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면 예쁜 캠퍼스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 저의 추억을 담아, 우리학교 학생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봄을 사진으로 기록해보았습니다. 활짝 피어 예쁜 벛꽃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에 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후회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도 대학에서 생활할 때면,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적막한 집 안에서 공부하지 않고 그저 도망치기만 한 그날을 생각하면 생각에 깊이 잠기게 된다. 내가 고등학생일 무렵 한창 수능 공부에 힘쓰던 날이었다. 그때의 나는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그리고 남들의 기대 속에서 도망치기 바쁘던 그런 철없는 아이였다. 어머니가 너는 공부를 하면 잘 될 것이라고 말하셨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어머니의 기대가 부담스러워 공부로부터 도망치고 유희를 즐기는 것을 선택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다고 느낀다.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 그것을 이기지 못해 매일 게임만 하던 나. 그런 나의 민낯이 까발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느날, 내가 형과 함께 모의고사를 치던 날이었다. 내 시험지 답란엔 하나도 적지 못한 공란이 가득했고, 그 순간 나는 자괴감에 빠졌다. ‘아... 내가 공부를 더 했더라면...’ 이런 후회는 날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형은 금방 나의 변화를 눈치채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 형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몇 개월간 참은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정말 부끄러웠다. 내가
올해 벚꽃이 필 무렵, 지역아동센터에서 근로를 시작했다. 센터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은 내 예상보다도 조그맣고 앳된 얼굴들이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무한정 충전되는 체력, 순진무구한 질문을 가진 아이들을 보며 내가 동심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을 하루하루 실감했다. 근로를 시작한 지 사흘 차가 됐던 날, 뜻밖의 일을 겪었다. 한 아이가 나를 학습방 밖으로 불러낸 것이다. 유난히 동그랗고 맑은 눈을 가진 초등학교 1학년 상우(가명)였다. “선생님 이리 와봐요.”라고 내 귀에 속삭이는 목소리는 다분히 은밀했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상우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 아무도 없는 방 밖에서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상우는 긴장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던 상우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사랑해요.” 일순간 저항없이 웃음이 새어나왔다. 푸석푸석한 말들만 오가던 나의 일상에 오랜만에 들어온 사랑스러운 말이었다. 쑥스러워진 나는 “응, 고마워. 근데 왜 선생님 밖으로 불러내서 얘기해?”라고 물었고, 상우는 다른 친구들이 놀릴까봐 그렇다고 답했다. 그날 이후로 아직까지도 상우는 종종 내게 와 사랑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루
얼마 전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았다. 인사이드 아웃은 사람의 감정을 캐릭터화해 주인공의 내적 성숙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다. 감정 친구들이 협응하여 주인공의 감정을 지휘하고, 때론 어떤 감정이 앞서나가 방황하기도 한다. 영화의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보고 난 후 감회가 새로웠다. 표면적으로 영화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나 자신을 이해해보는 시간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슬픔을 외면하려 했던 기쁨이가, 슬픔이 있을 때 모든 감정이 의미 있게 됨을 깨닫는 장면은 얼마 전 나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사실 어릴 적의 나는 어두운 감정들을 줄곧 무시해왔던 아이였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했고, 그러면 안 되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런 나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난 것은 전공기초 수업 속 성격유형 분석 활동 때문이었다. 나는 내 유형의 풀이를 보는 순간 민낯을 들켜버린 것처럼 부끄러웠다. 내가 타인의 감정을 돌보는 만큼 나의 감정을 돌보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관계에 온 신경을 쏟다 보니 정작 그 속에 내 목소리는 묻혀가고 있었다는 걸 21살이 되어서야 인지하게 된 것이다. 슬픔이 찾아오면 한없이 슬퍼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 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