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날 언제냐고? 돌아갈 기약 없고파산에 내린 밤비 가을 못물 붇고 있소.서창의 등불 심지 언제 만나 자르면서 도리어 밤비 내리던 그 날 일을 얘기할까.君問歸期未有期(군문귀기미유기)巴山夜雨漲秋池(파산야우창추지)何當共剪西窓燭(하당공전서창촉)却話巴山夜雨時(각화파산야우시)* 원제: [夜雨寄北(야우기북)]* 寄北: 북쪽으로 부침. 이 작품은 북쪽 長安에 있는 아내에게 부치는 시임.보다시피 이 작품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내는 나에게 돌아올 기약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직 돌아갈 기약이 없고”로 직역되는 첫 구절을 통해서 볼 때, 이 시를 쓰기 전에 시인은 아내가 부친 편지를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 편지 속에서 아내는 ‘돌아올 기약이 아직도 없느냐’고 물음으로써, 제발 빨리 좀 돌아와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촉구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지금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창밖에는 밤비가 내리고 있다. 머나먼 타향에서 어서 돌아오라는 아내의 편지를 받은 가을 밤, 비마저 하염없이 추적추적 거려서 못물이 불어나고 있다니, 이 시는 정말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 속에
한때는 꿈이 많은 젊은이였지 헛디디다 때를 놓친 백발의 사내 그 누가 알았으랴, 거울 앞에서안팎 사람 서로서로 가련타 할 줄....宿昔靑雲志(숙석청운지)蹉跎白髮年(차타백발년) 誰知明鏡裏(수지명경리)形影自相憐(형영자상련)*원제: 照鏡見白髮(조경견백발: 거울 속의 백발을 보고) *張九齡: 중국 당나라의 시인.*宿昔: 옛날. 여기서는 젊은 날. *靑雲志: 원대한 포부를 실현하려는 뜻. *蹉跎: 발을 헛디뎌 넘어짐. 시기를 놓침. *形影: 자신과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어제는/ 나 그대와 같았으나/ 내일은/ 그대가 나와 같으리라.”유안진 시인의 「은발이 흑발에게」라는 시의 전문이다. 여기서 흑발은 물론 이팔청춘의 피가 펄펄 뛰는 젊은이들이고, 은발은 인생의 단 물이 죄다 빠지고 머리가 허옇게 센 늙은이들이다. 하지만 그 늙은이들도 한 때는 푸른 피 펄펄 뛰던 젊은이였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되는 것이 인생이다. 여기 옛날에는 검은 머리카락의 젊은이였던, 백발의 늙은이 한 사람이 있다. 인생의 봄날에는 그도 청운(靑雲)의 거대한 뜻을 품었다. 하지만 지금은 헛디디고 헛디디다 기회를 다 놓친 백발의 늙은이가 되어
저 나쁜 놈이제 나와는 말도 하지 않네너 따위 때문에내가 밥도 못 먹을 것 같니?저 나쁜 놈이제 나와는 밥도 먹지 않네너 따위 때문에내 마음 편안하지 못할 것 같니?彼狡童兮(피교동혜)不與我言兮(불여아언혜)維子之故(유자지고)使我不能餐兮(사아불능찬혜)彼狡童兮(피교동혜)不與我食兮(불여아식혜)維子之故(유자지고)使我不能息兮(사아불능식혜)*원제: 狡童(교동)공자에 의해서 편찬되었다는 [시경(詩經)]에 수록되어 있는 시다. 대부분의 시경 시가 그러하듯이 이 작품도 역시 동일한 구조 속에다 유사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작품 속의 화자는 어느 날 난데없이 실연을 당한 여인이다. 그녀는 지금 그 동안 자신과 사랑을 속삭이던 남자가 갑자기 말조차도 하지 않고 밥조차도 같이 먹어주지 않는 가슴 아픈 상황 속에 처해 있다. 아마 새 애인이 생겼나 보다.하지만 여인은 그와 같은 돌발적인 사태 앞에서도 표면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 “너 따위 때문에/ 내가 밥도 못 먹을 것 같니?”, “너 따위 때문에/ 내 마음 편안하지 못할 것 같니?”라는 반어문 뒤의 여백에다 ‘천만에’라는 답변을 공공연히 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여인이 정말로 밥도 잘 먹고 마음
약을 캐다가 홀연 길을 잃었는데 첩첩 산들 단풍 옷 입고 섰네 산승이 물을 길어 어디 돌아가더니만 수풀 끝에 차 끓이는 연기가 솔솔~採藥忽迷路(채약홀미로)千峰秋葉裏(천봉추엽리)山僧汲水歸(산승급수귀)林末茶烟起(임말다연기)*원제: 山中(산중)율곡 이이(李珥)가 지은 손바닥 만 한 시다. 작품 속의 사내는 깊고도 깊은 산 속에서 정신없이 약을 캐고 있다가 홀연 길을 잃고 말았다. 여기가 어딜까 하고, 문득 사방을 둘러본다. 온 동내 된장 고추장을 모두 다 퍼 와서 완전 뒤범벅 해 처바른 듯이 천산 만산의 단풍들이 아예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다. 그야말로 아무도 없는 첩첩산중이다. 풍경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바로 그 때, 산속에서 살고 있는 승려 한 분이 물을 길어 어디론가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디 가까운데 절이 있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저쪽 수풀 끝에서 보글보글 차 끓이는 연기가 솔솔 피어나기 시작한다. 눈물이 핑 돌도록 푸른 하늘에 하얗게 솔솔 피어나는 연기. 순도 100%의 절대적인 적막 속에서 아연 가벼운 생기가 돈다.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눈앞에 그림이 다 그려진다. 고작 스무 자에 불과한 시에 한 두 폭도
