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느낌이 온다. 연애의 발견이라. KBS 2TV 월화극 <연애의 발견>은 연애 세포마저 말라버린 시청자를 도발하려 한다. 한편으론 씁쓸하다. 연애는 이제 발견해야 하는 종류의 것인가. 마치 콜럼버스가 바다 건너에 있던 기존의 땅을 ‘신대륙’이라며 ‘발견’이란 단어를 발명해냈듯이? 그런 연상에 따르면, 연애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원래의 주민들이 평화로이 살고 있던 곳을 침략한 것을 연상시킨다. 그렇다. 연애를 전면에 내세우며 발견을 표방하는 이야기가 갈 곳은, 어쩌면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에 관한 슬픈 내기인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에게는 연애마저도 정해진 틀 안의 검투 같은 것인가? 여주인공 한여름(정유미 분)은 현재 남하진(성준 분)과 열애 중이나, 모든 행동지침의 출발선은 과거의 애인 강태하(문정혁 분)다. 모든 매뉴얼이 강태하로부터 연유한다. 이런! 한여름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시청자는 혼란스럽다. 기억 속의 강태하인가? 강태하와는 해보지 못한 것을 받아주는 대상으로서의 남하진인가? 셋이 맞닥뜨리게 된 지금, 여름이 만일 태하에게 간다면 헤어진 후에도 그리워했다는 뜻이고, 하진에게 간다면 무려 5년만의 (우연한) 재회로 인해 비로소 태하
궁금하다. 저 사람들은 왜 저 무대에 등장했을까? MBC 수목극 <개과천선>(극본 최희라/연출 박재범 오현종)에 드는 의문이다. 자기가 내뱉는 대사들이, 상대방이 자기에게 던지는 반응이 대체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다음 행동을 견인하는지 알고는 있을까? 그런데 좀 들여다보면 같은 패턴과 같은 분위기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일종의 법칙 내지 틀이 있다. 급기야 배우의 이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내가 알던, 내가 전에 극 속에서 보았던 그들이 맞는지를 말이다! 김상중, 김명민, 박민영, 김서형, 그 외 수많은 연기파 배우들... 그들은 지금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주어진 대사를 모두 앵무새처럼 읊고 있다. 뻣뻣하게 왔다갔다하다, 어느 순간 느닷없이 벌컥 화를 낸다. 화를 내는 장면은 그래도 맥락과 상관없이 ‘연기력’이 느껴지기 때문인지, 점점 트집을 잡고 화를 내는 횟수가 늘고 있다. 모두가 맹렬히 소통을 거부하며 판을 깨버리고는, 불같이 화를 낸다. 곧 러브라인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탓에 돌출행동 중인 이지윤(박민영 분)만이 유일하게 이 대열에서 튄다. 극 속 세상과 상관없이 혼자 정의롭고 혼자 떳떳하기 때문이다. 차영우(김상중 분) 로펌의 인턴이자
누굴까? 극중 20여년전 ‘일탄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갑동이는 과연 누구일까? 4월 초 시작한 tvN 금토 드라마 <갑동이>에서 갑동이라는 이름은 이야기의 처음이자 끝이다. 20년 전 신도시 연쇄살인... 수사의 혼선과 대응 실패, 모방 범죄와 불안한 시국 그리고 영구미제.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화성 연쇄살인사건’으로 실제로 겪었다. 드라마 <갑동이>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20년 후에 또다시 ‘카피’ 범행들과 ‘카피캣’들이 활개를 친다. 잡고 싶다, 갑동이를! 미치도록 잡고 싶다. 손가락이든 인생이든 목숨이든, 그 놈만 잡을 수 있다면 다 걸고 싶은 남자들이 경찰에만도 수두룩하게 보인다. 그런데, 갑동이는 안 잡힌다. 이쯤에서 질문을 바꿔 봐야 한다. 누가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하는가? 아니, 누가 이런 범죄가 벌어질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는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시에서 여성을 노린 10차례의 살인 사건이 있었다. 한때 범인이 잡혔다고 대서특필도 됐으나, 8번째 살인사건에만 관계되었을 뿐이다. 180만명의 경찰이 동원되고, 용의자만 3000여명이 조사를 받았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바야흐로 ‘썸’이 초미의 관심사인 요즘이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미래’가 점쳐지지 않는 시대상의 반영인가. 믿을 건 오직 (순간의) 감정뿐인가. 그렇다면 ‘썸’이란 과연 무엇인가. 설령 안다 해도 잡을 수는 있는 것인가. 예전엔 썸씽(something)이라고 하면 다소 부정적이고 은밀하면서도 구체적인 연애의 사건을 내포한 뉘앙스였다면, 요즘 유행하는 ‘썸’ 혹은 ‘썸 탄다’는 말은 다르다. 어떤 규정할 수 없는 알쏭달쏭하고 들쭉날쭉한 감정의 미묘한 외줄타기 같은 느낌이다. 정기고와 소유가 함께 부른 ‘썸’이 오랫동안 가요 순위 정상을 차지하면서, ‘썸’에 대한 현 단계 총정리를 해준 셈이 됐다. 썸을 고대하지만 막상 눈앞에 다가온 그것이 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는 이 종잡을 수 없는 심정을 제대로 포착해낸 가사 덕택이다. “요즘 따라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너/ 니 꺼인 듯 니 꺼 아닌 니 꺼 같은 나”, 이게 바로 ‘썸’이란다. 분명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말 못하지만 그렇다고 뭔가가 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너’ 때문에 애타는 상황이다. JTBC의 <마녀사냥>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연애상
