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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문학상 작품보기

제27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이대로(중앙대 문예창작학ㆍ3)

  • 작성자 : 계명대신문사
  • 작성일 : 2007-05-21 12:46:54

제27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입니다.

 

당선자: 이대로(중앙대 문예창작학ㆍ3)

 

 

존재의 거리



이대로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새벽의 공사판은 생각보다 부지런하지 못하다. 해가 뜨려면 한 시간 남짓이 남았고, 아직 현장소장은 오지 않았다. 건설회사에 소속된 인부들을 우리는 기술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영등포 인력시장에서 간택되어 승합차에 실려 온 우리를 막쟁이라고 불렀다.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일을 나눈다. 용접기, 콤프레샤 같은 공구를 준비하고 작업 공간을 정리해두는 건 기술자들의 일이다. 막쟁이들은 그저 토사나 시멘트, 벽돌, 철근들을 나르고 섞는 일만 하면 되었다. 기술자들이 막쟁이를 불러 부릴 수 있는 건 현장소장이 있을 때의 얘기다. 막쟁이들 틈에 간간히 나 같은 학생 서넛이 껴서 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름 그대로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하는 하루살이 인생들이었다. 손발을 일일이 뒤집어보지 않아도 그들이 지고 있는 무게는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었다. 늙고 왜소한 막쟁이라도 그 뒤에선 노련함과 거칠고 고단한 삶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밑불 위에 각목 쪼가리들을 얹어 놓고, 막쟁이 대여섯이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며 악머구리 끓듯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건물 안에선 드문드문 기술자들의 둔탁한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영등포부터 등촌동 공사현장까지 차안에서 연신 줄담배를 물던 최이현 씨가 가장 나이가 많은 이종식 씨에게 껄렁껄렁한 걸음새로 다가간다. 

  “영감, 담배한대 줘봐.”

  “이 새끼는 어른한테 씨벌.”

  담배 한 대를 건네받은 최이현은 히죽대며 이종식 씨를 툭 쳤다. 십일월 보름인데 날씨는 벌써 엄동이었다. 공사판이 판을 접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은 주고받는 농이나 시시껄렁한 계집 얘기에서도 묻어났다. 다시 센 바람이 화톳불에 숨을 넣었다. 울긋불긋한 얼굴들은 생김만 달랐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여태 모은 돈을 헤아렸다. 휴학을 하고 여름부터 시작한 막쟁이 짓으로 백오십만원이나 되는 아버지의 장례 외상값을 갚았다. 사글셋방을 얻고, 생활비에도 조금씩 보태고, 대학 등록금을 모았다. 새 학기 전까지 구백만원 가까이하는 일 년치 등록금을 벌기위해선 한참 더 일을 해야 했다. 등록금이 대폭 인상될 것이라는 소식은 막쟁이들 품으로 나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학생도 운동 공부하냐?”

  최이현 씨가 대뜸 내게 물어왔다. 노가다 판에서 일하는 대학생의 대부분은 체대생이었다. 하루일당 십 만원 내외 하는 막쟁이 노릇은 운동하는 셈치고 돈 버는 일이었고, 고용주도 늙고 약은 베테랑보단 젊은 체대생들을 좋아했다. 품을 조금 덜 줘도 군말이 없고, 계속 일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기 때문에 상대하기 쉬울 것이었다. 반년 가까이 최이현 씨와 인력시장에서 마주쳤지만 우린 서로를 잘 몰랐다.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막쟁이 노릇을 하리라 생각지 못했다. 그와 나는 통성명만 했고, 나는 주변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는 녀석이었다. 설사 대화를 나누더라도 일이 힘들지 않느냐, 점심 반찬이 무엇이냐 하는 단 답의 것이었다. 내게 말을 붙이기 위함임은 일찍이 알았으나 그에게서 풍기는 냄새는 위험해 보였다. 막쟁이 답지 않은 옷부터 그랬다. 항상 여벌의 옷을 들고 다녔고, 일이 끝나면 가방에서 꽃무늬 셔츠를 꺼내 갈아입었다. 마흔이 훌쩍 넘어 보이는 얼굴과 큰 덩치에 화려한 옷차림은 좀체 어울리지 않았고, 수상스러웠다. 그와는 또 어울리지 않게 작업복은 버젓이 노동조합 옷이었다. 지난달엔 감독관에게 함바 뒤편으로 조용히 불려나가 다른 옷을 입으라 권유받았지만 날품팔이 막쟁이가 작업복을 따로 사 입고 다닐 형편이 되겠느냐며 얻어 입은 옷이니 오해 말라 딱 잘라 말했다 한다. 시위현장에서 부를법한 노래를 흥얼거리고, 껄렁껄렁한 걸음새나 틈만 나면 구석자리에 숨어 농땡이를 치는 것, 정치인 뺨치는 달변은 내가 그로부터 거리를 두는 이유였다.

  “아뇨, 전 경제공부 합니다.”

