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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문화상 작품보기

제38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 배수(排水)

  • 작성자 : 계명대신문사
  • 작성일 : 2018-06-04 10:47:43

 ● 제38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 배수(排水)

배수(排水) 

 

이주현 (동국대학교•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4) 


  미진은 내게 소리 없이 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세면대에 물을 가득 채운 뒤 물에 머리를 박고 우는 것이었다. 한 번 들어갈 때 숨을 최대한 깊이 들이마셔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자주 들락거리게 돼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기 쉽다고 했다. 또 우는 동안 입을 벌리면 안 되며 다 울고 나서는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물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기분이 나아진다고 일러주었다.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 있는 미진의 얼굴 주변으로 붉은 피가 번졌다. 나는 미진의 긴 머리카락이 물에 젖지 않도록 살짝 잡아주었다. 손에 잡히지 않은 잔머리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미진씨, 병원에 가봐야지 않을까?

  미진은 얼굴을 박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진이 고개를 흔들 때마다 수채 물감이 묻은 붓을 물속에서 흔드는 것처럼 피가 사방으로 퍼졌다. 미진은 꽤 오랫동안 그대로 있었다. 이렇게 내버려둬도 괜찮을까 싶을 때쯤 미진이 파,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그녀의 목 주변이 젖었다. 미진은 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한 번 쓸어낸 뒤 손을 털었다. 코 주변엔 묽은 피가 번져 있었다.

  요즘 들어 통 코피가 멈추질 않아.

  미진은 거울을 보며 말했다. 확실히 미진은 최근 마주칠 때마다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있곤 했다. 나는 휴지를 뜯어 미진에게 건넸다. 미진은 휴지를 가늘게 말아 왼쪽 콧구멍에 집어넣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미진은 거울로 내가 시계를 확인하는 것을 보고는 그만 레스토랑에 내려가 보라고 했다. 나는 공용 화장실에서 나와 주변을 살폈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묘하게 긴장이 됐다.

 

*

 

  미진은 백오십오 센티미터에 삼십오 킬로그램이었다. 자꾸만 더 말라가는 것 같았다. 걸어 다닐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미색 반팔 유니폼 사이로 비죽 나온 팔이 안쓰러웠다. 목에는 촌스러운 보라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안 그래도 얼굴에 살이 없어 큰 리본이 더 커보였다. 리본과 같은 색의 바지는 얼핏 보아도 사이즈가 두 치수는 큰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꾸만 허리춤을 추켜올렸다. 머리는 늘 포니테일로 높이 묶고 다녔는데, 나는 그 머리가 미진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미진은 빌딩에 있는 화장실을 청소했다. 나는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시간이 남으면 사 층에 있는 공용 화장실에 가서 혼자 담배를 피곤 했다. 레스토랑이 있는 이 층과 환전소들이 있는 삼 층 화장실은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렸고 오직 사 층 공용 화장실만 사람이 거의 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 층 화장실 문을 열면 정면에 작은 창문이 하나 보였다. 창문은 고장이 나서 닫히지 않았다. 하얀 타일 벽에 있는 그 창문은 작은 그림 같아 보였다. 나는 창문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거나 그 벽에 기대서 담배를 피웠다. 창문 옆에는 작은 창고 칸이 하나 있고, 그 옆에 좌변기 칸이 하나 있었다. 두 칸의 맞은편에는 남성용 소변기와 세면대가, 세면대 위에는 거울이 달려 있었다. 화장실 문을 열면 항상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악취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소변기를 쓸 일이 있으면 이 층 화장실로 갔다. 사 층 화장실은 오로지 쉬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미진도 청소를 하다가 쉬고 싶을 때 사람들을 피해 사 층 화장실 창고에 와 있곤 했다. 초반에는 미진이 쉬러 와서 문을 열었다가 나를 보고는 놀라 도망갈 적이 많았다. 나도 미진이 창고 구석에 앉아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해서 나간 일이 몇 번 있었다. 대부분은 시간이 겹치지 않았지만 종종 우연히 마주칠 때면 우리는 서로를 피했다. 시간이 지나고 서로 화장실에서 딱히 하는 일 없이 쉬다가 가는 것을 안 뒤로는 피하지 않았다. 미진도 화장실을 쓸 일이 있으면 이 층이나 삼 층에 가는 것 같았다. 그 화장실에서 우리 둘은 정말로 쉬기만 했다. 미진은 창고에 쭈그려 앉아 쉬었고, 나는 창문이 있는 벽에 기대서 담배를 피웠다. 미진은 앉아 있으면 너무 작아 아이 같았다. 무릎을 모아 끌어안고 턱을 괴고는 자주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서로가 익숙해진 다음부터 우리는 조금씩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주로 미진이 이야기를 했고, 나는 대답만 하는 쪽이었다. 우리는 같은 벽에 기대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초등학생 때 말이야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앞에 올라가던 남자애가 갑자기 뒤를 돌더니 내 얼굴에 주먹을 꽂았어. 같은 반 남자애였는데 친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조그만 주먹을 맞고 코피가 났어. 왠지 그때부터 코피가 멈추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병원에서는 그냥 콧속이 건조한 편이래. 그래서 자꾸 피가 나는 거라고. 건조하다니, 너무 애매모호한 말 같지 않아? 피부가 건조한 것도 아니고 콧속이 건조하다고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물에 얼굴을 묻어.

