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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깃털을 더럽히랴 - 고조기

천지간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자
자던 구름 다 돌아가고 변방 하늘 높기도 하다.
푸른 매 수직으로 아찔하게 솟구치니
그 어느 작은 티끌인들 저 깃털을 더럽히랴
風入湖山萬竅號(풍입호산만규호)
宿雲歸盡塞天高(숙운귀진새천고)
蒼鷹直上百千尺(창응직상백천척)
那箇纖塵點羽毛(나개섬진점우모)


* 원제: [書雲巖鎭(서운암진)-운암진에서]

다소 생소한 이름일지 몰라도 이 시를 지은 고조기(高兆基 : ?-1157)는 작품이 남아 전하는 최초의 제주도 출신 시인이다. 그러니까 그는 제주도 문학사를 수백 년 이상 끌어올린 제주도 문학의 할아버지가 되는 셈이다. 험난한 바다를 건너와서 높은 벼슬에 올랐던 고조기는 부도덕한 정권에 과감하게 항거했던 지사형의 인물이었다. 그는 타락한 세계에 대한 저항 정신과 자기 수호 혹은 자기 초월에의 의지가 남달랐던 사람이었으며, 이 점은 위의 작품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인용한 작품은 천지간을 뒤덮으며 격렬하게 울부짖는 바람 소리에서 시상이 시작된다. 그 거센 바람에 구름조차 죄다 날려가자 변방 하늘은 티 없이 높고 삼엄하게 푸르다. 화자는 지금 그 아득한 하늘로 날아가는 푸른 매를 바라보고 있다. 매는 거센 바람을 타고 백천척(百千尺)을 수직으로 아찔하게 솟구치고 있으며, 바로 이 수직적 심상이 빚어내는 강렬함 때문에 이 매의 행위에는 역동적 기상이 힘차게 어려 있다.

하지만 이 시에서 단연 주목되는 부분은 마지막 구절이 아닐까 싶다. 보다시피 화자는 이 구절에서 세속의 그 어떤 티끌도 저 매의 깃털을 더럽힐 수 없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더구나 이 부분은 강렬한 어조를 지닌 수사적 의문문에 힘차게 실림으로써 드높은 긴장감을 형성하는 한편, 긴장의 정점에서 시상의 흐름을 돌연하게 맺음으로써 수직 상승하는 매의 역동성에 대응시키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푸른 매는 결국 화자가 추구하는 고고한 자아에 대한 비유다. 만약 그렇다면 이 작품은 부도덕한 현실에 대하여 과감한 비판을 퍼부었던 건강한 사유(思惟)와 행동 양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고조기의 삶의 정서적 등가물에 해당된다고 해도 좋을 터다.

지난 여름의 엄청난 폭염과 마른천둥과 번개를 정말 용케도 뚫고 천고마비의 가을이 왔다. 우리 모두가 푸른 매가 되어 저 높은 하늘을 향해 수직 상승을 시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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