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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계명문화상 소설부문 가작(2) - 말락에 관하여

  • 작성자 : gokmu
  • 작성일 : 2014-05-20 20:03:46

 

 

 

●제34회 계명문화상 소설부문 가작(2)

 

 

말락에 관하여
신성(동국대학교·문예창작학·4학년)


엄마가 아빠의 이름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내가 스물다섯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부엌의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으로 소설을 쓰던 엄마는,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내 쪽을 바라다보며 물었다.
대체 네 아빠 이름이 뭐였지?
나는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중이었다. 여름이었고, 뉴스에서는 연일 기록적인 더위에 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나운서마저 더위를 먹었는지 말을 더듬어댔다. 에, 또 그러니까 해수면의 급격한 상승으로, 에, 또…… 나는 엄마가 단순히 더위를 먹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말하자면 에, 또, 그러니까 네 아빠 이름이, 에, 또…… 같은 느낌으로. 그러나 그런 가능성은 초점 없이 치뜬 엄마의 두 눈과 마주쳤을 때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졌다. 노트북 액정 속의 커서가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어쩌면 엄마는 아빠에 관해 써보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로 모르겠어?
하고 물어보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테이블의 가장자리에는 어제 먹으려다 만 와인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하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와인의 마개를 따며, 아빠의 이름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의 이름이라는 것은, 이름 아닌 다른 것들로 엮인 무엇인지도 모른다. 가령 와인으로 치자면 맛이나 향기, 그 와인에 얽힌 역사 같은 것. 나야 아빠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엄마는 어떤가. 맛을 잊고, 향기를 잊고, 역사마저 잊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조금 울적해진 나는 얼른 아빠의 이름을 떠올리려 애써보았다. 그러나 와인 탓인지 아빠의 이름은 좀처럼 생각이 나질 않았다.
만약 엄마가 아빠의 이름 대신 이 와인의 이름을 물었다면,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와인의 이름은 고트호브였다. 고트호브, 빈티지는 1989. 나는 와인 병을 끌어와 만지작거리며, 차라리 엄마가 그것에 관해 물어주길 기대해보았다. 아빠의 이름이야 어쨌건 간에, 고트호브에 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그저 평범한 와인일 뿐이었지만 그 평범한 와인에 관해서라면 나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였다. 맛이나 향기 뿐 아니라 원산지, 양조 과정, 깃든 사연에 이르기까지. 아무 문제도 없다. 설령 몇 가지가 생각나지 않는다 해도, 와인에는 라벨이란 게 붙어 있다. 최소한 이름을 잊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흩어진 것은 품에 끼고 만지작거리던 병의 감촉이 선득해짐과 거의 동시였다. 뜯겨진 라벨 자국이 손끝에 지저분하게 닿아 있었다. 라벨의 흔적은 고트호브의 그것 같기도 했고, 혹은 전혀 다른 뭔가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한참이나 그 흔적을 응시했다. 단지 라벨이 사라졌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더 많은 것들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어쩌면 와인은, 고트호브가 아닐 수도 있었다.
왜 고트호브라고 생각했던 걸까.
조금씩 자신감이 사라져갔다. 고트호브의 맛도, 향기도, 색감도 잘 떠오르질 않았다. 병을 쥔 손에 땀이 차올랐다. 나는 엄마에게 라벨이 보이지 않도록 병을 감싸 쥔 채로, 내가 아는 술의 이름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돔 페리뇽, 크리스털 샴페인, 샤토 마고…… 슬며시 떠오른 온갖 이름들은 거친 병의 테두리에 부딪쳐 힘없이 미끄러져갔다. 병은 어떤 이름의 틈입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단단한 경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단단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것들에는 도무지 이야기가 깃들 수 없다.
별 이야기가 없는 술은 금세 사라지고 말아.
겨우 다섯 살 무렵의 일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게 그런 말을 해준 이가 있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지.
그가 정말로 그런 식으로 말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이처럼 정확한 문장을 들려줄 수 있는 이유는, 엄마가 쓴 소설에 그 대사가 나오는 까닭이었다. 소설에는 그 대사뿐만 아니라 고트호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다른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그 소설 또한 정말로 고트호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소설의 초판이 막 발행되었을 때, 한 평론가가 그런 말을 했다. “이 소설은 무엇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는 그게 소설의 훌륭한 점이라고 주장했다. 하나 평론가의 말은 틀렸다. 나는 그게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알고 있는 것이다.
이건 네 이야기란다.
소설의 첫 독자였던 내게,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단지 네가 했던 말을 받아 적었을 뿐이야.
엄마의 말에 내 마음은 데워진 와인거품처럼 부풀었다. 생애 처음 자신의 라벨이 인쇄된 와인의 기분이 그러할까. 내가 나온다는 사실이 신기해서였는지 나는 그 후로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 소설을 읽었다.
