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에 발행된 <계명대신문>의 뉴스를 짚어보는 '뉴스 타임머신'이 고정란이 새롭게 연재됩니다. 지난 2016년 대구시가 대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7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거실태 조사를 살펴보면, 원룸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약 30%(212명)로 집계됐다. 이 중 약 54%는 매달 30만원에서 40만원에 이르는 월세를 지불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약 94%는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거나 임대인에게 시설 수리를 요청했음에도 거절당하는 등 대학생 임차인의 권리 침해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에는 어땠을까? <계명대신문> (’90년 9월 11일자)에 실린 ‘지방학생 주거환경 실태’ 기사는 90년대 초반 대학생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짐작케 한다. 많은 대학생이 기숙사나 원룸에서 자취하는 현재와는 달리 당시에는 하숙집에서 생활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숙생 수는 점차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비싼 임대료와 열악한 생활 환경 문제는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정도가 과거에는 훨씬 심각했다. 주로 월세로 임차료를 지불하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사글세(대략 10개월치 월세를 일시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을 때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명저 ‘총, 균, 쇠’를 떠올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여 년 전, 문학사상사에서 펴낸 6백60여 페이지의 방대하고 육중한 이 책을 보름을 넘겨 독파했을 때 그 만족감은 아직도 뇌리에 선하다. 한마디로 감동과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류의 역사와 문명은 지역적으로 위대한 발상지나 그 이동과 인종주의적인 이론들로 가득했지만 ‘총, 균, 쇠’는 달랐다. 우선 이 책은 1만3천 년 인류역사의 기원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풍부한 자료와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엮어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유전학, 병리학, 생태지리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진화생물학, 고고학 등 온갖 학문들을 동원해 인류 발전의 속도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인상적인 점은 이 책이 지나치게 과학적 이론이나 깊이 있는 생물학 또는 역사와 지리적 상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방대한 양임에도 읽으면서 지루하지 않았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이 강대한 이웃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독특한 문화, 언어, 민족과 독립을 유지한 이유에 대해 지리적 조건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가 수려한 금
우리나라는 현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위기를 맞았다. 지금 코로나19는 국가의 중앙 및 지방 행정 조직, 입법 조직의 능력,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던 문제, 그리고 국민의 수준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각종 문제는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다. 유사 이래 크고 작은 위기는 언제나 있었다. 문제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이다.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평상심을 유지하는 일이다. 평상심을 잃으면 우왕좌왕 일의 순서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큰 위기를 맞아 평상심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평소에도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운데 위기 때 평상심을 유지하기란 더욱 어렵다. 그러나 평소에 평상심을 잃으면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위기 때 평상심을 잃으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위기 때일수록 큰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역사는 지혜를 얻는데 아주 효과적인 분야다. 역사는 위기 극복의 경험을 풍부하게 기록하