  경제 공부란 말에 이종식 씨는 오리걸음으로 서너 걸음 다가와서 내 오른편에 앉았고 둘러앉은 나머지 사람들도 내 쪽으로 한 두 걸음 더 다가왔다. 최이현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들은 평소 경제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경제가 어려워졌다 한들 막쟁이의 수입은 줄지 않았다. 경제가 제아무리 좋아진다 해도 그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쭉정이 같은 것이다. 풍년이던 흉년이던지 간에 쭉정이는 쭉정이일 뿐이다. 껍질만 있는 것은 경제라는 개념 안으로 한 발짝 놓기도 어렵다. 그런 그들이 경제공부라는 말을 붙잡고 내게로 오는 것에 나는 거북함을 느꼈다.

  “경제공부하면 우리 같은 막쟁이도 돈을 더 버는 가?”

  “쟤가 다 알면 여기에 있겠어?”

  “연금말야, 연금, 그거 어떻게 하면 타는 거야?”

  “연금은 무슨 놈의 연금!”

  “산업보험 그런 건 어떻게 신청하는 거여?”

  “피 빨아 먹는 모기헌텐 뿌려도, 하루살이헌테는 약도 안 뿌려.”

  이종식 씨가 고개를 돌려 삐죽 내밀고 물어보면 건너편에 선 최이현 씨가 담배를 물고 말을 자르며 따지듯이 대답했다. 그는 사람들이 나에게 먹고 사는 문제를 물어보는 것이 썩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래침을 길게 끓어 뱉었다. 평소 사람들을 불러 놓고 달변으로 산업 재해가 어쨌네, 노동시간 대비 임금이 어쨌네, 환경 개선이 어쨌네 하며, 알아야 힘이 되고, 힘이 있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떠들던 그였다. 능란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모으는 재주는 있어도, 그 속은 텅 빈 쭉정이어서 막상 이종식 씨나 주변 막쟁이들이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면 말을 돌리거나 외려 윽박질러 사람들 속을 시원히 긁어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경제공부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온 것에 그는 난감해 했다. 막 도착하는 현장소장의 자가용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도 그였다.

  “자자, 소장 왔으니까 저기 모이지.”

  어김없이 안전 교육을 받고, 구호를 외치고, 막쟁이들은 일을 나누고 흩어졌다. 용접 보조로 빠진 이종식 씨는 조용히 작업장으로 사라졌고, 미장 보조를 맡은 최이현 씨는 툴툴 거리며 혼잣말로 욕지거리를 해댔다. 나는 외장재를 층마다 나르는 일을 맡았다. 막쟁이들이 다시 모이는 것은 점심이나 돼서다. 그 전까지는 오롯이 일에만 몸을 부려야 한다. 그것이 규칙이고, 저녁까지 힘을 나눠 쓰는 방법이다. 그래서 일이 시작된 공사장엔 공구소리만이 요란하다. 눈을 감고 있으면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건물을 짓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막하다. 가끔 사무소 쪽에서 들리는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사람 목소리의 전부다. 일에 집중한 사람들은 아주 쉽게 말을 잊는다. 외장재를 얼추 돌리고, 빠진 것이 없나 확인하러 오층에 이르렀을 때 최이현 씨와 마주쳤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물건을 확인하는데 그가 나를 한쪽으로 조용히 불러 세웠다. 미장 기술자는 용변을 보러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바람은 쉬지 않고 건물을 관통했다. 잠깐 멈춘 새에 땀이 식어서 한기를 느꼈다. 가볍게 몸을 떠는 내게 그는 어깨를 걸치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의 옆구리는 딱딱했다. 커다란 그의 몸에 파묻힌 꼴이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뱉어내곤 나를 쳐다봤다. 그에게 가졌던 거리감 때문인지 나는 당황스러워 헛기침을 했다.                            

  “대학은 얼마나 다녔어?”

  “삼년하고, 지금은 학비 벌고 있습니다.”

  “끝나고 소주나 한잔 하지?”

  “예?”

  “영등포에서도 그렇고, 일 받은 노가다 판에서도 그렇고 꽤 오래 봤는데 소주 한잔 못했잖아? 나도 경제 쪽에 관심 많으니까, 얘기도 좀 하고. 응?”

  이제껏 봐온 것과 다르게 사뭇 진지한 말투와 눈빛에 나는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대답하자 그는 어깨에서 손을 거두곤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나는 그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걸 원치 않았다. 수고하라 손짓하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뒤숭숭한 마음으로 사층으로 내려갔다.