소설은 스물다섯이 된 내가 다섯 살을 추억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처음 읽은 이래로 줄곧, 나는 스물다섯 살까지의 삶을 보장받은 기분이었다. 아니, 어쩌면 스물다섯 살이 되기 한참 전에 나는 이미 스물다섯 살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섯 살의 여름, 나는 어느 바에 있었다. 폐선의 일부를 가져다 조립한 바테이블과 한여름에도 가끔 켜져 있곤 하던 난로. 아직은 여름이 버틸만하던 시절이었다. 난로의 위쪽에 고정되어 있던 에셔의 그림과, 맞은편에 진열되어 있던 이름 모를 와인들. 쏟아진 술들을 깨끗이 빨아들이곤 하던 두터운 엔드 테이블. 테이블의 나뭇결을 따라 흐르던 자동피아노의 아늑한 숨소리. 사람들은 그 변하지 않는 멜로디를 들으며 더없이 안락한 표정으로 와인을 마시곤 했다.
유치원에 가는 대신 그곳에 맡겨졌던 나는, 엄마의 일과가 끝날 때까지 줄곧 그곳의 사람들과 어울리곤 했다. 사람들은 그곳의 이름을 말락이라 불렀다. 그러나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말락은 그냥 말락이니까 말락이에요.
그 말을 한 것은 다섯 살의 나였다. 나는 그런 말을 곧잘 했다.
세상의 다섯 살들은 가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지.
말락의 마스터는 종종 그런 말을 하며 내게 여러 종류의 와인들을 시험 삼아 먹여보곤 했다. 엄마의 소설에 따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다섯 살에 처음 술을 마신 셈이다. 한번은 그 일에 관해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거 진짜에요?
엄마는 건망증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만약 엄마의 소설이 사실이라면, 생각건대 내가 당시의 일들을 모두 잊어버린 것은 바로 그 술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코올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어딘가에 부드러운 구멍을 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십 년 뒤에나 깨닫게 될 일이었고, 당시의 나는 마스터가 주는 술을 벌컥벌컥 받아 마시기에 바빴다. 딱히 내가 술맛을 알아서 그랬던 건 아니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나는 고작 다섯 살이었다. 다섯 살에겐 말락이 단지 말락이듯, 돔 페리뇽은 돔 페리뇽이고 크리스털 샴페인은 크리스털 샴페인일 뿐이었다. 고작 다섯 살의 인생으로 술이 다른 무엇이 되기엔 도저히 역부족인 것이다. 나를 처음 본 말락의 손님들 중에는 다섯 살밖에 안된 녀석이 무에 그리 슬퍼 술을 퍼마시느냐 묻는 이도 있었다.
바로 그게 슬픈 거예요. 이제 겨우 5년밖에 안 살았다는 게.
그 말은 말락의 모든 이들을 감복시켰다. 나는 요즘도 페이지를 넘겨 그날의 일들을 다시금 읽어보곤 하는데, 그 명대사는 14쪽과 15쪽 사이에 등장한다. 어쩌면 누군가는 거기에 밑줄을 그으며 읽을 것이다.
물론 나라고 그처럼 밑줄 그을 대사만 줄줄이 내뱉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말락에 갔을 때, 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 와인 같은 존재였다. 나는 주로 카운터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텔레비전에서는 북극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자주 방영되었다. 빙하가 녹는다든가 해수면이 상승한다든가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내레이터는 심각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그러나 연간 3mm씩 차오른다는 종말의 속도는 어쩐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북극은 현무암처럼 숭숭 구멍이 뚫려 곤란한 상태였다. 내레이터는 오존층 사이로 틈입한 자외선이 빙하 곳곳에 크고 작은 구덩이들을 만들어 놓았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카메라 앵글이 바뀌자, 이누이트들이 놀란 황제펭귄들마냥 귀엽게 몸을 움츠린 모습이 보였다. 평생을 북극에서 살아온 이누이트들도 그런 광경은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구덩이 안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어떤 이누이트들은 눈이나 얼음을 던져 넣어 보기도 했다. 도통 뭔지 알 수 없는 것을 던져 넣는 이누이트들도 있었다. 잠시 후에는 모든 이누이트들이 그 짓을 벌이고 있었다. 할 일들이 없는 모양이지. 멀리서 하품을 하는 바다표범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들이 구덩이를 메우는 동안, 말락의 마스터는 누군가에게 와인을 팔았다. 하나 모두가 그의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내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그것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 마스터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마침내 세계가 멸망하고 말았군.
한창 다큐멘터리에 빠져있던 마스터는 북극의 위기에 분노하는 중이었다. 내 질문에 대답해 준 것은 다른 이였다.
마스터의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말락의 시험을 통과한 이들 뿐이야.
그 말을 한 이는 필리어스 포그란 자로, 말락의 손님들 중 하나였다. 그에 관해서는 나중에 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하간 그 말을 들은 직후로 나는 그 시험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 하여 새로운 손님이 올 때마다 일련의 과정을 유심히 살피곤 했는데, 희한하게도 그 시험의 답은커녕 그 시험이 무엇인지조차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더욱 희한한 것은 그 시험을 통과한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기회가 생긴 참에 말하겠다. 실은 그 여자아이가 바로 필리어스 포그다.
애라니, 그녀는 스물다섯 살이야.