  미진은 세면대에 물을 받으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담배를 입에 물었다. 서로 말이 없으면 미진은 물을 받아 얼굴을 담그고 있거나, 주머니에서 손톱깎이가 달린 작은 맥가이버를 꺼내 손톱과 발톱 근처의 굳은살을 뜯어냈다. 미진이 물에 얼굴을 묻으면 머리카락이 물에 닿지 않도록 잡아 주었다. 나는 혹시나 내 손가락이 미진의 살에 닿을까봐 조심해서 머리카락을 잡았다. 미진의 머리카락은 숱이 많고 푸석했다. 미진은 내가 머리카락을 잡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세면대에 퍼지는 피 색깔은 묘하게 매번 달랐다. 어느 날은 평소보다 검기도 했고 어느 날은 아주 새빨갛기도 했다. 미진은 코피가 멈춘 것 같으면 고개를 들고 배수구로 물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피가 붉은 원을 그리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

 

  미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낮에는 고등학교에서 급식 배급 아르바이트를 했고, 저녁때는 화장실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틈틈이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아와 밤새 교정 아르바이트를 한다고도 했다. 코피가 나지 않는 게 이상한 생활이었다. 미진은 서울에 있는 대학 국문과를 나왔다. 하지만 사람들을 대하고 마주치는 게 싫어 취직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전전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도 혼자 살 돈은 충분히 벌 수 있다면서.

  미진은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꼭 혼자 레스토랑에 와서 바질 페이스트 파스타를 먹고 갔다. 바질 페이스트 파스타는 레스토랑 메뉴 중 아마트리치아나와 같이 가장 싼 메뉴였다. 하지만 먹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오일과 마늘, 그리고 바질 페이스트로만 향을 낸 파스타는 익숙하지 않은 맛이어서 주로 파스타를 잘 모르거나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만 찾았다. 

  나는 미진이 혼자 레스토랑 구석 자리에 앉아 천천히 바질 페이스트 파스타를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미진은 할라피뇨와 오일에 버무려진 마늘까지 다 먹어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다. 식사를 하는 동안 아르바이트로 한다던 교정 원고를 가져와 읽다 갈 때도 있었다. 가끔 가다 시집이나 소설책을 가져와 한 페이지를 펼쳐놓고 그 페이지만 뚫어져라 보면서 밥을 먹기도 했다.

  지난주에는 미진이 앉은 테이블 위에 작은 수첩이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테이블 정리를 마치고 미진에게 다가갔다. 미진은 역시 수첩의 한 페이지를 펼쳐놓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연필로 무언가를 그린 것이 있었다. 내가 관심을 갖자 미진은 수첩을 내게 건네주었다. 

