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해 서산 너머 꿀꺼덕, 넘어가고
황하는 바다 향해 꿈틀꿈틀 흘러가네.
천리의 그 끝까지 모조리 다 보고 싶어
다시금 한 층 더 누각 높이 오른다네.
白日依山盡(백일의산진)
黃河入海流(황하입해류)
欲窮千里目(욕궁천리목)
更上一層樓(갱상일층루)
*원제: [登鸛雀樓(등관작루)] *관작루: 산서성(山西省) 황하 가에 있었던 3층 누각. 이 누각에 관작, 즉 황새가 서식했으므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임. *왕지환(王之渙: 688-742):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白日: 흰 해. 대낮. 지는 해.
예로부터 중국의 정치가들은 자기나라 고전들을 직접 인용하여 자신의 뜻을 전달하곤 한다. 현재 중국의 주석인 시진핑도 국가 간의 외교활동에서 걸핏하면 고전을 들고 나온다. 그 바람에 다음과 같은 중국의 명구(名句)들이 국제적인 유명세를 탔다. ‘석 자나 되는 얼음은 하루만의 추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氷凍三尺 非一日之寒)’.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자(前事不忘 後事之師)’. ‘이익을 따지려면 온 천하의 이익을 따지라(計利當計天下利)’.
시진핑은 명구뿐만 아니라 중국의 명시들도 심심찮게 들고 나온다. 위에서 인용한 것은 2013년 중국을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시진핑이 선물했던 서예작품 속에 들어 있는 한시다. 이 시를 지은 왕지환(王之渙: 688-742)은 당나라 때의 나름대로 이름 있는 시인이지만,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고작 6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9회 말 투아웃 후에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해낸 난데없는 만루 홈런처럼, 아주 짧지만 천 근 만근의 무게가 실린 이 엄청난 만루 홈런 하나로 문학사에 당당하게 살아 있다.
보다시피 이 시의 첫째 구에서 시인은 서산으로 넘어가는 저녁 해의 장엄한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둘째 구에서는 바다를 향하여 꿈틀꿈틀 달려가는 황하의 웅장한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겨우 10자밖에 안 되는 짧은 구절에다 해와 산, 황하와 바다 등을 모두 포괄하는 장엄하고도 광활한 풍경을 우주적 스케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굵게 뛰는 벅찬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인은 거기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다시 한층 더 누각을 오른다. 시선이 닿는 범위 내에서 우주의 끝, 끝의 그 너머 세계까지도 죄다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더욱더 높고 더욱더 넓은 세계를 추구하는 인간의 이상을 장중하고도 강렬하게 드러낸, <갈매기의 꿈>의 당나라 버전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우리도 만루 홈런 하나씩 치자. 이왕이면 극적 만루 홈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