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과에 편입하면서 제일 기뻤던 순간은 기숙사 방문 앞에 꽂힌 명패를 봤을 때다. 이를 발견하자마자 엄마한테 사진을 찍어 보내며 “이거만 봐도 행복하다. 이러려고 그렇게 돌아왔나 봐.”라고 말했던 날도 벌써 지나가고 나는 이 초심을 잃지 않고자 책상에 ‘간절하게 공부하고 싶었던 날들을 떠올려라.’라고 붙인 종이를 계속 보곤 한다.
편입하기까지 짧지만 길었던 시간을 보냈다. 19살의 수능을 건너뛰고 치른 20살의 수능과 21살의 휴학, 22살의 자퇴와 학점은행제의 시작, 23살의 편입까지. 어느 한 부분도 평범하지 않았기에 부모님의 마음도 꽤 상하게 했다. 사람들은 나를 충동적이라며 비난하거나 대단하다며 선망의 눈빛을 보내곤 했다. 내 도전엔 그리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난 얇고 긴 인생 말고 짧고 굵은 인생 살래”라며 소리치던 철없는 아이가 성인이 되려는 찰나에 반대로 ‘얇고 긴 인생’을 살까 봐 도망쳤던 것이 시작이었다. 도망침에 이유를 더하다 보니 나는 별난 사람 혹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있었고 이젠 정말로 내가 평범한 사람이란 것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착잡했었다. 이를 숨기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려 했던 나에겐 일상이 스트레스였고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엔 ‘차라리 아무도 안 만나고 말지.’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또한, 학점은행제조차 코로나로 인해 학위를 따기 위한 자격증 시험이 매번 조정되어 제주도에 살던 내가 비행기를 타고 올라간 당일과 바로 다음 날에 각각 다른 시험을 보는 어처구니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중 하나라도 떨어졌다간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될 거라는 부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주변인들과 동떨어진 기분을 지울 수 없었으며 또래보다 뒤처진 느낌에 인스타그램을 삭제하고 밤새워 우울해하기도 했다.
이때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간절하게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 단 하나였다. 2020년의 나는 슬럼프가 올 때마다 ‘내년에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을 거야.’라는 어쩌면 소박하고도 확실한 다짐을 했고 결국엔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던 심리학과에 오게 되었다. 그렇기에 밀려오는 과제도, 어렵다고 소문난 통계학도 모든 순간 감사하고 즐겁다. 어쩌면 이 즐거움을 알고자 또래보다 조금 돌아서 왔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명언이 있다. 앞으로도 공부하며 어떠한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이를 성장할 기회로 받아들이고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의 내가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지금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