  미진이 보여준 수첩은 스케치 수첩이었다. 연필로 신체 일부들이 세부 묘사 되어 있었다. 눈썹, 혹은 검지 두 마디, 윗 입술, 팔꿈치 같은 작은 부위들. 아주 잘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부드럽게 번져 있는 연필선의 느낌이 좋았다. 연필로는 색을 낼 수도 없는데 어쩐지 그림이 따뜻한 느낌이었다. 나는 수첩을 넘겨보다가 미진에게 미술을 배운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미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치만 좋아해. 매일 밤 자기 전에 일기 쓰는 대신 이런 걸 그려.

  나는 수첩을 계속 넘겨보았다. 페이지마다 수첩 하단에 그림을 그린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거의 다 새벽이네?

  내가 물었다. 미진은 악몽을 자주 꿔 새벽에 항상 깨 있다고 했다. 잠이 오지 않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앞쪽의 그림들은 오래 전에 그린 것이라 많이 번져 있었다. 나는 작년 삼월 십삼일 미진의 오른쪽 귀, 작년 칠월 십팔일 미진의 왼쪽 약지 손톱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미진의 귀와 손톱 끝을 바라보았다.

  이런 게 재밌어?

  나는 평생에 그림이라든가 미술이라든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하는 거지 뭐.

  미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

 

  미진은 내게 화장실 청소를 하다보면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변기 놔두고 휴지통이나 바닥, 변기 뚜껑에 똥 싸는 사람도 있고 휴지에 물 묻혀서 사방팔방에 붙여놓는 사람도 있어. 버리지 말라고 써져 있는데도 생리대 변기에 버려서 막히게 하는 사람은 흔하고. 화장실 휴지통에는 또 얼마나 다양한 쓰레기들이 들어 있는지…

  그렇게 말하면서 미진은 수거해온 쓰레기의 공기를 잘 뺀 뒤 야무지게 묶었다.  

  변기가 막히거나 쓰레기 치우는 건 이제 익숙해. 근데 나는 왜 이렇게 음모가 익숙해지지 않는지 모르겠어. 청소를 하다보면 변기 커버에 꼭 음모가 몇 가닥씩 떨어져 있거든. 그걸 치우고 있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들어. 남의 음모는 함부로 보기 힘든 부위잖아. 앞으로도 음모는 익숙해지기 힘들 것 같아. 오줌 방울 닦아내는 것보다 음모를 치우는 게 더 싫어. 싫다고 해야 되나, 잘 모르겠다. 그냥 기분이 좀 이상해.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음모를 치우고 있다는 게.

  미진은 공기를 뺀 쓰레기봉투들을 차곡차곡 50L짜리 종량제 봉투에 담았다. 종량제 봉투가 다 차자 박스 테이프로 꼼꼼히 테이핑 한 뒤 맥가이버칼을 꺼내 테이프를 끊었다. 미진의 코에서 또 코피가 흘렀다. 나는 미진에게 휴지를 건넸다. 미진은 휴지를 받아 코 밑에 갖다 댔다. 미진의 손에 남아 있던 물기와 피로 휴지가 젖어갔다. 나는 그 휴지가 젖어드는 걸 잠자코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렇게 일해서 번 돈으로 뭘 해?

  그러고 보니 미진은 술 마시는 것도 싫어했고, 달리 취미생활이랄 것이 없어 보였다. 밥도 하루에 한 끼 간신히 먹을까 말까 했다. 미진은 자신을 혹사시키는 것처럼 일만 했다. 혼자 있을 땐 대체 무얼 하나 궁금했다. 미진은 한참 고민하더니 간신히 답했다.

  그림을 모아.

  그림을?

  나는 의외의 대답에 조금 놀랐다.

  그냥, 그림을 사면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진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가끔은 미술관도 가.

