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이 ‘리얼’을 강조하면 할수록, 비일상적이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미션을 출연자들에게 강요하게 된 것은 아닌지 묻게 되는 요즘이다. 출연자가 아무리 괴로워해도, 누군가 그 방송을 보고 ‘웃음’을 짓고 그래서 시청률이 올라간다면, 예능은 그저 예능이라는 말로 다 용인될 수 있는 노릇인가? 출연진의 욕설 파문에 이어 녹화 당시의 동영상 유출,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냐의 요란한 논란까지, MBC <띠 동갑 과외하기> 촬영 중 빚어진 ‘이태임-예원’ 파문은 몹시 시끄러웠다. 실상 문제의 발단은 디스패치라는 매체의 보도처럼 ‘누가 먼저 욕을 했는가’에 있지 않다. 왜 리얼 예능은 한겨울에 여배우를 바다에 집어넣었는가로 본다. 그런데 연예 뉴스들은 온통 (연예인 중)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는 쪽으로만 기울었다. 이태임은 거의 매장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났다. <띠동갑 과외하기>는 그 난리 통에도 유지되는가 싶더니, 결국 2차 파문인 동영상 유출을 겪고 바로 종영됐다. 이번 일이 그나마 의미 있게 마무리되려면, 두 사람 모두 ‘제자리’로 그러니까 무대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 바라는 것은, 방송사들의 예능 제작 방침을 돌
오죽하면 엄마가 다시 교복을 입어야 했을까. 엄마 조강자(김희선 분)가 딸 아란(김유정 분)을 지키기 위해 다시 고교 2학년 ‘동급생’이 된다는 설정이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의 이야기 구조다. 물론 학교는 조강자가 다니던 예전보다 훨씬 더 팍팍해졌다. 외형적 환경은 좋아졌을 것이지만, 실제로 2015년 현재의 학교는 왠지 숨이 막히는 곳이다. 적어도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버젓이 생활수칙 상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모두에게 널리 ‘교육’ 혹은 주입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교복 맵시가 여전히 좋은 김희선이 고교생이었을 무렵, 그때도 ‘일진’ 출신인 극중 강자에게 학교는 힘든 곳이었고 세상은 폭력과 비정함으로 얼룩졌다. 되돌아온 학교 역시 심각하다 못해 아이들에게는 ‘출구’가 없는 듯이 보인다. ‘앵그리맘’은 무거운 소재를 다루며 폭력적인 장면도 많다. 요즘 세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학교 폭력 및 성폭력까지 조명하고 있다. 해결 방법은, 현재로서는 암담하다. 학교와 교사들, 재단, 그 뒤로 교육청까지 연결되며 이 문제들이 단순히 학생 선에서 그치지 않음을 드러낸다.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이기도
그가 만든 요리를 한 입 맛보고 싶었다. 아니다. 그냥 그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지난 겨울의 화제작 tvN <삼시세끼-어촌편> 얘기다. 배우 차승원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차줌마’라는 별명으로 통하게 됐다. 드라마에서 여전히 매력적이고 섹시한 주인공을 도맡아하는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삼시 세끼를 척척 차려내는 ‘능숙한 주부’ 같은 모습으로 ‘캐스팅’된 건 사실 뜻밖이었다. 처음에는 ‘제법인데’ 하는 흥미로움이었고, 점점 지나면서는 그의 손동작이며 심지어 말 한마디며 숨소리까지 주시하며 보게 되었다. 완전히 빠져들었다는 말이 맞겠다. 그렇다. 요리는 다만 완성된 음식 ‘한 그릇’이 아니었다. 누군가 먹을 사람이 정해지고 그때부터 온갖 아이디어와 칼질과 손놀림과 마음 씀씀이가 필요해지는 전체 과정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그것을 대단히 투박하면서 진실하게 담아냈다. 어떤 요리 프로그램도 담지 못했던 본질이었다. 먹는다는 것에서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 느끼고자 하는 것, 결국 ‘집밥’을 눈물겹게 그리워하는 이유들까지 말이다. 그래서 유해진과 손호준이 바다에 나가 잡아온 좀 어설픈 것들을 차승원이 마치 ‘어부의 아내’라도 된 양,
지난 한 해 예능의 대세는 단연 ‘육아 예능’이었다. 예전과 큰 차이는 출연 연예인들의 집을 ‘무대’로 쓴다는 점이다. 연예인들이 ‘보육원’ 등을 찾거나 ‘위탁’ 형태로 ‘남의 아이’를 한동안 돌보며 일종의 사회적 기여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집에서 자기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보여준다는 게 의도다. 사회 경제적 요인 때문에 청년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니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며 대리만족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으니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육아 예능’을 보는 것일까. 