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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 받는 기존 문예지… 독자들이 달라졌다

기존 문예지 하락세 속 신감각 문예지 인기

작년 이맘때, 40년 가까이 이어오던 문예지의 구독자의 수가 채 백 명을 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다. 출판 편집일을 하는 지인을 통해 들은 말이었다. 그 해 겨울, 그 문예지는 폐간되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독자가 외면하는 문예지는 가치가 없다. 그런 문예지는 없어져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렇게 문예지가 하나 둘씩 사라지는 일은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인 것만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문예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여겨지는 것만 같다. 그 사이에서 문예지는 점점 독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의 몇몇 문예지들은 전혀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계간지 형식으로 발간되는 문예지들의 쇠락 속에서 격월간지 형식으로 발간되는 문예지들이 유행처럼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7월에 처음 등장한 ‘악스트(은행나무 발간)’는 매호 적게는 7천부에서 많게는 만부 이상 팔린다고 한다. 문학동네에서 발행하는 ‘미스테리아’는 꾸준한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여 4~5천부 이상씩의 판매고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올 8월에는 민음사에서 발간한 격월간 문예지 ‘릿터’가 나왔는데, 릿터 역시 2주만에 초판본 5천부가 팔렸다고 한다. 이처럼 최근에 발행된 새로운 문예지들은 독자들의 호응 속에서 많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구독자의 수가 적어 폐간되는 경우가 속출하는 상황 속에서 적게는 수천권에서 많게는 만권이 넘게 팔리는 새로운 문예지의 등장은 유의미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문예지들은 왜 독자의 외면을 받게 된 걸까? 추론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작년 여름에 있었던 논쟁들이 떠오른다. 당시 신경숙의 표절을 옹호하는 몇몇 출판사들을 중심으로 ‘문학권력’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그리고 그런 논쟁 속에서 몇몇 출판사들에 대해 정떨어진 독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독자의 관심은 멀어져만 갔다. 사실 문예지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 데 있어 문학권력 논쟁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계간지를 중심으로 하는 문예지가 외면 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가 없다.

시대가 변했다. 묵직하고 깊이 있는 문예지들이 읽혔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가볍고, 단순하고, 재밌는 것들만 읽힌다. 대중들의 읽기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계간지의 무거운 호흡을 견딜 수 있는 독자는 거의 없다. 독자들의 읽기 방식이 달라졌고, 새로운 문예지는 이러한 점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냈다.

무거운 계간지는 매력이 없다. 당장의 책의 무게도 그렇거니와 내용의 무게 역시 그렇다. 새로운 문예지들은 책의 무게도, 내용의 무게도 가볍다. 그 가벼움을 기반으로 하여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접근한 것이다. 악스트, 미스테리아, 릿터 사이에 가장 큰 공통점은 이들이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잡지라는 것이다. 더 가볍고 더 짧은 호흡의 매체라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대중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쉽게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읽기 방식이 달라진 것 뿐이다. 읽을 만한 것들은 여전히 읽힌다. 이 점에서 릿터를 발간하며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박상준 민음사 대표가 했다는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는 “오직 독자만 생각했고 독자에게 어떻게 새로운 경험을 줄 것인가만 고민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중들의 읽기 방식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에 최적화 된 새로운 잡지를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

다시 반복해 말하지만, 읽힐 만한 것들은 읽힌다. 다만, 과거에 읽혔던 것들과 다른 방식으로 읽히고 있을 뿐이다. 악스트나 릿터에서 가장 가시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디자인이다. 악스트의 표지를 보면, 작가가 표지를 장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작가들의 표정이나 제스처가 다른 책이나 잡지에서 보던 것과 다르다. 보통의 소설가나 시인의 사진을 떠올려보면 작가가 우울하게 앉아 있는 사진이 연상된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제일 흔한 작가의 사진이기 때문이다. 악스트에서 다루어지는 작가의 사진은 그렇지 않다. 작가가 유명 모델이라도 되는 것처럼 스타일리쉬한 표정을 짓고, 스타일리쉬한 제스처를 취한다. 스타일리쉬.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최근의 몇몇 문예지들의 핵심을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민음사의 릿터는 디자인이 스타일리쉬하다. 문학잡지 같지가 않다. 이러한 변화들이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 데 일조했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변화다. 말하자면, 시대가 바뀌니까 문예지가 바뀐 것뿐이다. 문학이 죽었다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문학은 죽었다. 과거의 문학은 말이다. 새 시대의 새로운 문학이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문예지의 유행은 새로운 문학의 출연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에 다름 아니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