  어두워지자 바람은 더욱 차갑고 낮아져 사무소 앞에서 일당을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나타난 최이현 씨는 내 뒤에 바짝 붙어 시종 발을 굴렀다. 돈을 받고 흩어지면 막쟁이들의 관계는 모호해진다. 일을 받고 공사판에 모였을 때에는 힘겹게 하루를 잇는 같은 삶에 대한 동정과 끈끈함이 있지만, 헤어지면 기약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인력시장에 다시 나올지, 나와도 같은 일을 받을지는 확실치 않다. 같은 풀을 뜯지만 언제 다시 마주칠 줄 모르는 사막의 초식동물들 같다. 이런 알맹이 없는 관계에 질릴 법도 하지만 대학생활에 대한 갈증으로 난 여태 잘 견뎌왔다. 일당봉투를 받고, 우리는 가까운 대폿집으로 들어갔다. 밥을 먹고 소주잔을 건네며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다가 그가 조심스레 주말에 있을 건설 노동자 집회에 함께 가자고 말을 꺼냈다. 노동자가 왜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뭐가 잘못되었고,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그는 억지로 분을 터뜨리며 열변을 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대충 말을 돌렸다. 창밖으로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사판 밖에서 그를 만날 이유가 없었다. 영등포 인력시장은 그만두고 다른 곳을 알아볼까 하는데 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가져오지 않은 우산과 내일 걱정을 핑계삼아 곧 자리를 정리했다. 최이현 씨는 웃옷을 여미며 집회에 가는 걸 한번 잘 생각해보라 당부했다. 경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같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잘 들어봐야 한다고도 했다. 반년이나 막쟁이를 했으면 무슨 말인지 잘 알 거라고 씩 웃으면서 어깨를 다독였다. 그러나 나는 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싫었다.


  달이 뜨지 않은 달동네의 밤은 미로와 같아서 내 집을 찾기란 쉬운 게 아니다. 반 지하 단칸방 그 집조차도 사글세를 꼬박 내야만하는, 내 집이 아니란 생각을 하면 길은 더욱 난해해진다. 부슬거리는 비를 맞으며 나는 어김없이 한참을 헤맸다. 이 골목, 저 골목 드나들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마침내 집에 이르는 골목을 찾았을 때, 문득 최이현 씨의 집회에 함께 가자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쓰게 웃음을 지었다. 가로등빛에 비춰지는 비가 예뻤다. 양철지붕, 시멘트 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도 괜찮았다. 집에 거의 다 이르렀을 때 하수가 역류한 듯 역한 냄새가 났다. 술기운인지 모르게 구토할 것 같았다. 참고 참다가 결국 골목 어귀에 토를 했다. 토를 할수록 역한 냄새는 더욱 심해갔다. 그 냄새가 점점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는 스산한 기분에 고개를 들었을 때 무언가 거대한 것이 앞에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주 낯설고 위압적인 공포에서 벗어나려 달음질을 쳤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토해놓은 그 곳에 있었다. 정신을 차려 자세히 살피니 달동네 꼭대기에서 길을 따라 흘러내리던 빗물이 점점 끈적끈적해지며 하나의 거대한 혓바닥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누구냐! 뭐야! 도와주세요! 소리를 내지르려 해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컴컴한 혀가 들리고 그 아래서 나온 시꺼먼 자벌레 한마리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몸을 한번 접었다 펼 때마다 쿵광 땅이 울릴 정도로 거대한 녀석이었다. 그의 눈과 마주쳤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깨어났을 때 나는 내 방 구석에 누워있었다. 대단한 악몽이었다. 자벌레의 눈은 확실히 아버지의 눈이었다. 애꾸눈이에 선한 눈빛도 그렇고, 눈가의 주름도 그랬다. 분명했다. 젠장 맞을 꿈이었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 유산 같은 건 고사하고 보험이라도 하나 들어놨으면 이 고생은 안했다. 해괴망측한 모양으로 아들 꿈에 나타나는 건 또 무엇인가. 나는 한동안 누워 아버지를 원망했다. 반 지하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빗소리가 났다. 옷엔 토한 자국이 남아있었다. 나는 웃옷을 벗어 아무렇게 던져놓고 다시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팠고 피곤했다.

  ‘뒤는 어디일까?’

  ‘아버지, 제발 쓸데없는 생각 말고 잠이나 주무세요.’

  ‘땅 밑일까? 아니면 허공일까?’

  ‘얼른 주무세요, 내일 또 일 나가셔야죠.’ 

  ‘땅 밑이라는 게 당연한 거겠지. 어차피 죽으면 밑으로 가니까.’

  ‘아버지! 저 내일 1교시에요.’

  ‘그래, 누우니까 확실 해지는구나. 네 옆이라 더 좋다.’

  ‘요새 약 안 드셨어요?’

  ‘약이 떨어져서, 내일 병원에 가보려고 그런다.’  

  ‘때 되면 알아서 약 좀 챙겨 드세요.’

  ‘알았다. 걱정마라.’