나는 마스터의 말에 놀라 대뜸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정말 스물다섯 살이야?
필리어스 포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잠시간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두 눈에 짙은 우수를 드리우고서, 한쪽 다리를 꼬아 앉은 채로 와인을 음미하는 다섯 살 여자아이는 기이한 데가 있었다. 그녀는 마치 내가 할 말을 알고 있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마 네가 네 살이던 시절이 있었겠지.
나는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좋아, 그럼 네 살 때는 무얼 했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세 살 때는?
그것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럼 두 살 무렵에 관해 뭔가 말해봐.
그런 걸 기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 살이든, 생후 6개월이든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나는 불현듯 내가 살아온 5년이 한심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분명 세 살의 나도, 네 살의 나도 있었을 텐데.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나는 마치 한 번도 살아 있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녀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물다섯 살도 마찬가지야. 누구나 그렇게 스물다섯 살이 돼.
그 말은 다섯 살의 내겐 너무 어렵게 들렸다(알다시피 다섯 살이란 와인과 위스키도 구분하지 못하는 나이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와인을 주문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와인이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말락의 사람들이 같은 와인을 주문하는 것을 좀체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나는 가끔 그들이 아무렇게나 막 지껄여 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마스터는 저 많은 와인들을 다 마신 건가요?
그 말에 대답한 것은 파하하, 웃던 필리어스 포그였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 말은 내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시험 삼아 이렇게 말해보았다.
사실 나는 스물다섯 살이에요.

엄마가 처음 아빠의 이름을 잊어버렸을 때,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아빠의 삶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아빠에 관해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글쎄, 아무튼 너희 아빠란 사람이 분명 있기는 했는데. 난 아무래도 그건 좀 심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다못해 성실한 사람이었다거나, 착한 사람이었다는 말이라도 나올 법한 일인데. 아빠의 삶은 마치 수수께끼 같았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수수께끼에 약했다.
어떻게 처음 보는 와인의 이름을 맞춰요?
마스터가 라벨이 붙어있지 않은 와인 병을 대뜸 내밀었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시험의 시작임을 깨달았다.
처음 보진 않았을 거야.
무슨 소리에요?
그야 너는 스물다섯 살이잖아. 스물다섯 쯤 된다면 누구나 이 와인을 마시게 된다고.
그야말로 난관에 봉착한 셈이었다. 나는 조금 기가 죽어서 말했다.
사실은 스무 살일 수도 있잖아요.
스무 살도 아는 와인이야.
나는 약간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하지만 열 살은 모르지 않을까요?
물론 열 살도 알지.
다섯 살도?
다섯 살도 그 정도는 알아.
다섯 살이 그런 걸 알 턱이 없었다. 적어도 그건 확실했다. 그러나 마스터는 고개를 내저었다.
시간은 그렇게 순차적으로 흐르지 않아. 그건 그저 비어있는 곳으로 향할 뿐이거든.
마스터는 그 말을 하며 오프너로 병을 열었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빈 디캔터 위로 향긋한 와인이 쏟아졌다.
중요한 것은 네 안의 스물다섯 살에게 말을 걸어 보는 거야.
마스터의 괴상한 어법은 다섯 살의 나를 무척 혼란스럽게 했다. 나는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와인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스물다섯 살의 나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그때 내가 대답을 들었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났고, 이제 나는 진짜 스물다섯 살이 되어 그 페이지를 읽게 되었다는 것. 나는 가끔 페이지를 넘기다 “고트호브”라는 말을 조심스레 속삭여본다. 작은 기적을 꿈꿔 보는 것이다. 혹여나 그 말이 다섯 살의 내게 전해질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이 예정된 기적은 책의 16페이지에서 계속된다.
고트호브. 이 와인의 이름은 고트호브에요.
그 순간 마스터가 입을 다물었고, 필리어스 포그가 글라스를 만지작거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자동피아노의 선율이 그쳤다. 뭔가가 변하고 있었다. 나는 어떤 고요한 시간이 내 안에 눈처럼 차오르는 것을 느꼈으나, 그것으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좀체 알 수 없었다. 마스터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선심 쓰는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크리스털 샴페인이란 술이 있어.
나는 마스터가 뭔가 힌트를 주려는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어느 술에 관한 역사였는데, 다섯 살의 두뇌로 그 이야기를 요약해보자면 대강 다음과 같은 폭력적인 형태가 된다.
크리스털 샴페인은 1867년 루이 뢰르드 사에서 제조한 술로, 러시아의 황제인 알렉산더 2세의 의뢰를 받아 만들었다. 로마노프 왕조야 대대로 애주가의 피가 흘렀고, 황제가 자신만의 술을 가지는 것도 흔한 일이었기에 그 사건 자체가 별달리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1867년의 이 샴페인은 그로부터 150여 년 뒤를 살아가는 다섯 살조차 알 만큼 유명해지는데, 그 막후에는 이 샴페인의 제조에 앞서 황제가 덧붙인 한 가지 특명이 있어서였다. 반드시, 병을 크리스털로 만들 것!