꼼수가 꼼수를 낳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총선 풍경은 차라리 막장 드라마에 가까웠다. 지난 2월 미래통합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미래한국당’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위성정당’을 창당하여 한국 정당정치 역사에 새 지평을 열었고, ‘위성정당은 없다’며 고매한 체 하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시민사회 연합정당 명목으로 ‘더불어시민당’을 내놓아 맞불을 놨다. ‘총선용 위성정당’이라는 비난에 휩싸인 양당은 서로에게 책임을 돌렸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는 “(위성정당 창당은) 망국적 야합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며 이를 합리화했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의석을 더 얻고자 하는 게 아니다. 소수 정당의 국회 진출을 우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꼼수를 꼼수로 맞받아친 끝에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확보했다. 민주화 이후 정부 여당이 거머쥔 최대의 압승이었다. ‘개헌 빼고 전부 다’ 할 수 있다는 말에 민주당은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조국 사태와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악재로 총선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우던 더불어민주당은 보수 야당의 잇따르는 자충수와 50%대를 웃도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
올해 1월 행정자치부 통계에 따르면 수도권 전체 인구가 약 2천592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사상 최초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선 수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서울을 중심으로 경제, 사회, 문화, 기술 등 모든 것이 집중돼있기에 ‘서울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이며, 지방 입지는 축소되고 있다. 갈수록 좁아지는 지방의 입지는 우리 사회 내 지역 차별 분위기를 조성했고, 기업에서는 지방대생 채용 기피 현상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사회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8년부터 ‘지역인재채용’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의 핵심은 혁신도시를 포함한 지방이전 공공기관이 신규 직원을 채용 할 때 해당 지역 대학생을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역인재 채용률을 현재 25.9%에서 매년 3%씩 높여 2022년까지 3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이 제도와 관련해 여러 가지 논란이 일고 있다.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수도권 대학 학생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지역인재를 정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다. 혁신도시특별법에 따른 지역인재는 ‘공공기관 본사가 이전한 지역의
대구시 동구 둔산동에 위치한 옻골마을은 자연생태, 사회생태, 인문생태를 완벽하게 갖춘 곳이다. 경주최씨의 종가가 살고 있는 이곳의 마을숲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비보숲이다. 비보는 부족한 곳을 보완하는 신라 말 도선 풍수이자 중국과 다른 우리나라 풍수의 중요한 특징이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비어 있는 남쪽에 느티나무를 심어서 마을의 숲을 만든 것은 밖에서 들어오는 좋지 못한 기운과 홍수를 막기 위해서다. 3백 살의 느티나무가 모여 사는 마을숲은 아주 아름답다. 숲과 더불어 조성한 연못은 홍수를 막는 기능과 더불어 성리학자의 정신을 담고 있다. 성리학자들은 중국 북송시대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따라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은 연꽃을 닮기 연못에 심었다. 마을숲을 지나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는 두 그루의 회화나무는 성리학의 상징나무다. 회화나무는 학자수라 부른다. 중국 주나라 때 삼공이 천자를 만날 때 이 나무 아래에서 기다렸고, 선비의 무덤에 이 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옻골처럼 조선의 성리학자와 관련한 공간에는 거의 예외 없이 회화나무를 만날 수 있다. 회화나무를 지나 아름다운 토석담을 즐기면서 걷다보면 마을의 끝자락에 위치한 백불고택과
“망년회, 근년에 와서 시작된 야릇한 버릇이다. 망년회가 남겨 놓은 우스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를 나는 많이 알지만 편집일이 몰려 더 쓰지를 못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실은 망년회의 희비극을 나보다도 여러분이 더 많이 체험하였으리라 본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나온 잡지 「별건곤」 제21호(1929.12.1.)에 실린 ‘세모희비교향악’이라는 제목의 글 가운데 일부다. 1929년에 나온 기사인데 망년회라는 말이 ‘근년에 와서 시작된 야릇한 버릇이다.’라고 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근년’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근거는 1914년 12월 6일 치 부산일보에 ‘금요회 은행 망년회’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망년회’가 그야말로 봇물 터지듯 보도되고 있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말인 망년회(忘年會, 보넨카이)의 유래를 보면 ‘망년(忘年, 보넨)이 아니라 ‘연망(年忘, 도시와스레)’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무로마찌시대(室町時代,1336-1573)의 책인 「간문일기(看聞日記)」(1430년)에 나오는 말로 지금으로부터 6백년 전 이야기다. 어느 시대건 연회 때는 술과 좋은 안주가 나오기 마련인데 이 술과 안주를 잔뜩 먹고 춤을 추는 등 놀면서 세월(年)을 잊
