‘전면 비대면 수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형태를 취했던 지난 2년간의 대학 교육이 일단은 정상화 궤도에 오른 것이다. 지난 2년여의 팬데믹은 우리로 하여금 이른바 ‘위드 코로나(with Corona)’로 불리는 바이러스와의 불편한 동거를 강요해 왔다. 화합, 만남, 유대와 같은 가치는 모두 ‘방역’이라는 현실 아래에 종속되고 말았다. 지난 7월 26일 동아대병원 김동민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국면 이후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를 경험한 국민이 5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계의 공백’이 불러온 우울감은 청년들에게 특히 가혹했다. 지난해 9월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상반기 우울증 진료 인원은 59만 명으로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5.8% 증가했다. 특히 2
요즘 SNS에서는 얼굴을 합성하는 어플이 인기를 얻고 있다. 흔히 ‘딥페이크(deep fake)’로 불리는 이 기술은 딥러닝과 속임수를 뜻하는 페이크의 합성어로 영상 속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얼굴로 합성해주는 인공지능을 뜻한다. 딥페이크를 활용할 경우 일반적인 CG로 100일이 걸리는 작업을 단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딥페이크를 이용해 자신의 친구 혹은 유명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여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혁신 기술로 각광받던 딥페이크는 어느덧 가짜 뉴스와 보이스피싱, 성착취물 제작 등 범죄의 도구로 전락했다. 네덜란드 보안 업체(Deeptrace)가 2019년에 만든 보고서에 따르면, 딥페이크 사용 목적의 96%가 포르노그래피인 것으로 나타났고, 교육 및 기타목적은 고작 4%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딥페이크는 신종 범죄를 양산하고 있다. 이 기술로 제작되는 포르노의 가장 큰 문제점은 타인의 얼굴을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어느 SNS에 ‘합성’이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이른바 ‘지인 합성’으로 불리는 딥페이크를 만들어주는 계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SNS에 게시한 사진이 도용되어,
막대한 이윤을 독점하는 특권층 ‘게임의 구조’는 누가 만드는가 “저는 너무나 치밀하게 설계된 오징어게임 속 ‘말’일 뿐입니다.” 화천대유 1호 사원이자 곽상도 의원의 아들 곽모 씨가 한 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 속에 성남시 대장지구 개발사업 시행사 ‘화천대유’에 빗댄 표현과 패러디가 넘쳐나고 있다.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수령한 이가 장기판 속 한낱 말이었다는데 공감할 수 있을까. ‘나는 왜 그 말이 되지 못하느냐’는 조소가 나온다. 자본금 50억 원으로 배당금 5천903억 원을 가져간 이들을 살펴보자. 화천대유 대주주는 전 머니투데이 기자 김만배였다. 고문으로 이름 올리고 자문료를 받은 법조인 명단은 화려하다.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검, 김수남 전 검찰총장, 원유철 전 국회의원이 있다. SK증권을 경유해 막대한 배당금을 받아 간 이들의 직업은 회계사, 변호사, 언론인 등이었다. 수사를 통해 이들이 막대한 배당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왜 이런 사업구조를 만들었는지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뇌물, 투자 정보 사전유출, 업무상 배임 등에 대해서는 따져봐야겠지만, 이들이 막대한 배당금을 받은 것만으로는
대학생 A씨는 눈을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수업 시작 1분 전 겨우 비대면 수업에 접속한 A씨는 그제야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단장하기 시작한다. 한편 자취방이 답답했던 B씨는 집 근처 카페에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대학가 풍경은 어느덧 학생들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불편도 뒤따른다. C씨는 동영상 수업을 듣기 위해 교수학습지원시스템에 접속했지만 로그인이 안 되는 오류로 수업을 듣지 못했다. 또 D씨는 교수가 몇 년 전 촬영된 강의 영상을 재활용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처럼 많은 학생이 강의의 질적 하락을 이유로 비대면 수업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전산 환경이 온전치 못했을 옛날엔 어땠을까. ‘96년 9월 23일자 <계명대신문>에 실린 ‘전산교육원, 학생 편의와 강의 질 개선 위한 노력 전개해야’라는 기사에서 캠퍼스 전산화 작업이 진행되던 당시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기사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편의와 강의 질 개선을 위한 전산화 개발과 실습실 증설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에서 실시했던 ‘96년 대학 정보화
외딴 섬에서 표류한 선원 이야기로 유명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 로빈슨은 29년을 섬에서 홀로 지냈다. 필자가 소개할 영화 ‘김씨표류기’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식인종만 간간히 방문하는 그런 외딴섬에서의 거창한 표류담은 아니다. 대신 대도시 서울 안에서 겪는 새로운 방식의 표류담이다. ‘김씨표류기’에는 2명의 표류자가 등장한다. 표류자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도시 한가운데 손바닥만 한 무인도에서, 그리고 한강뷰가 보이는 아파트 방안에서 표류하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구조조정, 빚, 재취업 실패로 한강에 투신한 남자 김씨가 실수로 한강 다리 아래 무인도 밤섬에 표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남자 김씨는 원래의 계획대로 죽으려고 시도하기도 하고, 반대로 살기 위해 도움을 청하기도 하다가 서서히 섬 생활에 익숙해진다. 처음 모래사장에 ‘HELP’를 썼던 그는 섬의 생존방식을 터득하고 버려진 오리배에 터전을 잡고 난 후 ‘HELLO’를 쓴다. 밤섬은 도시생활의 경쟁에서 떠밀린 그가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땅이 된 것이다. 남자 김씨의 표류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한강변 아파트에 사는 여자 김씨이다. 함께 사는 부모와