훗날 사가들은 속이 비치는 크리스털로 병을 만들면 독이나 폭탄에 의한 암살의 위협에서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로 알렉산더 2세는 젊은 시절 독살 위협을 받아 미각을 상실했어.
그럼 정말 독을 피하기 위해선가요?
아니지, 생각해 봐. 미각을 잃어버린 황제가 마시는 와인이라고.
그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는 묘한 곳으로 흘러간다. 사실 크리스털 샴페인은 1867년 이전에도 존재해온 술이었다. 다만 이름이 크리스털 샴페인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크리스털 샴페인이 크리스털 샴페인이 된 것은 황제의 명에 따라 술이 크리스털 병에 담긴 후의 일이었다(“당시 러시아의 경제 규모와 크리스털의 시세를 고려했을 때, 그건 거의 샴페인을 박제하는 행위나 다름없었어.”라고 마스터는 말했다). 술의 예전 이름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이름이 바뀌기 전, 마지막으로 술을 맛본 이가 누구인지는 확실했다. 바로 미각을 잃기 전의 황제였다. 기록에 따르면 황제는 크리스털 샴페인의 맛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냥, 마시면 취하는 평범한 술일뿐이야.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황제의 그 말을 들은 순간 다섯 살의 내 머릿속은 “디캔터 안에 들어간 와인마냥 심오한 변화를 일으켰”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가끔 그 ‘심오한 변화’가 무엇일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소설에는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다만 스물다섯 살의 통찰력으로 짐작해보기를, 다섯 살의 나는 어쩌면 아빠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황제가 평생 샴페인을 곁에 끼고 다니며 잃어버린 맛을 상상할 때, 나 역시 아빠에 관해 상상했던 것이다. 노년의 황제가 “크리스털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 다섯 살의 나 역시 아빠의 이름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런 시시한 이야기로 크리스털 샴페인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야.
마스터야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나는 조금 감격한 상태였다.
그래서 지금 제가 마시고 있는 게 바로 크리스털 샴페인이란 거군요?
아닌데?
……그럼 이건 돔 페리뇽이에요?
그건 저기 포그가 마시는 거고.
필리어스 포그가 글라스를 흔들어 보였다.
그럼 제가 마신 건 대체 뭐죠?
상상력을 발휘해 봐.
하지만 그때 나는 이미 그런 걸 발휘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세상에는 꼭 해보지 않더라도 결과를 알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다섯 살짜리에게 술을 먹이는 일이다. 나는 폭탄이라도 삼킨 기분이었다. 몸이 조금 추웠고, 뜨거운 뭔가가 위장 아래로 쑥 내려갔다. 열기는 내 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단단한 빙판 같은 것들을 모조리 녹이며 깊은 구멍을 파놓았다. 나는 갑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린란드에 관해 조금 말해 볼게요.
만취한 다섯 살짜리의 머릿속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그 중에는 북극의 섬도 있다. 그 섬은 북아메리카 북동쪽 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 면적 중 85퍼센트가 얼음에 덮여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섬이었다. 섬에는 5만 명의 인구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이누이트들은 그 중 2500여 명 정도로, 그들은 고래나 물범 따위를 사냥하며 평생을 이글루에서 보낸다. 거기까지 말한 나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켜며 마스터의 눈치를 보았다. 여기서부터다, 라고 생각했다. 글라스 속의 와인이 부드럽게 찰랑이자, 드넓은 북극해가 낡은 전생처럼 조용히 떠올랐다. 가령, 그 섬에는 고트호브란 지역이 있다.
아빠는 내가 막 태어났을 무렵, 그곳으로 떠났어요.
아빠가 북극으로 떠나야만 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삶이 따분했거나 엄마와 싸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이누이트를 동경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그 이유를 안다.
아빤, 세계를 지키러 간 거예요.
해수면이 높아지고, 빙하가 녹아내리는 곳.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찾아오는, 그런 평화로운 종말을 막기 위해 아빠는 그곳으로 떠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빠는 그곳에 커다란 이글루를 지어놓고서 빙하가 녹은 구덩이에 매일같이 얼음을 던져 넣고 있을 것이었다. 힘이 든 아빠는 내게 편지를 썼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메워지질 않는구나. 아빠는 무슨 짓을 해도 종말을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빠는 절망스런 표정으로 자신이 쓴 편지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썼던 문장을 지우고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아빠는 빙하가 녹은 자리를 바라보며 구덩이 속에 조심스레 편지를 띄웠다. 그 편지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난 이곳에 거대한 양조장을 만들 거다.
아빠는 구덩이를 들여다보며, 그 심연 사이로 먹음직스런 와인이 가득 차오르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첫 번째로 만들어진 와인을 내게 먹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자 아빠의 눈앞에는 정말로 내가 나타나는 듯했다. 아빠는 내가 그의 와인에 고트호브란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한 모금 마시는 것을 보았다. 눈이 내리는 북해에서, 아빠는 하염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몽롱함 속에 눈 소리가 사박사박 커져가고, 급기야 그 눈들이 북극 전체를 덮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러나 잠시 후, 아빠는 그 소리가 박수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는 나를 둥글게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마스터의 분명한 목소리를 들었다.