  미진은 프리다 칼로전에 가서 세 시간 동안이나 있다 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프리다 칼로 전은 얼마 전 올림픽공원에 있는 소마 미술관에서 열렸다고 했다. 소마 미술관은 규모가 작은 미술관이라고 했다. 나는 그 작은 미술관에서 뭘 하느라 세 시간이나 있었냐고 물었다. 그녀는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했다고 했다. 이를테면 같은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다가 멀리서도 본다거나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며 훑어보다가 찬찬히 살펴보는 식이었다. 혹은 클래식을 들으며 감상하다가 음악 장르를 바꿔가며 같은 작품을 감상하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어떤 도움이 되냐고 물었다. 미진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어디에도 도움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혼자서 노는 방식일 뿐이라고 답했다.

  미진은 코피 닦은 휴지를 버리고 맥가이버를 꺼냈다. 그리고 아까 테이프를 끊은 작은 칼을 꺼내 종량제 봉투를 마구 찔렀다. 봉투가 찢기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바람 빼는 거야. 해볼래?

  미진이 칼을 꼭 움켜쥐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진은 싱거워졌는지 종량제 봉투를 문 앞에 갖다 두고 세면대에 서서 중지 손가락에 있는 굳은살을 뜯었다. 딱, 딱. 세면대에 떨어진 굳은살들은 물로 쓸어버렸다.

 

  어릴 때 엄마가 커터칼로 발뒤꿈치에 있는 굳은살을 잘라내곤 했는데, 사악사악 하는 소리가 났어. 나는 피가 날까봐 손가락 사이로 엄마를 바라봤어. 엄마 발뒤꿈치에는 정말 두꺼운 굳은살이 붙어 있었어. 꼭 엄마가 도망만 다니던 사람인 것처럼. 나는 야들야들한 내 발이랑 엄마의 발을 번갈아 보면서 내 발도 저렇게 되는 날이 올까 생각했어. 그런데 내 발에도 언제부터인가 굳은살이 자라기 시작하는 거야. 계속 깎아내면 엄마만큼 굳은살이 자라는 일은 없겠지.

  나는 미진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작은 남색 단화에 새하얀 운동화 끈이 예쁘게 묶여 있었다. 

 

 

*

 

  하루는 미진이 20세기 화풍을 좋아한다고 했다. 전공자가 아니라서 현대 미술은 어렵고 근대 이전 미술은 따분하다고. 그러면서 미진은 디에고 리베라나 이브 탕기 보다는 프리다 칼로와 케이 세이지가 좋다고 했다. 나는 피카소나 고흐 외에는 아는 화가가 없어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남기고 싶어 하잖아. 어떤 방식으로든.

  미진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미진을 바라보았다. 코 주변에 검은 피가 굳어 있었다. 나는 미진에게 휴지를 건넸다. 미진은 휴지를 받아 코를 풀었다.

  화가들은 작품에 자기를 조금씩 나눠서 보관하는 거 같아.

  그런가, 라고 생각했다. 미진은 어쩐지 즐거워보였다. 나는 언젠가 미진이 자신은 이해하면 안 될 것들이 자꾸만 이해가 돼서 괴롭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미진은 정말로 괴로워보였다. 미진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자주 했다. 이해하면 안 될 건 뭐고 또 그게 이해되는 건 뭔지. 나는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다가 미진이 했던 말을 종종 곱씹었다.

  나는 초현실주의 작품 중에서 케이 세이지의 그림만큼 강렬한 걸 본 적이 없어. 루소나 달리는 자신이 천재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싫어. 그림에도 그게 드러나거든. 케이 세이지의 그림을 보면 침잠된 꿈을 꾸는 느낌이 들어. 나는 그 느낌이 좋아.

  언젠가 프리다 칼로나 케이 세이지 같은 작가의 작품도 사고 싶어.

  그 사람들 작품은 얼마나 하는데?

  케이 세이지는 몇 십억 대 정도. 아마 좀 더 싼 작품들도 있겠지. 프리다 칼로 작품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돈 한 푼 안 쓰고 모아도 못 살 거야.

  미진의 눈은 손톱깎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미진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삼십 대 초반이라기엔 뭐랄까, 나이 들어 보인다기 보다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긴 속눈썹이 버거워 보였다. 미진은 손톱깎이로 딱, 딱, 하고 굳은살을 떼어냈다.