세대를 아우르는 말이 참 많다. 386세대, 신세대, 오렌지족, X세대, Y세대, Z세대 그리고 이젠 MZ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강의기술을 익히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젠 MZ세대의 사고를 알아야만 학생과 소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소위, 노땅 아니면 꼰대 취급을 당한다. 그런데 다시금 MZ세대를 생각해본다. 인간의 역사에서 항상 젊은이는 기성세대와 갈등을 빚었다. 진위를 떠나 그리스 신전에 당시 젊은이의 행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낙서가 있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19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개최된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우리 선수단은 단순한 경기 그 자체만이 아니라 경기에 임하는 태도를 통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MZ세대가 경기에 임하는 태도는 더 그랬다. 소위 ‘라떼’를 외치는 기성세대 시대에는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면 대통령 각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시됐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딴 선수가 마치 전쟁에서 패한 병사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눈물과 함께 전하는 모습이
지난 7월 2일 우리나라가 이른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지위 변경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외교부는 이번 지위 변경을 “세계 10위 경제 규모와 P4G 정상회의 개최, G7 정상회의 참석 등 높아진 우리나라의 위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특별공로자’ 약 380여 명을 우리나라로 데려오는 일명 미라클 작전으로 또다시 난민 수용 문제를 놓고 찬반양론이 불거졌다. 특별공로자는 우리 정부 활동을 도왔던 직원과 그 가족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명칭이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특별한 공을 세우지 못하면 한국행을 택할 수 없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그나마 난민들이 가까스로 한국 땅을 밟아도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는 1992년 UN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및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에 가입한 이후 2013년에는 ‘난민법’을 시행하여 난민 신청을 받고 있다.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부터 올해 3월까지의 누적 난민 신청자 수는 총 7만1천
권력에 빠져 부정을 일삼는 한때의 청춘들 청년층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 생각해보길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서울대를 상징하는 문구로 알려진, 정희성 시인이 재학 시절 쓴 시의 한 구절이다. 관악 캠퍼스 기공식에 맞춰 썼다는 이 시에 대해 정희성 시인은 “학생들이 이 시에서 자기가 몸담은 대학에 대한 긍지를 느끼는 것은 좋지만 자만심에 빠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대학신문’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문구처럼 긍지를 갖고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며 불의에 저항하는 청년들이 많았을 터이다. 그러나 이 청년들도 권력의 중심부인 정·관계에 진출하고 나면 자만심에 빠진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24일 부산대학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인 조민 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취소 예정처분 결정을 했다. 결정 이후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의 SNS에 “아비로서 고통스럽습니다. 최종결정이 내려지기 전 예정된 청문절차에서 충실히 소명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청문절차는 조 전 장관이 아니라 서른을 넘긴 조민 씨가 진행해야 할 일이다. 또, 입학취소를 결정한 이유는 제출 서류의 기재사항이 사실과 다른 경우 불합격 처리를 한다는 입학요강 때문이다
2020년 8월 무더운 여름날, 나는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를 시작했다. 때마침 직장을 찾고 있었고 처음에는 그저 높은 일당과 집과 가깝다는 이유로 만만하게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자리가 8·15 광화문 집회부터 2, 3차 대유행, 추석, 크리스마스, 새해, 설날을 거쳐 4차 대유행의 중심인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을 시작한 처음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나를 찾아왔었다. 혹시 내가 감염될까, 민원인들의 기침과 재채기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여름에 바람이 안 통하는 방호복을 입고 있으면 속옷까지 젖을 정도로 땀이 나고 아득해질 정도로 숨이 찬다. 장갑을 벗을 때면 땀이 뚝뚝 떨어졌고, 겨울에는 손과 발이 얼어서 구부려지지도 않을 정도로 가벼운 동상을 달고 살았다. 당연히 마스크 속 콧물이 흘러도 닦을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더우나 추우나 항상 밖에서 일을 했다. 그저 서러웠다. 더군다나 터무니없는 항의들로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악성 민원인 응대라는 ‘감정 노동’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자부심이 있었다. 주변 지인들이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때면 뿌듯하기도 했다. 또한 함께 일하는 직원분
학생 복지는 중요하다. ‘대학은 공부를 하는 곳인데 복지가 뭐가 중요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지와 공부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많은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 넓고 쾌적한 강의실, 높은 사양의 컴퓨터가 배치된 PC실, 저렴하고 질 좋은 음식을 판매하는 학생식당처럼 학생을 위한 편의시설이 고루 갖춰질수록 학습 능률도 덩달아 오르기 마련이다. ‘계명정신과 봉사’라는 교양필수 과목에서 언급했듯, 우리학교가 캠퍼스 미관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학생복지시설은 학생들의 요구와 시대적 변화에 힘입어 양적·질적인 개선을 거듭해왔다. 2000년대 초에는 신바우어관이 완공됐고, 2010년대 들어서는 백은관 맞은편에 아람관이 신축됐다. 둘 다 학생식당과 동아리실 등이 위치한 학생복지시설이다. 동산도서관 또한 수차례의 개보수와 공간 조정 끝에 VR 체험존과 현대화된 열람실 등을 갖추며 ‘스마트 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그렇다면 옛날엔 어땠을까. ‘98년 9월 14일자 <계명대신문>에 실린 ‘학교 복지시설 이용에 불편 많아’라는 기사는 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복지시설의 미비를 지적하고 있다. 기사는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느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