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뭐 내세울 일이라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전직 공무원 출신으로 2003년 정년퇴임 후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박민영(63) 목사.
그는 작년 7월 송파구에 `은빛노인'이라는 노인요양원을 세워 봉사자로서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의 요양원에는 무의탁 노인 10명을 비롯해 몸이 불편한 64명의 노인들이 서로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다.
운영비용은 거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노인들과 요양원에 지급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급여로 충당하고 있지만 요양보호사들의 인건비 등을 지급하고 나면 빠듯한 살림살이다.
그러나 박 목사는 최근 네 곳의 동사무소에 지난 7개월간의 시설 수익금 전액을 털어 모은 `거금' 900만원을 기탁했다.
박 목사는 "요양원에 찾아오는 노인들은 그래도 혜택을 받고 있는 분들"이라며 요양원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무의탁 노인들을 걱정했다.
우리 사회에 자신보다, 그리고 자신이 보살피는 노인들보다 더 곤궁한 처지에서 살아가는 노인들이 많다는 게 박 목사의 지론이다.
종로구에서 조그만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문봉실(54.여) 씨도 작년 우연한 계기로 소년소녀 가장에게 매달 5만∼10만원 씩을 지원하게 된 서민 소액 기부자다.
지난 1년 동안 기부에 `재미'가 들린 문씨는 이달 초 구청을 찾아 계속 소년소녀 가장을 돕고 싶다는 새해 각오를 전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이처럼 서울시내 각 구청에는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소시민들의 기부가 이어지고 있어 매서운 겨울을 훈훈한 온기로 덥히고 있다.
시, 구청 담당 공무원들은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 굳이 남을 돕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주민들을 대할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작지만 위대한' 소액 기부자 중에는 이름 없는 시민도 많다.
관악구에서는 최근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남성이 동전이 가득 담긴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며 맡기고 간 사례도 있었다.
봉지 안에는 닳고 닳은 100원, 500원짜리 동전들이 모인 5만2천원이 들어 있었다.
20일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서울 자치구와 공동으로 벌이고 있는 `따뜻한 겨울 보내기 사업'에 기부된 금품이 작년 동기대비 약 18% 증가했다.
이 사업은 외환위기 직후 이웃들이 십시일반 모아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는데 주요 기부 품목은 쌀, 김치, 라면, 연탄, 이불이고, 1인당 현금 기부액은 5만∼10만원이 주류를 이룬다.
서울모금회 관계자는 "어느 때보다 경기가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놀라운 액수"라며 내달 말까지 작년 달성했던 180억원보다 많은 197억원을 모을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액기부가 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나눔의 의미가 정착돼 가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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