  문득 미진이 결혼을 했었다고 말하던 게 생각났다. 그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전 남편에 대한 얘기라든가 왜 이혼을 했다든가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굳은살을 뜯는 버릇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담배를 벽에 지져 껐다. 그리고 창문이 있는 작은 벽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았다. 딱, 딱, 하는 일정한 소리가 어쩐지 안정적인 느낌을 주었다. 미진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작은 창문에서 찬바람이 스며들고 있었다.

  불행하게 살았어.

  미진이 세면대로 걸어가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딴생각을 하느라 대화를 놓쳤다가 미진이 움직이는 바람에 주의가 돌아왔다.

  살면서 서른 번 가까이 수술하거나 남편이 친동생이랑 바람을 피우거나 권총 자살을 하는 게 행복한 인생은 아니니까. 

  무슨 소리야?

  화가들 말이야.

  미진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불쌍하진 않아. 불행은 어쩔 수 없는 거잖아.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 사람들은 어차피 피해갈 수 없다는 걸 알아서 스스로 불행을 선택한 거야. 선택하고 최선을 다했어.

  미진은 덧붙일 말을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그만 두었다.

  불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불쌍한 거 아니야?

  내가 미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진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굳은살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미진은 세면대로 가서 손을 닦았다. 물이 묻으니 앙상한 손가락이 더 앙상해 보였다. 미진은 물기를 대충 털어낸 뒤 머리를 풀었다가 다시 높게 묶었다. 얼굴 옆으로 흘러나온 잔머리와 긴 속눈썹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가 예쁜 얼굴이지만 어딘가 생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미진은 높이 묶은 머리를 양쪽으로 잡아당겨 튼튼하게 고정했다. 나는 거울을 통해 미진의 새카만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미진의 작은 손가락과 발가락은 살이 몇 겹씩 벗겨져 붉었다. 금방이라도 새빨간 피가 흘러내릴 것 같았다.

 

*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 점심시간이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나는 세척기에서 나온 식기들을 바에 정리해두었다. 손님들은 많이 빠졌지만, 치워야 되는 테이블이 산더미였다. 카트를 밀어 여러 테이블을 한꺼번에 치웠다. 졸졸 쫓아오던 고등학생 알바애가 나를 도왔다. 평소보다 밥시간이 한 시간 정도 미뤄졌다.

  일을 마치고 평소처럼 사 층으로 올라왔다. 화장실 문을 열자 창고 칸 쪽에 가느다란 다리가 삐져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 미진이 쓰러져 있었다. 미진은 유니폼을 입고 고무장갑을 낀 채로 대걸레를 꼭 쥐고 있었다. 나는 대걸레를 치우고 미진을 들어 화장실 밖으로 빼냈다. 호흡과 맥박은 있는 것 같았다. 구급차를 불렀다. 나는 미진을 업고 계단 쪽으로 달렸다. 미진은 어린아이처럼 가벼웠다. 그리고 뼈가 앙상해 잡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미진을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구급차는 생각보다 금방 왔다. 나는 구급차에 미진을 눕혔다. 구급대원은 미진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맥박을 체크했다. 미진은 죽은 것처럼 가만히 누워 있었다. 차가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미진의 고개가 흔들거렸다. 나는 산소마스크에 김이 서리는 것을 확인하고 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점장은 전화기 너머로 욕을 해댔다. 나는 점장에게 죄송하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의사는 미진이 영양실조라고 했다. 섭취하는 에너지보다 소비하는 에너지가 더 많아서 그렇다고. 예? 영양실조요? 나는 잠시 놀랐다가 이내 수긍했다. 미진은 저혈압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무리하고 있네요.