오늘부터 이 와인의 이름은 고트호브다.
이후, 말락의 사람들은 더 이상 나를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로 취급하지 않았다. 말락에서 자신의 와인을 가진 자는 성인이 되는 까닭이었다. 와인 고트호브는 그렇게 탄생했다. 나는 남은 고트호브를 마스터 몰래 훔쳐와 엄마에게 가져다주었다. 엄마는 웬 와인이냐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엄마에게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건 네 아빠에 관한 이야기니?
이건 그냥 와인에 관한 이야기에요.
엄마는 그날 밤새도록 와인을 퍼마시며 내 이야기를 듣더니, 좀 더 와인을 훔쳐오라고 종용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엄마가 데뷔작을 계약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의 일이었다. 책은 꽤나 히트했는데, 나는 가끔 내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그때 내가 와인을 훔쳐오지 않았더라면 우리 모자는 지금도 쫄쫄 굶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 나는 내가 너무 많은 와인을 훔쳐온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엄마가 알코올 중독에 빠진 것에는 내 책임도 있는 것이다. 아빠의 이름을 자주 잊어버리게 되면서, 엄마는 종종 자신의 소설을 되풀이해 읽곤 했다.
아무래도 지워지질 않는구나.
노트북의 소설을 읽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나는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아니, 엄마가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도 확실치 않다.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는 와인 병의 라벨을 손톱으로 긁어내는 중이었다. 나는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엄마, 하고 불러보았다. 엄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 소설에, 왜 아빠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요?
막상 던져놓고 보니 그 물음은 손톱 사이에 낀 라벨 찌꺼기처럼 비루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대답하는 대신 라벨의 흔적들을 벗겨내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라벨을 벗기고, 기억을 잃는다. 엄마는 마치 그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실제로 엄마가 잊어버린 것은 아빠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엄마는 해수면이 상승하는 정도의 속도로 여러 가지를 잊어갔다. 가끔은 자신이 쓴 소설의 제목을 헷갈리기도 했다. 해수면은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차오르고 있었다.
출판사에서 가끔 청탁이 들어왔지만, 엄마는 도저히 글을 쓸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엄마는 늘 하던 대로 새 소설을 쓰는 대신 예전 소설을 개정판의 형태로 출간했다. 그마저도 얼마 전부터는 내가 손보는 처지였다. 나는 가끔 이누이트적인 불안을 느꼈고, 엄마의 소설을 더 열심히 읽었다. 나는 때로 엄마의 소설에 아빠가 등장하지 않는 게 아니라 뭔가로 둔갑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작가들은 곧잘 그런 짓을 벌이곤 하니 엄마도 그랬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와인은 단순히 와인만이 아닌 것이다. 스물다섯이 되면 좋든 싫든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요는 상상력이지.
마스터의 훌륭한 점은 그토록 많은 와인들을 디캔팅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한모금의 와인도 마시지 않은 채로 살아왔다는 것에 있었다.
그처럼 사랑스러운 것을 대체 어떻게 마신단 말인가.
한번은 그걸로 텔레비전에 나온 적도 있었다. 하긴 그 시절에는 조금만 신기한 뭔가가 있어도 텔레비전에 나왔으니 대단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의 소믈리에들 중 하나로 프로그램에 소개된 그는 눈앞에 주어진 와인들의 이름을 마셔보지도 않고서 모조리 맞추어내 청중들의 이목을 끌었다.
어떻게 와인을 마시지도 않고 맞출 수 있는 겁니까?
상상력.
사실 그건 초능력이라고 말해야 옳았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마스터의 능력에 강한 반감을 가지기도 했다.
그건 와인에 대한 모욕이오.
그 말을 꺼낸 자는 마스터와 함께 나온 소믈리에들 중 하나였다.
와인을 마시지 않은 자는 와인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소.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 같았다. 일부 청중들도 그 소믈리에의 편을 드는 눈치였다. 마스터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는 소믈리에를 빤히 바라보더니, 잠시 후 와인 한 병을 통째로 글라스에 따르기 시작했다. 소믈리에는 엉겁결에 글라스를 받아들었다.
좋아, 그럼 그 와인은 무슨 맛이 나지?
마스터의 무례에 당황하던 소믈리에는 이내 노련한 솜씨로 테이스팅을 시작했다. 눈을 감은 채 그럴듯한 미소를 짓던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중동의 호랑지빠귀가 태평양을 저공비행하는” 맛이 난다고 말했다. 옆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필리어스 포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마스터가 말했다.
아니, 이 와인은 그런 맛이 나지 않아.
대체 마시지도 않은 당신이 어떻게 안단 말이오?
꼭 마셔봐야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와인처럼 얼굴이 붉어진 소믈리에가 뭐라 소리치려 할 때, 마스터는 이미 또 다른 소믈리에의 앞에 다가가 있었다. 그는 곧장 두 번째 소믈리에에게 같은 와인을 따라 건넨 후, 그 맛을 물어보았다. 두 번째 소믈리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무래도 호랑지빠귀의 존재가 심히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는 결국 “말라리아에 걸려 최후를 앞둔 여인이 추는 아르헨티나 탱고 같은” 맛이 난다고 주장했다.
