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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헤르만 헤세의 <페터 카멘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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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떠남의 이야기요 방랑의 기록이다. 좀 더 근사하게 말하자면, 소설은 정신적 고향을 찾아 가는 길이다. 방황에 내맡겨진 젊은이들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요즘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실로, 이 시대에 ‘길’을 탐색하는 소설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 한 권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내  눈길이 자꾸만 옛날로 내려간 이유이다. 너무 옛날은 그렇고 20세기 초에 나온 소설 한 권을 소개할까 한다. 

 

<페터 카멘친트>. 헤세가 27살 때 쓴 청춘소설이다. 우리에게는 <향수>로 더 잘 알려진, 소위 성장소설이다. 젊은 페터가 보여주는, 힘겨우나 낭만의 아우라가 깃든 성장사는 누구나 한번쯤 겪는 모습일 것이다. 각박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페터의 청춘기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연·사랑·우정·여행·봉사로 요약할 수 있다. 스위스 산골에서 태어난 페터의 유년기는 완전히 자연에 감싸인 일상이다. 산과 호수가 친구이고 풀밭에 누워 바라보는 구름은 어떤 동화책도 주지 못하는 상상력의 원천이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공부보다 독서와 글 쓰는 데 보람을 느끼는 문학소년의 나날을 보낸다. 이때 짝사랑으로 끝나지만 열병 같은 첫사랑도 경험한다.

 

기대하고 간 대학에는 생동감 넘치는 강의실도 없고 아찔한 학문의 깊이도 없다. 오히려 학교 밖에서 친구들과 모여 다니며 술과 토론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한다. 이 시절 페터는 신문사에 글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가의 꿈을 키운다. 친구와 이태리 여행을 하고 문화행사에도 참석하며 지적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가장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실연의 아픔까지 겹치며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위로는 자연에서 온다. 페터는 시골길을 따라 긴 도보 여행을 하며 새 힘을 얻는다.

 

어느 날 페터는 보피라는 반신불수의 곱사를 만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젊은 불구자의 해맑은 웃음에 영혼의 전율을 느낀다. 방을 얻고 보피를 보살피는데 24시간을 쏟는다. 몇 달 뒤에 보피가 세상을 떠났을 때, 페터는 보피를 인생의 참 스승이었다고 고백한다. 고향의 아버지가 편찮다는 연락을 받고 귀향한 페터는 농사일도 하며 그간의 방랑과 공부를 재료로 작품을 구상한다. 페터의 청춘 스토리를 내공 깊은 헤세의 문장으로 읽다보면 청춘의 품격을 느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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