  

  내가 부음을 받은 건 저녁 뉴스를 보고난 후였다. 뉴스 마지막에 전국 철강 노동자 파업 집회 중 노조원 한명이 본사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는 단신이 나던 그 날 저녁,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병원 영안실로 향했다. 영안실에는 노조원으로 보이는 중년 서넛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정이 넘었을 땐 노조원들과 그들이 외치는 구호, 기자들과 몇몇 정치인들로  정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노조활동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사실 노조원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로는 수술한번 못시켰다는 자책감에다 애꾸눈이라는 콤플렉스가 더해져 우울증에 빠져 지내던 분이었다. 만약 집단에서 주는 소속감 따위에서 생의 위안을 얻었다면 우울증과 노조활동이 어쩌면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죽을 곳은 거기가 아니었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나는 종종 집회에 불려나가 아버지를 추억해내야 했다. 취해 들어와 매일 같이 방 한구석에 소변을 보고, 약이 떨어지면 자살소동을 벌이는 아버지의 추한 모습들은 모두 빼버리고, 너무 오래되어 기억마저 흐릿한 다정하고 정신이 멀쩡한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해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추한 아버지를 예쁘게 잘 포장해서 아름답고 슬프게 그려내면 후원금 명목으로 얼마의 돈을 받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철강노조와 사측의 협상을 타결로 더는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가 세상의 뒤로 추락 해버린 뒤 모든 것이 없던 일로 되어버렸다. 세상의 뒤가 확실해진 셈이었다. 죽는 거밖엔 없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비가 그쳐있었다. 비는 모든 발자국들을 쓸어 담아 바다로 가고, 뒤척이던 잠들을 먼지처럼 가라앉혔다. 날이 밝기 전의 달동네는 정말 달에 있는 것 같다. 아래 동네를 내려다보면 점점이 켜진 가로등빛이 지구처럼 빛나고 있다. 이 동네와 저 아래 세계 사이에는 무수한 시공이 존재하는 것 같다.


  가을비에 날은 더욱 추워졌지만 새벽 영등포 인력시장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인근 과일 도매시장에 드나드는 차들과 물건을 떼러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인력시장에 나온 사람들도 꽤 되어서 등록 명부의 이름을 호명할 적엔 대답을 하느라 바짝 긴장을 해야 했다. 다른 인력시장으로 가볼까 했으나 가을도 거의 끝나가고, 날씨도 날씨인지라 건설 현장이 가장 손이 딸리고 그만큼 보수를 많이 주는 곳도 없고 하여 하던 일을 마저 하기로 했다. 이름을 대고 차를 타던 곳 즈음으로 가려니까 멀리서 이종식 씨가 아는 채를 하였다. 깡말라서 해골 같은 얼굴에 면도를 못했는지 까슬까슬하게 난 턱수염이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 거기에 지난밤에 마신 막걸리가 채 깨지 않았는지 술 냄새도 났다. 곧 다른 막쟁이들이 모여들었고, 최이현 씨가 내 또래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 네 명과 함께 같이 왔다. 고향 동생들인데 힘도 있고, 일도 잘하고 하여 데려왔다고 했다. 그는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청년들에게 내 소개를 시키고 인사하게 했다. 그 인사가 너무도 깍듯하여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승합차를 타고 등촌동 공사장으로 가는 내내 최이현은 줄담배를 물고, 고향 동생이란 청년들에게 오늘은 무슨 일을 하고, 노동이란 얼마나 신성한 것이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목에 잔뜩 힘을 주어 설교를 해댔다. 꼬박꼬박 예- 하고 대답하는 청년들의 바짝 긴장한 표정이 우스울 정도였다.

  토요일은 휴일 전인 까닭에 평소보다 바빠야 마땅했으나 비가 온 뒤라 막쟁이들의 일은 줄어서 최이현 씨가 데려온 동생들은 거의 쓸모가 없었다. 전기배선은 미뤄졌고, 내장 공사 의 일부가 오전 내내 진행되었다. 일은 점심이 지나서 터졌다. 다들 일을 시작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최이현 씨는 어느 한구석에 숨어들어 낮잠을 자고 있었고, 그가 데려온 청년들은 사라진 그를 찾고 있었다. 값을 못하는 청년들이 탐탁하지 않던 감독관이 뭘 하고 있느냐 따져 물었고, 그중 가장 모자라 보이는 청년 하나가 당황하여 최이현 씨가 사라졌다고 대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감독관은 최이현 씨를 찾아내어 불러 세우고는 이내 면박을 주기 시작했다.

  “사람이, 보자보자 하니까 말이야! 낮잠을 자려거든 집에 가서 자! 여기가 당신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인 줄 알어? 응?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 당신 농땡이 피우는 게 어디 한두 번이야? 봐준다 봐준다 했더니 이게 완전 지 마음대로 구만? 어디서 굴러먹은 줄 모르겠다만 저 같은 놈들만 끌고 와선!”

  청년들 앞에서 면박을 당하는 최이현 씨의 얼굴이 붉어졌다. 씩씩 거리며 듣고 있던 그는 감독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에 질세라 팔뚝을 걷고, 삿대질을 하며 대꾸를 했다.