마스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 번째 소믈리에에게도 역시 같은 짓을 했다. 별생각이 없던 세 번째 소믈리에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달다!”
태평양을 저공비행으로 순회하는데 성공한 호랑지빠귀가 말라리아에 걸린 여인이 되어가는 동안, 마스터는 따분한 바다표범처럼 하품을 몇 번 하고, 또 기지개를 켜거나 간단한 체조도 했다. 그리고 처음의 소믈리에에게 돌아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당신들은 대체 뭘 마신 건가?
방송은 그것으로 얼버무려지듯 끝나는 분위기였다. 갑자기 일렬로 뒤돌아 앉은 심사위원단이 등장했고, 그들은 마스터에게 점수를 매기더니 탈락을 선언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나는 그들이 대체 언제 문제를 내고 또 뭘 심사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긴 그들이라고 마스터를 마셔봐야 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퇴장을 앞둔 마스터에게 마지막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다. 청중 한 사람이 물었다.
하지만 와인의 맛을 모르는 것은 당신 역시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당신은 결국 한 모금의 와인도 마시지 않았으니까요.
아마도 내 꿈이 정해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화면에 비친 마스터의 눈동자를 본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그 안에는 호랑지빠귀 따위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나는 마스터가 얼른 입을 열어 말라리아 같은 소리나 늘어놓는 다른 소믈리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길 바랐다. 그러나 이어진 마스터의 말은 전연 의외의 것이었다.
만약 세상의 종말이 오면, 당신들은 뭘 할 거지?
청중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런 끔찍한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마스터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나라면, 그때 와인을 마시겠어.
모두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마스터가 퇴장하고 난 후에야, 그들은 그게 어떤 종류의 유머라고 생각했는지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소름이 끼쳐 웃을 수가 없었다. 종말이 와야만 와인을 마신다. 그 말을 거꾸로 하면 종말이 오기 전엔 단 한 잔의 와인도 마시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와인을 너무도 사랑한 까닭에, 한 잔의 와인도 마시지 않은 위대한 소믈리에. 며칠 후 재방송에서 그처럼 조롱 가득한 자막 한 줄이 추가되었을 때에야, 나는 마스터의 한 마디가 내 꿈을 영영 이룰 수 없는 무엇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절망했다. 나는 이미 수십 병의 와인을 마셔버린 몸이 아닌가. 이미 다 망쳐버린 것이다. 내 고민을 해결해준 것은, 역시나 마스터였다.
위대한 소믈리에가 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단 한 잔의 와인도 마시지 않거나, 아니면 세상의 모든 와인을 다 마시거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렇게 다섯 살의 나는 세상의 모든 와인을 다 마셔버리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나는 고트호브를 마셨고, 손님들의 와인을 몰래 훔쳐와 마셨다. 엄마는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다. 일이 그렇게 되다보니 나는 무척이나 술이 강한 다섯 살이 되어, 말락에서도 그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나 그런 나도 사람들과 대작을 하다 보면 취하지 않을 수 없어서, 대개는 말락의 마감 시간이 다가올 때쯤 누군가에게 업혀 집으로 돌려보내지곤 했다. 가끔 나는 술주정을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엄마의 소설 178페이지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술주정을 한다. “아빠의 등은 참 단단해요.” 도저히 술주정으로밖엔 해석할 수 없는 문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에 아빠에게 업히는 장면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소설에서 그 문장은 마치 뜯겨진 라벨의 보풀마냥 초라하게 남아있다. 다음 개정판에서 그 문장은 사라질 것이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정말로 내가 그 문장을 지우던 순간이었다.
네 아빠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아니, 정말로 그런 말을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는 테이블에 코를 박고 잠들어 있었다. 와인의 라벨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어디선가 소변 냄새가 났다. 늙은 엄마의 몸을 들쳐 업자, 시트에 수줍게 모여 앉은 검고 둥근 원이 보였다. 이즈음 자주 있는 일이었다. 나는 엄마의 안에서 뭔가가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구멍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차츰 시간이 지나면, 구멍은 아빠가 양조장을 완성하기도 전에 고트호브를 통째로 삼켜버릴지도 몰랐다. 어쩌면 엄마는 시험 삼아 그 안에 들어가 보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누이트 복장을 한 엄마와 아빠가 나란히 그 구멍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깊고 그윽한 와인이 차올랐다.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출판사였다.

나를 반긴 것은 수년간 엄마를 담당해온 편집자였다. 그는 같은 소설이 열 번이나 개정판으로 재출간 된 것은 업계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한동안 소설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벌써 열 번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수년마다 한 번씩, 엄마는 소설의 문장이나 표현들을 세련되게 바꾸거나 짧은 외전을 덧붙이는 식으로 자신의 데뷔작을 수정해왔다. 뜻밖에도 판매는 늘 호조였다. 엄마의 다른 소설들이 대부분 실패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마음 놓고 술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 소설이 벌어들인 수입 덕분이었다.