여자에게는 알아들을 ‘귀’가, 남자에게는 유려하게 건반을 다스릴 ‘손’이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숨겨진 ‘재능’을, 남자는 여자의 ‘관능’을 알아보았다. 그날 그 피아노가 있던 자리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JTBC 월화극 <밀회>의 주인공 김희애―유아인은, 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과 날개 꺾인 천재 (예비)피아니스트 이선재로 열연 중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주인공은 피아노다. 그들을 매개하는 건 늘 피아노다. 남자는 여자를 ‘선생님’, 그 여자의 남편(박혁권 분)은 ‘교수님’이라 부른다. 이 삼각관계 또한 피아노가 지배한다. 피아노는 원래 관능적인 악기다. 새삼스러운가? 대한민국의 온갖 매체를 장악한 <밀회> 관련 기사들을 접하면 조금 어이없기도 하다. 왜 이리 호들갑인가. 피아노는 원래 그런 악기다. 가장 ‘대중적’일 것 같지만, 그러나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오랫동안 지켜봐 줄 스승이 필수인 악기다. 피아노 관련 영화들이 유독 많은 이유다. 또 피아노는 악기이면서 거대한 가구다. 그랜드 피아노는 방 하나를 아니 콘서트홀을 다 차지해 버린다. 가지고 싶다면 제대로 된 집부터 갖춰야 할 것 같은 ‘벅찬’ 악기다. 한때 그런 피아노에 대한
응급상황이긴 하다. 현실적인 여주인공의 그럴듯한 악전고투로 ‘악다구니’마저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던 드라마가 어느 순간 캐릭터가 다 무너졌다는 진단을 받고 있다. tvN의 금토극 <응급남녀> 이야기다. 돌싱 견습 의사 오진희(송지효 분)는 불같은 사랑으로 결혼했던 오창민(최진혁 분)과 이혼 후 6년 만에 병원 응급실에서 재회했고, 최근 14회에서 두 사람의 과거가 주변에 알려졌다. 결혼으로 의학도의 길도 포기하고 ‘바닥’을 치던 그들이 헤어져 간신히 본궤도에 오르자마자, 6년 만에 응급실에서 재회했을 때의 그 으르렁거림이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헤맬 순 없었다. 오진희는 의사로서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는 ‘사랑’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자신의 본 모습을 웬만큼 회복한 건강함 덕이다. 오진희는 상급자인 국천수(이필모 분)와 가까워지고 점점 그에게 끌린다. 오진희에게 국천수는 ‘설레는 사람’이다. 오랜 질곡 끝에 비로소 되찾은, 살아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하필 지금 오창민이 전처에 대한 ‘연애감정’인지 국치프에 대한 질투심인지를 불태우고 있다. 어느 순간 오창민은 극 속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캐릭터가 됐다. 제작진의 편애가 ‘재결
지난 연말 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tvN)를 보면서 가끔 착각하곤 했다. 아니 실은 내내 그렇게 믿으면서 보았는지도 모른다. 마치 1994년에 저런 남자와 저런 여자가 실제로 존재했던 것처럼, 드라마 속 그들처럼 ‘우리’도 저런 대화를 나누며 1994년께의 시간들을 보내며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제대로 착각이다. 1994년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드라마는 <모래시계>(SBS)였다. 그러니까 당시 최고의 남성 캐릭터는 최민수가 연기한 태수, 박상원이 연기한 우석이었다. 고현정이 맡았던 혜린이 1994년 최고의 사랑을 받은 여성 캐릭터였다. 검사인 우석은 자기가 믿는 가치관으로 인해 친구 태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는 남자다. 태수는 사형장에 들어가면서도 죽마고우에게 “나 떨고 있냐?”라고 밖에 말할 줄 몰랐던 남자다. 자기의 감정을 죽는 순간에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남자, 다만 핏기 없는 얼굴로 덜덜 떨고 있는 태수를 보며 대다수 시청자가 동일시와 감정이입을 했다는 뜻이다. 눈물은 여자의 것이고 감정 절제는 남자의 전용물이며, 사랑해도 표현하지 않는 게 불문율 비슷한 틀이었다. <모래시계>의 ‘애
모든 드라마에는 대중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더듬이가 있다. 특히 인기 드라마일수록 이 더듬이가 대중이 바라던 어떤 것과 정확히 일치 혹은 소통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드라마의 경우 여성 시청자와 남성 시청자의 호불호가 판이하게 갈리는 경향이 짙다. 물론 드라마는 당연히 여성의 마음부터 사로잡아야 뜬다. 여기에 더해 남성들한테서도 재미있다는 반응을 얻는 드라마가 있고, 남성들에게 일종의 적대감을 주는 드라마가 있다. 로맨스일수록, 이런 양상이 심해진다. 남자 주인공이 너무 멋지거나 못하는 게 없는 능력자고 모든 여자가 반할 캐릭터라면, 남성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대다수 남성이 불편해한다. 여자들이 ‘비현실적’으로 멋진 주인공에 빠져, 현실의 남자들을 외면할까봐 두려운 것일까. SBS 수목 미니시리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 딱 이런 경우다. 극중 김수현이 맡은 배역은 서기 1609년 조선 땅에 온 외계인 도민준이다. 도민준은 늙었는데 외모는 젊다 못해 새파랗다. 남자의 가장 젊고 푸른 상태를 한결같이 유지해왔다. 게다가 지구에 떨어졌을 때 처음 본 소녀를 잊지 못하고 400년간 마음속에 고이 간직했다. 이보다 더한 순정은 없다
