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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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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시우스는 판자로 만들어진 배(T)를 갖고 있었다. 배가 낡아가자, 그는 건선거(배의 수리 또는 검사 장소) ㉮에서 T의 낡은 판자를 새 것으로 교체하는 한편, 낡은 판자를 모아 건선거 ㉯에서 새로운 배를 건조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마침내 ㉮의 배는 모두 새로운 판자로 대체되었고, ㉯의 배는 모두 낡은 판자로 건조되었다. 최초의 배 T와 동일한 것은 ㉮의 배인가 또는 ㉯의 배인가?” ‘테시우스의 배’라는 이 역설은 “동일성의 기준이 무엇인가?”란 질문을 제기한다. 만약 T 전체가 단번에 새로운 배로 대체되었다면 더 이상 T는 없겠지만, 위의 사례는 T의 부품들이 서서히 대체되므로 이런 문제가 생긴다.

물질적 측면만이 고려되는 무생물과는 달리 인간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하다. 인간은 정신(특히, 기억)과 신체의 특징을 가지므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동일시하는 기준’은 그것들 가운데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찾아야 한다. 세포들이 계속 생성소멸하고, 또한 새로운 공기와 음식물의 섭취/배출을 통해 신체의 구성요소는 변한다. 따라서 동일성의 본질적인 요소가 신체적 지속성은 아닌 것 같다. 한편, 영화 ‘여섯 번째 날’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기억을 새롭게 만들어진 몸에 주입하며, 기억이 유지되는 한에 있어서 죽은 사람과 새롭게 생성된 사람이 동일한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가? 나는 하루의 일에 대해서도 다수의 단편적인 기억들만을 갖는데, 동일성이 유지되려면 얼마나 많은 기억과 지속성이 필요한가?

만약 아무런 기준을 찾아낼 수 없다면, 어쩌면 ‘나는 나이다’라는 인격동일성에 대한 믿음은 편의를 위해 우리가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고 내 삶이란 과거와 현재에 지속되는 ‘나’의 삶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나들’의 삶은 아닐까?




[1178호 사설] 중독을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소설 제목을 패러디해 여러분께 던진다. 코로나19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지난 1년이 지나고 새롭게 맞이한 신학기에 이렇게 묻는 것이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씩 세상을 약간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보이진 않을까? 노자의 도경 1장에 道可道 非常道라는 문구가 있다.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치가, 기업가, 의료인, 학자들은 마치 자신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주장하고 반 시민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마치 전문가인 양 주장하면서 다른 이의 견해를 무시하곤 한다. 고용인은 자신이 부리는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근로자를 선호하고, 피고용인은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의미로 노동자를 선호한다. 같은 사람인데 마치 다른 사람인 양 근로자와 노동자를 외친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기도 하는 노자가 우리 시대에 나타난다면 앞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를 따르고 있다고 인정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