사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TV 볼 시간이 없다. 불과 몇 초 사이에도 다치고 위험해질 수 있는 게 아이들이다. 잠시 짬이 나더라도, 육아에도 지쳤는데 TV에서까지 (남의) 아이와 씨름하는 일은 피하고 싶을 수 있다. 그렇다면 육아 예능은 어떤 사람들이 볼까? 육아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조만간 아이를 낳거나 키울 계획이 없는 젊은이들, 무뚝뚝한 청소년 자녀의 귀엽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부모들, 아이를 직접 돌보지 않고 가끔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예능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화면 속 아이들은 실제 세상의 아이들과는 딴판이다
요즘 ‘온전한’ 정신을 붙들고 살지 못해 인격이 쪼개진 이른바 다중인격의 주인공이 지상파 드라마를 휩쓸고 있다. MBC <킬미힐미>와 SBS <하이드 지킬, 나> 얘기다. 옷을 갈아입듯 필요시 ‘인격’을 갈아입는 남자 주인공이 ‘평범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는 로맨스가 수목 10시 드라마에 똑같이 나온다. 재벌 후계자인 점도 같다. 시청률이라는 방송사의 잣대로 보면 승자는 <킬미힐미>다. 지성이 열연 중인 주인공 차도현은 인격이 무려 7개다. <하이드 지킬, 나>의 현빈이 맡은 구서진은 두 개다. 인격의 개수에서 승부가 갈린 것일까. 재벌도 온전한 정신으로 못 사는 마당에, 빈털터리인 우리가 제정신이라는 것이야말로 미친 짓처럼 보일 지경이다. 재벌가 아들이 한없이 여린 속내로 ‘아픈 척 약한 척’을 하는 게 로맨스 드라마의 공식이 된 듯하다. <파리의 연인>식 출생의 비밀은 이제 흔해져, <상속자들>은 연령대를 고교생으로 확 낮춰버렸다. ‘평범한’ 여고생조차 기댈 어깨를 내주고 같이 울어줘야만 할 것만 같은 ‘상처받은 아이’인 재벌 상속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 인격마저 쪼개졌다. <킬미힐미&
재벌회장 최고봉(신하균 분)에게 어느 날 천지개벽할 일이 생긴다. 혜성이 우박처럼 떨어지던 어느 날 ‘싱크홀’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건 시초에 불과했다. 이후 느닷없이 몸이 70대 노인에서 30대의 팔팔한 젊은이로 변한다. 그의 모든 재산 등등은 그대로인데 몸만 젊어진 것이다.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상의 판타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MBC 수목극 <미스터 백>은 이 ‘백(Back)’을 유쾌하고 경쾌하게 다룬다. 파우스트 식의 무게 보다는 상상력의 달콤함 쪽을 택했다. 무엇보다 최고봉은 분명 젊은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그냥 젊은 몸으로 ‘변한’ 것이다. 몸이 변하자,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뀐다. 그래서 이름도 최신형으로 바꾸고 새 인생을 산다. 이 드라마는 재벌회장 최고봉을 위한, 최고봉의 관점에서 그의 시선대로 재편되는 맞춤옷 같은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노인일 때는 세상의 모든 부(富)를 원하는 만큼 가지고 있었던 재벌회장으로, 세상 모든 이를 발 앞에 무릎 꿇게 했던 그다. 그런데 인생을 다시 살게 되는 행운에, 사랑도 딱 그가 원하는 적절한 때에 당도해 주었다. 자신을 설레게 하는 은하수(장나라
요즘 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1위는 KBS 주말극 <가족끼리 왜 이래>라고 한다. 홀로 20여년을 자식만 바라보고 산 차순봉(유동근 분)이 ‘이기적’인 자식 삼남매에게 상처를 받다가 ‘불효소송’을 시작했다. 평생 두부를 만들어 팔며 생활해 온 가게 딸린 집의 ‘부동산’ 가격이 갑자기 폭등한 직후다. 은행 빚에 일자리에 돈이 궁한 자식들은 아버지 생전에 ‘명의이전’을 통해 재산을 받을 꿍꿍이다. “우리 아버지가 알고 보니 부자”였다며 각자 5억씩의 현찰을 받아 벼락부자가 될 꿈에 부푼다. 엄마처럼 키워준 고모네 식구들을 내치고, 아버지는 원룸으로 보내고, 건물 올릴 생각에만 골몰한다. 아버지는 다 괘씸하다. 새삼스럽게 자기 인생이 억울해 분노가 활화산처럼 폭발한다. 자식들의 일터로 ‘불효소송’ 소장은 배달되고, 아버지 덕 좀 보려던 자식들은 기함하다 못해 “인연을 끊자”며 강력하게 대든다.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 나기 직전이다. 아버지는 두부 가게 단골인 변호사 변우탁(송재희 분)에게 말한다. “그놈들한테 들어간 비용, 노력, 시간... 내 인생을 돌려받고 싶어요. 시간을 내놓으라고 할 순 없으니 돈이라도 내놓으라는 겁니다.” 한없이 자상하고 따뜻하
