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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이 가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거하신 후에야 비로소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셨다. 아니, 이제야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그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평생 질기게 따라 다니던 ‘비방’과 ‘혐의’들도 꼬리를 내렸다. 국장은 참으로 차분하고 숙연했으며 조용하되 깊은 슬픔이 있었다. 나라의 큰 어른을 보내는 이번 국장을 통해 국민들도 한층 성숙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의 마지막까지 ‘행동하는 양심’이었고, 그의 노벨상 수상 소감처럼 그는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 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여생을 바치셨다. 우리나라에 이런 분이 계셨다는 것을 역사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거인을 추모하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었다. 끊어질듯 위태로웠던 남북의 길도 북의 조문단 파견으로 새 전기를 맞았다. 한 사람의 진정성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울리고 움직일 수 있는지, 그는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의 수많은 인연들은 그가 억울하고 슬픈 사람의 마지막 피난처였다며 그와의 사연들을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그의 인생은 반쪽의 칭송과 반쪽의 일방적 폄훼가 엇갈려 있었다. 한국인의 숙원이었던 노벨상을 수상하고도 헛된 비방들이 노벨상의 가치마저 평가절하시켰다. 세계가 인정한 지도자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은 부정됐다. 비통했다. 그러나 국장 기간 동안 국회 빈소에는 영정과 함께 노벨상 원본 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노벨평화상의 권위가 영정과 함께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가 한반도에 ‘햇볕’과 함께 노벨평화상의 영광까지 가져다주었지만, 남북화해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흰 국화꽃 더미 속에서만 지켜질 수 있는 노벨평화상의 권위, 이것이 갈라진 이 땅의 맨얼굴일지도 모르겠다.
박영숙 전 평민당 부총재의 조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선생님이 안 계신 시대가 두렵기만 한가? 여전히 그런 세상은 끝나지 않았는가?”
피로써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켰던 시대는 갔지만 만만치 않은 현안들이 아직 이 땅에 남아 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부터 추진된 대한민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가 궤도진입을 훗날로 미뤄야 했듯이 사람 사는 좋은 세상을 향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엄중하다. 선조들의 그림자는 후손들에게 영광인 동시에 무거운 숙제이다.
거인의 노고에 머리 숙여 경배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