후쿠시마 이후, 여기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이것은 대단히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다. 대다수 사람들이 실제적인 위협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다. 밥상이 공포의 대상이 됐다. 추석을 앞둔 시장이 썰렁하다. 아무도 밥상을 마음 놓고 차리지 못한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신문과 방송에서 떠들어 봤자 믿는 사람은 없다. 믿고 싶지만 믿을 수가 없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우리는 안전하다. 우리 바다에 방사능 오염수는 없다.”는 정부 지침은 불안을 오히려 가중시킨다. 없던 불안까지 부추긴다. 너무도 신속하게 ‘조사’가 마무리 되곤 할 뿐 아니라, 판에 박힌 몇 줄짜리 내용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뉴스인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선뜻 사지도 먹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다. 집에서 안 먹었다고 해서, ‘안전’했을 리도 없다. 어디서 어떤 경로로 유통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학교 급식마저 안전하지 않았음이 최근에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예 어떤 ‘원산지 표시’도 ‘식품 안전 기준’도 믿을 수가 없게 된 상태다. ●그때,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나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2년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2011년
남자의 눈물에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의 눈물이다. 요즘 대중문화 콘텐츠 중 가장 각광받는 게 부성애 코드다. 영화와 드라마에 이어 예능 프로그램까지 모조리 휩쓸고 있다.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이 열풍은 제작자들에 의해 그리 꼼꼼히 준비되었다기 보다는 대중들이 만들어가는 현상으로 보인다. ‘기대작’이 아니었던 작품에서 의외의 대박이 터지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다.●오직 아버지와 아이만의 관계영화 ‘7번방의 선물’의 흥행과 KBS 주말극 ‘내 딸 서영이’의 선전, 방영과 동시에 다 꺼져가던 MBC 예능을 되살렸다는 평가까지 듣는 ‘일밤-아빠 어디가’의 성공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선 이후 ‘절반’의 힐링을 책임졌다는 영화 ‘레미제라블’의 뜻밖의 흥행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분명 여태까지의 부성애 코드와는 다른 새로운 면모다. 물론 IMF 외환위기 직후에도 아버지 열풍이 분 적이 있다. 그런데 소설 ‘아버지’ 등으로 상징되는 이 부성애는, 긴 세월 어머니 뒤에 묻힌 채 돈 버는 것으로만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여겼던 아버지의 존재감을 새삼 발견하는 식이었다. 유일한 임무였던 ‘돈 벌어오기’를 못하게 된 이후 가정 내에서조차 설 자리를 잃은
올해의 드라마 중 최고 화제작은 <추노>였고 시청률 최고였던 드라마는 <제빵왕 김탁구>였다. 그러나 두 작품은 달라도 참 많이 달랐다. <추노>는 애도(哀悼)도 벽두를 연 드라마였다. 죽은 벗을 묻어주기 위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장면이 다섯 차례나 등장했다. 주인공들은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리면서도 어리석을 정도로 사람이 사람을 묻어준다는 것은 가히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벗의 목숨은 구하지 못했을지언정 시신만은 구해야 한다는 절대명제에 양반과 천민이 따로 없었다. 벗을 묻어주지 못하는 자의 말로는 까마귀밥으로 버려지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누구나 최선을 다해 벗을 만들고 그들의 안위를 정성껏 살피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주검을 제 손으로 수습할 수 없다는 것, <추노>는 그 묵직한 의미를 깊이 되새기게 했다. 소포클레스와 장 아누이가 2천여 년 차이를 두고 쓴 희곡 <안티고네>는, 애도야말로 인간의 본분임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죽은 이를 장례지내고 묻어주는 그 기본 예의가 몹시 부자연스러워지고 묻어주는 일이 처벌의 대상이 될 때, 거기는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이 아닌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