  “이 씨벌놈이 말이면 단 줄 아나. 너도 그럼 새빠지게 일해 봐! 언제 뽀나쓰 한번 얹혀준 적 있어? 씨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새끼들은 사람도 아니냐? 기껏 공사 같이해서 건물 올려놓으면 좋은 건 니미 기술 있는 놈하고 사무소에서 죽치고 앉은 놈이 다 해먹고! 옘뱅 더러워서 그냥 확!” 

  “뭐? 확 어쩌겠다고?”

  둘의 언성이 커지고, 최이현 씨의 큰 주먹이 올라가려 하자 기술자, 막쟁이 할 것 없이 현장사무소 앞으로 몰려 나와 싸움을 말렸다. 나도 얼떨결에 최이현 씨 뒤편으로 가 싸움을 말리게 되었다. 기술자는 감독관 뒤로 막쟁이는 막쟁이 뒤로 서서 자연스레 암묵적이던 공사장의 대립 구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최이현 씨는 등 뒤로 선 막쟁이들을 부추겼다. 그의 목소리는 또박또박 했다.

  “싸움 말리는 건 좋은데 좀 생각들 해봐! 우리가 언제 명절 챙겨 달라 했어? 떨어지는 거 있으면 그 거 좀 챙겨 달라 했냐고? 그냥 우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날품팔이여 씨벌, 그래도 사람대우는 받아야 하지 않겠냐? 실족해서 뒈지면 보험이 얼마 나오는 줄 알어? 내 몸 뉘일 관 짜기도 쌔빠져. 그래도 좀 살아보겠다고. 기술자 놈들한테 저 관리 놈들한테 무시당하면서 목숨 각오하고 사는데, 말하는 꼬락서니가 저 것뿐이 안된다. 아, 더러워서 씨팔 이거 계속 해야되?”   

  “해줄 만큼 해줬어, 다른 공사판 돌아다녀봐! 니들만큼 좋은 환경에서 돈 많이 받는 놈들이 또 있나.”

  최이현 씨와 감독관의 실랑이가 점점 막쟁이와 막쟁이가 아닌 자들의 싸움으로 커지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었지만 햇볕이 좋았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공사장 밖 인도와 차도는 토요일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이 갑작스럽고 어리둥절한 대치 상황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막쟁이들 틈에서 멀미가 일었다. 빽빽이 늘어선 까닭에 막쟁이들이 내뱉는 뜨거운 숨을 다시 들이켜야 했고, 땀 냄새며, 욕지거리며 하는 것에 치여 속이 역했다.

  “니들 똑똑히 봐라, 세상이 이렇게 더럽고 치사하다. 이게 민주사회냐? 우린 이런 거하고 싸워야 하는 거야. 이 새끼들처럼 사람을 개떡으로 알고 노동을 우습게 여기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줘야 해, 이 겁 대가리 없는 새끼들!”

  “옳소!”

  고향 동생이란 청년들이 거들었고, 경찰을 부르자는 현장소장의 말에 그들은 삽자루를 손에 쥐었다. 이종식 씨가 나서서 말리려 들었지만 그는 좀처럼 축에 끼지 못했다. 그 때, 공사장 뒤편 응달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일었고, 축축한 땅에서 어제 본 혓바닥이 일렁거렸다. 나는 막쟁이들 틈에서 허리를 구부려 점심에 먹은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속이 뒤틀리듯 아팠다. 그리고 다시 놈이 나타났다. 몸을 접었다 펴면서 점점 내 앞으로 다가왔다. 쿵쾅 거리며 위압적으로 다가오는 검은 자벌레에 나는 몸서리를 쳤다. 그 괴물의 눈은 역시 아버지의 눈이었다. 괴기스럽지만 낯익은 애꾸눈이였다. 나는 점심에 먹은 것을 게워내느라 지쳐 무릎 꿇린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삼키려는 듯이 입을 벌렸다. 나는 소리를 질렀지만 내 비명은 목소리로 나오지 않았다. 내 속을 텅텅 울리는 비명일 뿐이었다. 오랫동안 정적이 흘렀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놈은 오물거리고 있었다. 현장사무소 앞에는 나와 최이현 씨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최이현 씨가 놈에게 잡아 먹혔다.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나는 정신을 놓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최이현 씨와 이종식 씨가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병원 응급실로 왔다고 한다. 한창 싸움을 하려던 참에 내가 구토를 하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일이 났구나 싶어 당장 업고 달려왔다고 한다. 머리가 아팠다.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 앉았을 때 의사가 다가와 이것저것 묻더니 과로로 인한 신경 쇠약이니 돌아가서 당분간 안정을 취하고, 충분한 영양섭취를 하라 얘기했다. 이종식 씨는 의사를 따라가 처방을 받고, 약을 지으러 갔다. 최이현 씨는 의사의 말에 흥분하여 응급실 가운데서 열변을 토했다.