최근 케이블 채널 엠넷(Mnet)이 <PRODUCE 101> 시리즈에서 시청자 투표수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큰 질타를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시청자에게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고, 더욱이 후반부 시청률이 항상 3~5%에 이를 정도로 매 시즌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은 연습생들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에 대한 애정을 갖고 투표한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행위였다는 점에서 공분을 샀다. 내정자가 있었다면 서바이벌 경쟁 포맷을 적용해서는 안 됐다. 공정 경쟁이라는 번지르한 포장지 속에 사실은 승자를 내정해 두고 펼친 대국민 사기극인 것이다. 이는 비단 오디션 프로그램만의 문제가 아니라 각종 채용비리로 얼룩진 취업 시장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한다. 회사가 ‘갑’이고 지원자는 ‘을’인 현실에서 특혜채용, 채용비리 등의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불공정은 자연스레 노력만으로는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주의’에 빠지게 만든다.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그저 누군가의 들러리일 뿐이라는 무력감을 느낀 채 좌절해버리기도
작고 앙증맞은 크기, 한입 베어 물면 너무 쫀득해서 찍혀 나오는 이 자국, 이것은 무엇일까?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카롱’이다. 사람들은 왜 이 작은 디저트에 열광할까?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맛있기 때문에 사 먹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맛이 없으면 아무리 예쁜 디저트라도 사람들은 먹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크기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다. 한 개로는 성에도 안 차는데 두 개를 먹어버리면 5천 원이나 써야 된다. 그럼에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사 먹는다. 그저 맛있다는 이유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마카롱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쫀득한 식감과 다양한 필링의 종류이다. 이 두 가지를 잘 표현한 가게가 바로 ‘스쿱당’이다. 아침 7시부터 약 4시간을 기다려 번호표 2번을 받았다.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그날 판매하는 종류를 모두 구매했다. 가격은 상관없었다. 내가 먹어본 마카롱 중에서 가장 쫀득했으며, 버터크림은 적당히 묵직하고 부드러웠다. 가장 독특했던 마카롱은 ‘팡팡 콘치즈’이다. 보통은 연유와 옥수수만을 사용하는데 여기에 고추냉이를 추가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고추냉이가 버터크림의 느끼함을
아침에 코끝이 시려 눈을 뜨니 벌써 2019년의 끝이 보인다. 나무는 1년 동안 꽃을 피우고 낙엽을 물들게 하고 또 지게 했다. 정작 나는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입학하던 2018년 3월의 알싸한 날씨가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내년이면 3학년이 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늘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숨 막히는 압박감이 생긴다. 나는 이미 바쁜데 남들보다 안 바쁘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에 걱정만 눈처럼 쌓여간다. 하나의 걱정은 눈덩이처럼 시간이 지나 굴러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점점 거대해지는 눈덩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른 체 마음에 담아두기만 한다. 어른을 동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게 좋았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정작 어른이 된 나는 어릴 적 내가 무엇을 동경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어릴 적 장래 희망을 적을 때, 마치 이름을 적듯 망설임 없었던 내가 이제는 아주 낯설다. 친구들의 꿈을 궁금해하고 나의 꿈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때가 그립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게 망설여지는 내가 참 별로다. 이번 겨울에는 다시 어릴 적 나와 친해지고 싶다. 다시 나의 미래를 기대하고 싶다. 어릴 적 나의 겨울은 눈 오는 날 친
무량수의 생명체가 죽어간 현장을 12년 동안 밀착 취재한 영화 <삽질(Rivercide: The Secret Six)>을 보았다. 비밀과 비리의 핵심은 숫자 ‘6’에 있었다. 수심 6미터를 반드시 관철하는데 이 참극의 악취가 나는 이유가 있었다. 울분도 사치였다. 이렇게 되도록, 우리는 막지 못했다. 왜였을까?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이어서 또 하나의 질문이 꼬리를 문다. 비슷한 일이 또다시 비슷한 논리로 진행되면서 푼돈을 푼다면, 그때는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제라도 진심으로 정직해져야 한다. 정말 몰랐는가? 희대의 거짓말에 그저 속은 것일 뿐인가?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어 ‘불도저’라 불리던 그, BBK가 누구 것이냐는 명명백백한 사실관계조차 “주어 없음”이라는 교묘한 글자 배치로 비껴가며 대통령 당선을 거머쥔 그다. 여론의 반대로 그 탐욕의 집대성인 ‘대운하’를 전면 수정했을 것임을 정말 믿었다고? 믿음이 가서가 아니라, 믿고 싶은 나약한 마음이 아니었던가? 그의 말은 항상 일관적이었다. 뭉칫돈을 오가게 할 대규모 토목공사를 향한 VIP 지시는 한 번도 ‘수정’된 적이 없었다. 여론무마용으로 창작된 ‘사대강 살리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