내사 마 안타깝네, 이미 다 지난 세월!그대야 무슨 걱정, 지금 하면 되는 것을 쌓고 또 쌓아서 저 높은 산 될 때까지 어영부영하지 말게, 급하게도 굴지 말고 已去光陰吾所惜(이거광음오소석) 當前功力子何傷(당전공력자하상) 但從一簣爲山日(단종일궤위산일) 莫自因循莫太牤(막자인순막태망) *원제: [자탄(自歎: 스스로 한탄함)]1564년. 퇴계 이황(李滉:1501-1570)도 나이가 어언 예순 넷에 이르고 있었다. 그 무렵 퇴계는 벼슬에서 물러나와 낙동강 가에다 도산서당(陶山書堂)이란 아주 조그만 서당을 짓고, 우주와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제자 김취려(金就礪:1539-?)가 도산서당으로 찾아와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3수의 시를 지어 퇴계에게 바쳤다. 퇴계도 역시 그의 시에다 맞장구질 친 3수의 시를 지어 그에게 주었다. 위의 작품은 그 가운데 하나다.예순 넷이면 그 당시로서는 꽤 많은 나이다. 저승사자가 대문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얼핏얼핏 보이는 시점이다. 그러므로 퇴계로서도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 없을 수가 없었을 터다. 그 무렵 그는 학자로서의 마지막 열정을 온통 공부에 쏟아 붓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이미 많은데다,
홍류동엔 천산 만산 온통 다 짙푸르고 둘러싼 벼랑, 벼랑 옥 병풍을 깎았는데,고금의 나그네가 제 이름을 새긴 것이팔만대장경보다도 오히려 더 많을 지경.紅流洞裏萬山靑(홍류동리만산청)四壁周遭削玉屛(사벽주조삭옥병)今古游人題姓字(금고유인제성자)多於八萬大藏經(다어팔만대장경)내 나이 아직 스물에도 미치지 못했던 시절, 조선팔경의 하나라는 가야산 홍류동 계곡에 갔다가 하마터면 뒤로 넘어 갈 뻔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절경다운 절경을 전혀 구경하지 못했던 나에게 홍류동 일대의 빼어난 산수부터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바위, 바위들이 바위를 이고 있는, 그 무수한 바위들마다 수두룩 빽빽하게 새겨져 있는 그 엄청난 이름들 앞에서도 나는 그만 입을 딱 벌렸다.이 시를 지은 조선후기의 시인 이건창(李建昌:1852-1898)도 나와 꼭 같은 경험을 나보다 백년쯤 먼저 했던 모양이다. 그는 말한다. ‘홍류동의 산들은 온통 짙푸르고, 홍류동 벼랑들은 옥으로 깎아놓은 병풍처럼 아름답다’고. 그는 또 말한다. ‘그 옥 같은 병풍에 덕지덕지 새겨진 이름들이 팔만대장경의 글자 수보다도 더 많다’고. 시인은 이 시를 ‘장난삼아 지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장난삼아 지은 시가 아니다. 말 속에
천지간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자 자던 구름 다 돌아가고 변방 하늘 높기도 하다.푸른 매 수직으로 아찔하게 솟구치니그 어느 작은 티끌인들 저 깃털을 더럽히랴 風入湖山萬竅號(풍입호산만규호)宿雲歸盡塞天高(숙운귀진새천고) 蒼鷹直上百千尺(창응직상백천척)那箇纖塵點羽毛(나개섬진점우모) * 원제: [書雲巖鎭(서운암진)-운암진에서]다소 생소한 이름일지 몰라도 이 시를 지은 고조기(高兆基 : ?-1157)는 작품이 남아 전하는 최초의 제주도 출신 시인이다. 그러니까 그는 제주도 문학사를 수백 년 이상 끌어올린 제주도 문학의 할아버지가 되는 셈이다. 험난한 바다를 건너와서 높은 벼슬에 올랐던 고조기는 부도덕한 정권에 과감하게 항거했던 지사형의 인물이었다. 그는 타락한 세계에 대한 저항 정신과 자기 수호 혹은 자기 초월에의 의지가 남달랐던 사람이었으며, 이 점은 위의 작품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인용한 작품은 천지간을 뒤덮으며 격렬하게 울부짖는 바람 소리에서 시상이 시작된다. 그 거센 바람에 구름조차 죄다 날려가자 변방 하늘은 티 없이 높고 삼엄하게 푸르다. 화자는 지금 그 아득한 하늘로 날아가는 푸른 매를 바라보고 있다. 매는 거센 바람을 타고 백천척(百千尺)을 수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