  “여러분, 사람이 과로로 쓰러질 정도로 부려놓고, 얼토당토않은 일당을 주고, 개무시 하고.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게, 썩어빠진 세상, 우리가 바꿔야 합니다! 나는 오늘 반나절 내내 동생 넷하고 쌔빠지게 일했는데 돈 한 푼 못 받고 쫓겨 났수다. 에이 씨팔, 여러분들 얼른 쾌차하셔서 함께 싸웁시다! 학생은 좀 괜찮아?”

  “네, 괜찮아요. 진정하세요.”

  응급실 직원이 와서 최이현 씨에게 조용하라 주의를 주고 돌아갔다. 최이현 씨는 듣는 체 마는 체 하고는 나를 일으켰다.  

  “자, 갑시다. 밖에서 우리 막쟁이 동지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 길로 곧장 집회현장 가서 우리 목소리를 냅시다!”

  응급실 직원이 다시 다가와서 최이현 씨를 제지했다. 이제 나가면 떠들 일 없으니 걱정 말라 이르고 서둘러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뜻하지 않게 동지가 된 그들과 나는 건설노동자 집회로 끌려가게 되었다. 내가 쓰러진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모르나 집회현장으로 이동하며 이종식 씨에게 듣기론, 나를 업고 막쟁이 하나가 병원으로 갔고, 얼마 안 있어 현장소장이 경찰에 이미 신고를 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고 한다. 혐의를 쓸까 두려워진 막쟁이들이 최이현 씨에게 책임을 물었고, 최이현 씨는 그 대책으로 막쟁이들을 자연스레 집회현장으로 몰고 가게 된 모양이었다. 최이현 씨가 왜 이렇게 열심인지, 너무 과하게 행동하는 것 같아 불안했다. 우리는 집회현장에 거의 다 이르렀을 때, 다른 막쟁이 무리와 합류를 했다. 그들 역시 최이현 씨 연락으로 얼떨결에 합류한 것 같았다.

  편도 두 개 차로를 점거한 집회 현장에 도착한 우리는 군중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중에 이탈하고 몰래 빠져나간 막쟁이들도 몇 명이 없지 않았으나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싶은 시간에 최이현 씨가 나를 한쪽으로 불렀다.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으니 잠깐 보자는 것이었다. 최이현 씨가 나를 데리고 간곳은 단상 옆에 설치된 노조 임시사무실의 뒤편이었다. 왜소한 체구에 큰 안경을 쓴 노조 간부로 보이는 삼십 대 중반의 남자가 최이현 씨와 악수를 나누고 나와 마주 섰다. 최이현 씨가 나를 명문대에서 경제공부를 하는 동생이라 소개하며, 이것저것 경제 지식을 나누고 있다고 으스대는 폼으로 말을 건네자 그는 환하게 반기며 건설노조의 대외협력국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곤 최이현 씨를 임시사무실 안으로 들이며 커피한잔 하시라 청했다. 최이현 씨는 머쓱한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갔고, 나와 노조간부 둘만이 있게 되었다.

  “양필규 열사 아드님 되지 않으십니까?”

  “네? 제 아버지 성함이 양 필자 규자 맞습니다만.” 

  “몇 개월 전, 아버님에 대해 말씀 해주시던 집회 때마다 종종 뵈었는데, 기억 못하시나요?”

  그들이 아직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는 건 의외였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것인지, 아버지를 말하던 나를 기억하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간에 그는 나를 알고 있었고, 나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집회현장에서 민중가요가 들려와 대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서로 어색하게 서있었다. 그는 너무 왜소했다. 건설과는 뭔가 어울리지 않은 외형이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그가 다시 물어왔다.

  “최이현 씨와는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건설현장에서 대학 등록금 좀 번다고 일하다가 알게 됐습니다.”

  “잠시 저쪽으로 가서 얘기 하시죠.”

  노조간부는 나를 좀 더 외지고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최이현 씨는 임시사무실 쪽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입을 삐쭉 내밀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사실 집회라는 것이 목소리 내는 것인데…. 이거 참, 들켜서 쑥스럽습니다. 현실적으로 최이현이 같은 쭉정이들이 있어야, 사람도 좀 더 모이고, 그렇게 모양을 키워놔야 기자들도 오고해서요. 이거 참 민망하네요."

  “네?”

  “최이현이가 몇 달 전부터 노조 사무실 기웃거리면서 노동문제가 어쩌니 하면서 티셔츠랑 조끼 몇 장 받아가고, 밥이나 얻어먹고, 그 것도 안되면 커피나 한잔씩 알아서 하고 가더라구요. 그래서 도대체 원하는 게 뭔가 하고 까놓고 한번 물어봤더니, 글쎄 다짜고짜 자기를 영등포 막쟁이 노조 위원장 시켜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요?”