  의사가 응급실 침대에 얌전히 앉아 있는 미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사는 입원을 권유했지만 미진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미진은 맞고 있는 링거만 다 맞으면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원고 마감을 지키려면 오늘 안에 일정 분량을 보고 자야한다면서. 의사는 그럼 입원은 안 하더라도 통원 치료는 꼭 받고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미진은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미진은 신세 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평소에 내가 음료수라도 하나 사다 주면 다음날 뭔가를 잔뜩 사가지고 왔다. 미진은 무엇이든 받는 것보다 차라리 주는 게 더 마음 편한 사람 같아 보였다. 그녀는 더 주면 더 주지 절대로 무언가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미진은 옆에 앉아 있는 날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일단 쉬라고는 했지만 한눈에 봐도 불편해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응급실은 바쁘게 돌아갔다. 아주 멀쩡해 보이는 환자가 들어오기도 했고 정말 응급 상황처럼 보이는 환자가 들어오기도 했다. 나는 미진이 맞고 있는 수액을 확인했다. 미진이 수액 떨어지는 속도를 높여놔 금세 홀쭉해져 있었다. 어느새 해가 졌다. 나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멀리 초승달이 보였다. 유월이 다 가고 있는데도 해가 지니 날이 꽤 선선했다. 나는 담배를 대충 다 피우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미진이 이미 링거를 뽑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초승달을 보면 배수구 마개가 떠올라. 초승달에다가 손가락을 걸고 이쪽으로 당기면 저 너머에 있던 빛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

  미진은 가느다란 검지를 높이 들어 초승달을 끌어당기는 시늉을 했다. 나는 미진을 바라보다가 초승달을 보았다. 초승달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미진의 말을 듣고 보니 배수구 마개 고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나는 마개를 당겨 빛이 세상에 쏟아져 넘실거리는 상상을 했다.

  가로등 빛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미진의 포니테일 그림자가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그림자를 바라보며 비틀거리는 미진의 팔을 붙잡았다. 미진의 팔뚝은 내 손목보다 가는 것 같았다. 미진은 딱히 내 부축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화장실 이외의 공간에서 미진과 같이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미진은 말없이 계속 걸었다. 나도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식하고 나니 걷는 것부터 숨 쉬는 것까지 다 어색하게 느껴졌다.

 

  미진의 집은 레스토랑에서 지하철로 세 정거장 거리였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미진을 부축해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미진의 집은 구식 원룸이라 6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나는 미진을 업어줄까 하다가 미진이 질색을 하는 바람에 옆에서 부축만 해주었다. 데려다 주기만 하고 집으로 가려고 했더니 미진이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자기도 배가 고프니 같이 밥이라도 한 끼 나가서 먹자는 것이었다. 나는 미진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기다렸다.

  십여 평 남짓의 방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현관문 앞에서부터 독한 기름 냄새가 났다. 일단 가구나 집기가 별로 없어 깔끔했다. 다만 수많은 그림들이 원룸 벽을 둘러싸며 걸려 있었고, 여러 개의 액자가 겹쳐진 채 바닥에 쌓여 있기도 했다. 나는 바쁘게 일하던 미진을 떠올렸다. 미진은 겉옷과 지갑을 챙기다가 내 시선을 보고는 말했다. 틈틈이 돈 생길 때마다 사서 모아놓은 거야. 젊은 국내 작가 작품도 많고 외국 작가 작품도 많아. 그러면서 미진은 원룸이라 못질을 못해 주로 가벼운 그림들만 걸어 놓는다고 했다. 잘 보니 그림은 전부 못 대신 벽걸이 핀에 걸려 있었다. 미진은 거의 유화 작품들이라 냄새가 좀 난다고 했다. 조금 나는 정도가 아니었다. 도저히 방 안에 오래 있지 못할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열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미진의 집 맞은편에 있는 순댓국 집에 들어왔다. 미진은 순댓국 두 그릇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그리고는 내가 계산하지 못하도록 계산을 미리 해버렸다. 나는 미진이 술을 마시는 것을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다. 미진에게 괜찮겠냐고 묻자 미진은 별 일 아니라는 듯 가게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뭔가 할 말을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도저히 찾지 못하고 그냥 앉아 있었다. 미진은 휴지를 리본 모양으로 접어서 깔고 그 위에 수저를 올려놓았다. 내 앞에도 하나 놓아주었다. 

  이렇게 하면 수저가 바닥에 닿지 않아.

