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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도 꼭 챙겨가라’ 강희맹

호미 들고 들판 갈 때 술병도 꼭 챙겨가라
호미질 열심히 했으니 술 마실 자격 있다
한 해의 살림살이가 호미질에 달렸으니
호미질 하는 그 일을 어찌 게으르게 하랴
提鋤莫忘提酒鍾(제서막망제주종)
提酒元是提鋤功(제주원시제서공)
一年饑飽在提鋤(일년기포재제서)
提鋤安敢 (제서안감용)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은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로 유명한 화가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의 친동생이다. 그는 유교의 나라 조선의 관인(官人)으로 살아가면서 중요한 관찬(官撰) 사업에 두루 참여했다. 하지만 같은 시대의 여느 관인들과는 달리 여러모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엄한, 아니면 최소한 근엄해야 마땅할 사대부였던 강희맹이 「촌담해이(村談解 )」라는 야담집을 저술한 것부터가 그렇다. ‘촌담’은 마을에 떠도는 이야기, ‘해이’는 턱이 빠지도록 껄껄 낄낄 웃는다는 뜻. 「촌담해이」는 마을에 떠도는 아주 노골적인 음담패설들을 모아놓은 책이니, 책장을 넘길 때마다 턱이 빠지도록 낄낄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농촌 사회에 전승되어오는 민요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대부로서는 파격적이라면 파격적이다.

위의 작품도 당시 농민들이 부르던 민요를 한시 형식에다 옮겨 담은 것인데, 파격적 요소가 수두룩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이 시가 교훈시이면서도 교훈시의 상투성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교훈시는 옳은 말이지만,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던 잔소리들이 핵심 내용이다. 따라서 교훈이 되기도 전에 진절머리부터 먼저 나서 좀처럼 감동이 되지 않는 것, 이것이 교훈시가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이 시도 결국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호미질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교훈적 내용으로 귀착된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 자체가 매우 특이하다. 보다시피 화자는 작품의 앞부분에서 대뜸 ‘열심히 일한 자는 술 먹을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호미를 들고 들로 나갈 때 술병도 반드시 챙기라’고 말한다. 진절머리 나는 잔소리가 아니라 엔도르핀이 확 솟구치고 귀가 번쩍 뜨이는 반가운 소리다. 들판으로 나가는 발걸음에 자연 신바람이 날 수밖에 없다.

‘열심히 공부해야 시원한 팥빙수를 사 준다’는 것과 ‘시원한 팥빙수를 먹어가며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것은 호미만 달랑 메고 무더운 들판으로 나가는 것과, 술병도 한 병 허리에 같이 차고 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의 차이와도 같다. 이 차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 교훈시가 우리에게 주는 아주 소중한 교훈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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