  “옷차림도 그렇고 머리에 든 것도 없고, 이건 완전히 양아치다 싶어서 그건 곤란하다고 했죠. 노조 위원장 하면 공밥 먹는다는 소릴 어디서 듣고 왔는지. 그런 놈들이 한둘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 공밥이 공밥입니까? 안된다고 아니까 자꾸 애들 풀어서 엎어버린다고 협박을 하잖아요. 그래서 그럼 막벌이 노동자 분들을 얼마나 아느냐, 일은 좀 했느냐 물어봤더니 일백은 넘게 끌고 올 수 있다 해서 한번 해보라 했더니, 이렇게 된 겁니다. 몇 번 그렇게 사람 좀 데리고 오니까, 최이현이가 쭉정이라고 해도 데리고 오는 사람들 중에는 알이 찬 제대로 된 분들도 있겠다 싶어서 봐두고 있었죠. 그런데 선생님이 이렇게 함께 오실 줄 알았겠습니까? 이거 오해 마십시오. 허허.”

  임시사무실 건너에선 다시 함성과 함께 구호가 시작 되었고, 마이크를 붙잡은 진행자의 소리도 점점 격앙되어 갔다. 두 개 차로나 막힌 주변 교통 상황은 좋을 리 없었고, 집회 현장 옆을 지나는 운전자들 중에는 창문을 열고 대놓고 욕지거리를 하는 자도 있었다. 늦가을 하늘은 솟을 만큼 솟았고, 햇볕은 기력이 약해졌지만 아직 따뜻했다. 임시사무실에 있던 최이현 씨가 어느새 우리 쪽으로 다가와 있었다. 흠칫 놀란 노조 간부는 웃으며 최이현의 어깨를 다독였다.

  “아, 최이현 씨 수고 많으셨습니다. 노조 위원장 일은 한번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으니까, 열심히 활동해주세요. 앞으로 많이 좀 부탁드립니다.”

  그는 잰걸음으로 임시사무실로 향했다. 최이현 씨는 으쓱해져서는 노조 위원장이 되면 경제공부도 필요하니만큼 앞으로 많이 도와달라고 얘기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내두고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도 내 뒤를 따라와 막쟁이 무리 앞에 서서는 뱃심 좋게 한마디 했다.

  “여러분, 이렇게 좋은 날씨에 고생 많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합니다. 하루살이들이 떼로 모여 있으면 그것도 무서운 법입니다. 조금만 더 힘내서 우리가 원하는 바를 꼭 이루도록 합시다!”

  최이현 씨의 고향 동생들이 기립하여 박수를 쳤다. 함께 온 다른 막쟁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당황한 최이현 씨는 서둘러 궁리를 하는 듯 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저 앞에 나가서 한 마디 하고 오겠습니다.”

  최이현 씨는 날랜 걸음으로 단장 쪽으로 걸어가 진행자에게 뭐라 속닥이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저는 영등포에서 막일하는 최이현입니다. 오늘, 작업장에서 현장 소장하고 대판 싸우고 왔습니다. 우리 막쟁이들 중에 하나는 과로로 농성 중에 그만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고 말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분명히 과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들은 최고의 작업 환경을 마련해줬고, 합법적으로 노동시간을 부여했고, 적절한 임금을 지급했다고 우깁니다. 저와 제 동지들은 오늘 일한 삯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게 자본주의 입니까? 이건 사용자의 횡폽니다. 더 이상 저들의 권력에 고개를 숙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뭉쳐야 합니다! 우리 영등포에서 막쟁이 노동자들은 저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싸워 이길 것입니다!”

  함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고, 최이현 씨가 선창하는 구호에 군중은 후창 하며 목소리를 냈다. 한쪽 구석에 앉은 막쟁이들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최이현 씨의 동생들이 막쟁이들을 부추겼다.

  “거 참, 한밥 먹던 사람이 앞에 나가서 말하는데 같이 좀 합시다.”

  그러자 한 쪽 구석에 잠자코 앉았던 이종식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옘뱅, 너네들은 언제부터 우리랑 밥 먹었다고 지럴이냐?”

  “뭐요?”

  이종식 씨의 돌발적인 행동에 막쟁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거 한두 번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뭐, 언제부터 최이현이가 우리 대표였냐? 저런 양아치 같은 새끼가. 오늘도 완전히 속았어. 잠자코 일하면 돈이나 받지, 최이현 저 새끼 때문에 돈도 못 받고, 근 십년동안 뼈를 깍은 영등포에선 일도 못 구하게 생겼고만. 뭘 안다고 지껄여 지껄이긴.” 