장그래라는 이름의 젊은이가 있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未生)>의 주인공인 그는 참 서툰 ‘인턴’이었다. 모두가 그에게 호통치고 혼내는데, 정작 독자들은 안쓰러워 눈물이 핑 돌곤 했다. 꼭 나 같은 장그래가 설 자리를 내달라고 안간힘 쓰고 있었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던 독백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알고 보면 ‘원 인터내셔널’의 사람들 모두 속으로는 혼자 우는 ‘미생’들이었다. 그 이야기가 tvN 금토 드라마로 방영 중이다. 예상은 했지만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케이블 드라마임에도 초대박 조짐이 보인다. 1.6%로 시작한 시청률이 4회만에 3.49%(케이블 기준, 닐슨코리아)까지 치솟았으며 최고시청률은 4.9%였다. 물론 시청률이 전부는 아니지만, 지상파 드라마들이 ‘그저 틀어놓는’ 성적을 기록 중일 때 미생은 ‘집에 가게 하는’ 드라마로 자리매김 중이다. <미생>은 방영 4회만에 아니 첫날부터 우리가 기다려왔던 드라마임을 입증했다. 웹툰이 책으로 발간되었을 때의 인기와는 또 다르다. 내용을 모르지 않음에도 기다렸다 챙겨본다. ‘평면’이던 등장인물들은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살과 피가
대한민국 모든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소재의 극대화와 진화를 위해 만들어지는 듯한 요즘이다. 마치 제작과정의 불변의 원칙처럼 보인다. 출생의 비밀 외에 뭔가가 더 들어가 줄 때 그제야 비로소 ‘장르’ 구분과 시대 구분이 생긴다. 아닌 것 같다고? 한 번 찬찬히 둘러보라. 적어도 현재 방영중인 지상파 드라마들은 출생의 비밀과 DNA 내지는 타고난 귀속지위의 ‘엇갈림’에 대한 코드가 주요 뼈대다. 바닥도 한계도 없이 마냥 진화중이다. KBS <뻐꾸기 둥지>는 심지어 국민의 수신료로 유지됨을 내세우는 ‘공영방송’의 일일드라마다. 어떤 아이를 두고 ‘엄마’가 누구냐가 아니라 ‘누구의 난자’로부터 비롯되었느냐를 따지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난자들끼리의 충돌, 대리모라는 극단적 상황을 ‘애증’ 차원에서 다룬다. 과학 다큐가 아니다. ‘일상성’과 ‘평범한 보통 사람의 삶’을 기치로 내거는 저녁 일일극이다. 한 생명이 처음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청률 전쟁으로 오염시킨 꼴이다. 대한민국 드라마에 더 이상 자연스러운 출생의 기쁨이나 생명의 신비는 그려지기 어려운 것인가. 작위적이고 극단적 상황의 연속이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도 거짓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물론 출생
이런 배우들을 한 자리에 모아놨다는 것만으로도 기대작이었다. SBS 월화극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은 정말 으리으리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그런데 비밀이라면서 세상 모두가 안다. 영조(한석규 분)가 경종을 어떻게 했으리라는 추정 말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뒤에서는 다 수군댄다. 세자(이제훈 분)만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힘도 없으면서, 세자는 부왕과 맞서려 한다. 너무 순진하거나 무모하거나 어리석다. 왕이 하도 곱게 키워 어리숙해진 것일까? 세자는 이름처럼 ‘선’하기만 하고 다른 능력이나 섬세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의명분만 강조하는 그의 완고함은 나이든 아버지를 능가한다. 이 부자 사이의 적대감은 익숙하면서 어색하다. 세자는 거침없고, 왕은 모사꾼 같다. 왕은 매 순간 둘러싸인 신하들에게 협박과 주의를 받는다. 그 어떤 사슬이 왕을 칭칭 감고 있는 듯하다. 그에 비해 세자는 자유롭고 떳떳하다. 이 관계는 영조-사도세자가 아니라 얼핏 단종-수양대군을 연상시킨다. 세자가 젊은 국왕이고 영조가 왕위찬탈을 노리는 삼촌 같다. 아버지가 아들을 꺼리고 두려워하며 그럼에도 사랑하고 왕위를 물려주려 애쓰는 ‘예상된’ 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사술(邪術)이 왕을 지배한다. 사람과 귀신이 싸우고 악령과 염력이 인간사와 충돌하는 ‘스펙터클’한 싸움과 전쟁의 난무가 펼쳐진다. MBC 월화극 <야경꾼 일지>에서는 이 싸움에서 활약하는 그러니까 정의의 용사들을 ‘야경꾼’이라 부른다. 사극 작가와 판타지 작가의 협업의 산물은, 그런데 어쩐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게 한다. 극중 국가 ‘조선’은 자연 현상의 어떤 ‘틈’과 사악한 기운이 만난 틈바구니에서 ‘탐욕’으로 인한 살생의 기운에 장악된다. 천지가 피로 물들었으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일식(日蝕), 어디선가 날아온 불덩이들, 검은 연기, ‘용신족’과 그들이 섬기는 이무기, 마마신, 마고족, 무녀… 판타지의 익숙한 도구들이 수시로 출몰해 겁을 준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실 사람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누가 악령에 사로잡힌 자인지 모르기에 무섭다. 심지어 악령에 사로잡힌 게 뻔한 왕 해종(최원영 분)을 보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그의 말도 안 되는 폭정을 감당해야 하고 살인 명령들을 저지하지 못하는 현실이 더 끔찍했다. 어린 ‘대군 아기씨’는 죽음의 고비들을 간신히 넘겨 12년 후 장성한 월광대군(정일우 분)으로 극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