나는 출판사의 책장 한 열을 가득히 채운 엄마의 소설들을 바라보았다. 거의 2년꼴로 한 권씩, 총 열 권의 개정판이었다. 연도를 보니 소설의 초판이 나온 것이 벌써 이십 년 전의 일이었다. 누렇게 변색된 책을 보고 있으려니 나는 조금씩 기분이 이상해졌다. 언제나 내가 읽어온 것은 가장 최근의 개정판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열 번째를 기념하기도 할 겸, 책의 제목을 바꾸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있는데…… 작가님께서는 어떠세요?
저는 작가가 아니에요.
혹시 따로 염두에 두신 제목이 있으신가요?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최후에 정의되는 것들에 관하여』. 확실히 소설 제목으로는 적당하지 않았다. 이런 책이 이십 년이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나는 책장에서 소설의 초판을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았다.
참, 그건 그렇고 필리어스 포그와 자동피아노가 등장하는 부분은 이제 빼는 게 좋지 않을까요? 평론가 선생님들도 그리 생각하시는 듯 하고.
워낙 지나가듯 던진 말이었기에 나는 얼른 반응하지 못했다. 마치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말투였다. 목덜미가 스산해졌다. 엄마의 소설이 어떻게 이십 년이라는 세월을 견딜 수 있었는지, 또 그런 책들을 사주는 것은 누구인지, 나는 문득 그 해답을 알 것 같았다. 그렇다곤 해도, 필리어스 포그와 자동피아노를 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와 자동피아노가 없다면 이 소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까닭이었다. 나는 펼쳐든 책의 페이지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정말 세상의 와인을 혼자 다 마실지도 모르겠네.
늦은 밤, 혼자 와인을 마시는 내 곁을 지켜준 것은 필리어스 포그였다. 그녀는 양손으로 단정하게 글라스를 포개어 쥔 채 품위 있는 목소리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대부분은 그녀가 여행했던 장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과연 그녀는 스물다섯 살답게 기상천외한 여행담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가 사막에 갔을 적의 일이다.
타클라마칸에는 여행객들을 잡아먹는 죽음의 유사(流沙)가 곳곳에 숨어 있다. 이 유사들은 일정한 주기를 두고 위치를 바꾸는 특성이 있어서, 여행객들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안전한 코스로 길을 나서게 되어 있었다. 그녀가 여행을 떠나던 날 갑작스런 모래 폭풍이 들이닥쳤다. 대양에서 은밀하게 접근해 온 무거운 대기가 사막의 열풍과 충돌했던 것이다. 강한 폭풍은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사막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모래가 발목을 잡아챈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때 그녀는 고작 다섯 살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필리어스 포그는 호리병 모양의 둥근 구덩이 속에 있었다. 천장에서는 희미한 빛과 함께 간헐적으로 모래가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그곳에 갇힌 이가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덩이 속에는 그녀뿐만 아니라 같은 처지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이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유사에 빠진 전갈이나 사막여우 따위를 잡아 끼니를 해결하고, 남는 시간에는 온종일 모래를 끌어와 천장을 향해 높이 쌓아올리는 일을 반복했다. 그녀는 사람들을 도와 매일 모래를 쌓았다. 모래는 쉽게 뭉치지 않아 매번 흘러내렸다. 그녀는 사람들이 점점 의욕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모래 속의 삶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짜 공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야.
그 말을 한 이는 처음으로 구덩이 속에 갇혔다는 한 남자였다.
정말 무서운 것은 상상력을 잃는 거지(“하는 말이 왠지 마스터 같은데?” 내가 말했다. “아니야.” 포그가 부정했다.).
남자의 복장은 방금 전까지 와인 바에서 일하다 왔다고 해도(“마스터 맞잖아?”) 믿을 정도였다(“아니라니까.”). 어쨌든 미심쩍은 복장의 남자와 함께, 필리어스 포그는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하루하루 열심히 모래를 쌓았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여섯 살의 자신을, 다시 일곱 살의 자신을 상상했다. 허기와 함께 남은 생이 줄어가는 만큼, 그녀는 필사적으로 모래를 쌓으며 자신의 삶을 상상했다. 필리어스 포그는 거기서 이야기를 잠깐 끊고는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 나는 뒷얘기가 궁금해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선 어떻게 나온 거야?
그녀는 나오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다섯 살의 그녀는 아직도 그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모래를 퍼 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너는 여기에 있잖아?
지금 나는 스물다섯 살이야. 그땐 다섯 살이었고.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그러나 내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자동피아노가 선수를 쳐왔다. 필리어스 포그가 이야기를 끝마칠 때 자동피아노가 연주를 시작하는 것은 말락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 필리어스 포그는 조심스레 글라스를 내려놓고 자동피아노 앞에 앉아 그것을 치는 시늉을 하곤 했다. 물론 정말로 피아노를 치는 것은 아니었다. 자동피아노에는 건반이 없기 때문이었다.
저 곡의 이름은 타클라마칸이야.
네?
한때 그녀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였어.