  이종식 씨의 말에 수긍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고, 이내 소요가 일었다. 이종식 씨는 쉬지 않고 최이현 씨를 지적했다. 집회 현장 한 구석에서 다른 목소리들이 가을 낙엽처럼 후두둑 떨어져 쌓이고 있었다. 앍박앍박한 이종식 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해는 이미 다 떨어져서 스산해지기 시작했다. 이종식 씨와 함께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집회현장 한 구석에는 이미 많은 수의 쭉정이들이 찬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없었다. 멀리서 최이현과 그 동생들이 귀엣말을 나누었고, 그와 난 눈이 마주쳤다. 그의 표정이 표독하다 느끼는 순간 이종식 씨의 손을 잡고 뛰었다. 지하철 까지는 삼백 미터 내외 되는 상당한 거리였다. 최이현의 고향 동생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날래지 못한 이종식 씨 때문에 간격이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우리는 지하철 타는 것을 포기하고, 골목 시장 통으로 들어가 흩어지기로 했다. 이종식 씨의 손을 놓았을 때, 이종식 씨는 조심하시오 하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무엇을 왜 조심하라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쫓긴다는 건 조심하라는 말의 이유가 되었다.

  골목을 돌고 돌아 택시에 오르고 겨우 집 근처에 당도했을 땐 완전한 저녁이 되어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오늘 있었던 일들을 되짚으며 생각해봤다. 집회까지 가게 된 사건들 하나하나를 맞춰보고 모든 것이 최이현의 작전이었음을 눈치 챈 나는 허탈했다. 오늘 다시 본 괴물도 떠올렸다. 그가 왜 막쟁이들과 기술자들과 현장사무소 직원을 삼켜버렸는지 잘은 모르겠으나, 그가 정말 아버지의 환영이라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이종식 씨가 아니었으면 나는 두 눈을 뜨고도 집회가 파할 때까지 쭉정이 아닌 척 있었을 것이다. 쭉정이는 바람에 쓸려나가야 비로소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바람에 날리고 속 알맹이 없는 것이 까 밝혀진대도 그런 채로 살아 내야한다. 인력시장이건 공사판이건, 경제학 강의실이건, 집회현장이건, 혹은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주말 오후의 공원이 건, 쭉정이와 쭉정이가 아닌 것으로 사람들을 나누는 어떤 힘이 있다. 그건 쭉정이를 만드는 땅의 힘이 아니다. 쭉정이라 명명하는 사람들의 문제고, 쭉정이가 본래 가졌어야할 열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문제다. 아버지가 투신한 것도 결국 스스로 무게를 증명했다고 이해해야 할까? 나는 허기를 느꼈다.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섰을 때, 모든 것은 이미 일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더 게워낼 것도 없었다. 검은 자벌레가 다시 나타나 눈을 끔뻑거리고 있다. 나는 어지러웠지만 정신만큼은 붙잡으려 노력했다.. 자벌레가 몸을 움츠렸다. 나는 목소리를 내보려 안간힘을 다했지만, 내 모든 소리는 내 안에서 울릴 뿐이었다.

  “아버지!”

  쉰 목소리가 간신히 밖으로 새나왔다. 자벌레는 몸을 움츠린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라는 단어 외의 것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만 울리고 있었다. 자벌레가 웃었다. 애꾸눈이 자벌레가 활짝 웃으며 옹알거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

  검은 자벌레는 오후에 삼켰던 사람들을 배설하며 반 지하 방의 어둠에 녹아가고 있었다. 나는 몇 번이고 아버지를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배설된 사람들도 서서히 희미해져 사라져갔다. 불을 켜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몹시 지쳐 있어있었다. 바닥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은 후였다. 아주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오늘은 일을 나가지 않기로 작심하고 오랫동안 밀린 빨래와 청소를 했다. 토 자국이 선명한 옷은 좀체 깨끗해지지 않았다. 그 것은 걸레로 쓰기로 마음먹고 나는 방 구석구석을 닦았다. 먼지가 쌓인 책장을 닦을 적엔 한동안 묵혀 놓은 경제학 개론서와 자본주의 이론서를 꺼내 보았다. 습하고 어두운 반 지하 방에서 오래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은 곰팡이가 슬기 마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훑어보니 한 장 한 장 마다 빼먹지 않고 곰팡이가 세 들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닦아내지 않기로 했다. 청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동네 구경을 했다. 그리고 아래로 굽어보이는 도시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다시 영등포 인력시장에 가는 것은 껄끄러웠다. 최이현과 마주치기 싫었고, 막쟁이 일을 하는 것도 내게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불현듯 나는 대학도서관으로 향했다. 곤충도감을 펼쳐 자벌레를 찾았다.


  자벌레 ; 자벌레나방의 유충. 원통형으로 회갈색 또는 녹색임. 꼬리를 머리 쪽에 갖다 붙이고 몸을 앞으로 펴며 기어감. 나무나 풀잎을 갉아먹는 해충임.


  요약된 설명을 대충 읽고 나는 해충이란 단어에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자벌레의 몸으로 세상을 재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러나 반대로, 자벌레라는 녀석이 일생을 바쳐 잰 길이가 그 스스로에겐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생각했다. 딱 그만큼이 그의 삶일 것이다. 아버지가 추락하며 재나간 삶의 길이가 그의 무게를 증명한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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