  나는 물을 따라서 미진에게 건넸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물만 주구장창 마셔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댓국 두 그릇이 나왔다. 미진은 먹기 전에 부추와 통깨를 충분히 넣었다. 나는 다데기를 한 숟갈 퍼서 넣고 고기부터 건져 먹었다. 부드러운 고기가 입안에서 잘게 부서졌다. 국물을 한 술 뜨자 잊고 있었던 허기가 느껴졌다.

  소주가 나오자 미진은 잔 두 개를 자기 앞에 두고 물을 따르듯 잔을 채웠다. 나는 예의를 차릴까 하다가 관두었다. 미진은 소주를 알맞게 나눠 담은 뒤 내게 잔 하나를 건넸다. 나는 잔을 받아들고 정말 괜찮겠어? 좀 전에 쓰러졌잖아, 라고 물었지만 미진은 인상을 조금 찡그리며 이미 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도 같이 잔을 비웠다.

  미진은 가느다란 팔로 부지런히 술을 따랐다. 우리는 어느새 두 병째 비우고 있었다. 미진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눈이 풀린다거나 얼굴이 붉어진다거나 하는 것 없이 멀쩡했다. 대신 말 수가 적어진 것 같았다. 우리는 딱히 대화를 나누지 않고 조용히 밥과 술을 먹었다. 미진도 배가 고팠는지 평소보다는 배로 빨리 먹었다.

  조금 더 마시자 묘하게 미진의 행동이 느려진 것 같았다. 미진은 무릎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가만히 있었다. 급하게 먹더니 순댓국을 반 정도 남겼다. 나는 밥과 순댓국을 모두 깨끗하게 비운 뒤 그릇을 치우기 쉽도록 정리했다. 미진이 남긴 한 병을 마저 다 비우자 나도 취기가 오르는 듯했다.

  미진씨, 너무 무리하지 않는 게 어때?

  정적을 깨고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미진이 갑자기 서둘러 휴지를 찾았다. 나는 휴지를 건네주었다. 미진이 휴지를 코에 갖다 대자 휴지가 금세 새빨간 피로 물들었다. 유독 빨간색이었다. 미진은 휴지를 코에서 떼고 확인했다. 휴지가 피로 다 젖어 있었다. 미진은 한참 그 휴지를 내려다보는가 싶더니 별안간 벌떡 일어났다. 그 반동으로 의자가 넘어질 뻔했다. 나는 미진을 올려다보았다. 미진은 휴지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갑자기 가게 밖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미진의 짐을 챙겨 미진을 따라 가게에서 급하게 나왔다. 미진은 높은 빌딩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을 향해 달렸다. 미진의 포니테일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미진의 정수리 위로 초승달이 떠 있었다. 빌딩들은 그녀의 양 옆에서 그녀를 덮치려는 파도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안 그래도 작은 미진이 더욱 더 작아보였다. 미진은 헐떡거리며 달렸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 같기도, 초승달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기도 했다. 저렇게 뛰다간 금방 넘어질 것 같아 부축해주려 했지만, 미진은 나를 뿌리치고 계속 달렸다. 몇 번 발을 접지르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럴수록 초승달은 더욱 닿을 수 없이  멀리 멀리 가 있는 것만 같았다.




● 제38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 수상소감

“감사를 전할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매번 새로 배우는 입장이 되어 소설을 씁니다. 새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소설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쓸수록 더 알 수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함께 쓰는 동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개적인 지면을 통해 스터디 친구들에게 감사를 전할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제가 이렇게나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동기들의 덕이 큽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서로 격려하고 재촉해 저를 포함한 스터디 친구들 모두가 좋은 결실 맺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동안 저희를 이끌어주신 동국대학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부족한 소설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분들과 행사를 위해 힘써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여태껏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부모님, 여러 방면에서 도움 주시는 삼촌들, 할머니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같이 있으면 언제나 즐거운 우리 오빠와 원동력이 되어주는 오랜 친구들, 그리고 남자친구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수상소감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감사드리는 것 외에 제가 별달리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한 마음 오래도록 간직하며 앞으로도 건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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