마스터의 말은 좀처럼 믿기 어려웠지만, 그녀의 현란한 손놀림을 보고 있으면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마치 선실에 앉은 고독한 선장 같았다. 그녀는 그 피아노로 항해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는 타클라마칸의 연주회에 초대되었고, 암스테르담의 그레이트 홀에서 공연을 했으며, 중동의 난민들을 위한 자선 음악회를 열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가지 못한 곳은 고트호브였다. 그때쯤 그녀는 수전증에 걸렸다. 세계 곳곳에서 마신 와인들이 그녀의 섬세한 신경을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갉아먹었던 것이다. 같은 나이임에도 그녀에게 와인은 단순히 와인만이 아니었다.
저 곡은 그녀의 손이 온전할 때 만들어진 거야.
확실히 필리어스 포그는 글라스를 양손으로 꼭 포개어 잡곤 했고, 그러지 않을 때는 주머니에 손을 숨기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마스터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왠지 그것은 그녀가 마신 와인들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 같았다. 그래서 음악 소리가 들려올 때면, 나는 어떤 거대한 음모의 공모자가 된 기분으로 가만히 눈을 감곤 했다. 그러면 어디선가 그녀를 위한 건반이 나타났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들이 통, 통, 하고 뛰어다니며 도를 누르고 레를 누르고 미를 누르는 광경을 상상했다.
말락스러운 일이지.
마스터는 감탄한 것처럼 말했다. 필리어스 포그의 연주를 들을 때면, 마스터는 습관처럼 그 말을 중얼거렸다. 말락의 사람들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다른 이름을 가진 와인을 마시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똑같은 병에 담긴 와인이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 어제는 타클라마칸이라 불렸던 와인이 오늘은 고트호브라 불렸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모든 와인을 다 마시겠다는 내 계획은 요원한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마스터가 말했다.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시간이야. 모든 와인들은 각자 다른 시간에 만들어져서, 다른 시간에 먹혀 없어지지. 그러니 세상에 똑같은 와인은 단 한 방울도 존재하지 않는 거야.
필리어스 포그가 그에 호응하듯 말했다.
애초에 말락스러운 계획이었어.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나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말락스럽다, 라는 말을 들은 까닭이었다. 중동의 호랑지빠귀가 말라리아에 걸린 아르헨티나 여인으로 둔갑하는 것 정도는 일상인 세계. 말락은 그곳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무엇이었다. 어떤 은유나 상징으로도 설명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동어 반복으로 존재하는 단어. 그런 말락에서 “말락스럽다”라는 말을 듣는 것은 오직 필리어스 포그와 나뿐이었다.
필리어스 포그는 내가 들려주는 고트호브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유독 그녀 앞에서만큼은 좀체 그 이야기들을 잘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보면 사랑에 빠진 남자는 다섯 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나는 그녀 앞에서 언제나 다섯 살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다섯 살 때 이미 너와 만났었어.
가끔 필리어스 포그는 그런 식으로 대화의 서두를 열곤 했다.
우린 스물다섯 살에 처음 만난 거 아냐?
이거 좀 더 마실래?
나는 여자의 말은 알아듣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녀에 의하면 우리는 다섯 살에 말락에서 처음 만났고, 스물다섯 살에 말락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제 나도 내가 몇 살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스물다섯에 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돼. 사람들은 나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부르지. 그리고 나는 너를 위한 곡을 연주하게 돼. 그 곡이 바로 지금 흘러나오고 있는 곡이야.
사실 나는 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울려주기로 했다.
스물다섯에 나는 네가 나오는 소설을 쓰게 돼.
말해놓고 보니 썩 그럴듯한 것처럼 여겨져 나는 만족했다.
정말? 제목이 뭔데?
거기까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급히 스물다섯의 내게 말을 걸어보았다. 그러나 스물다섯의 나는 뭘 하는 중인지 도통 응답이 없었다. 어쩌면 소설이라도 읽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예컨대 스물다섯이 될 무렵, 나는 ‘필리어스 포그’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소설이 이미 다른 누군가에 의해 쓰여 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소설은 1873년에 쥘 베른이 먼저 써버렸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쥘 베른이 쓴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읽으며 분한 마음을 삭이게 된다.
세계 일주를 하는 80일 동안, 필리어스 포그는 온종일 선실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잠을 잔다. 사람들은 종종 여행객으로서 불성실한 그의 태도를 비판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꼭 밖에 나가봐야 거기 뭐가 있는지 아나? 여행객들이 그럼 지금 밖에서 사람들이 뭘 하는 중인지를 맞춰 보라고 비아냥거리자, 필리어스 포그는 껄껄 웃으며 대답한다.
보나마나 와인이나 퍼마시고 있겠지.
때마침 필리어스 포그의 배는 동해 연안을 지나가고 있었고, 확실히 그의 말대로 와인을 너무 많이 퍼마신 엄마는 머리에 커다란 구멍이 자라나는 중이었다. 스물다섯 살의 나 역시 많은 와인을 마셨지만 엄마보다는 조금 더 상태가 나았다. 나는 엄마를 대신해 엄마의 소설을 쓰게 된다. 출판사에서는 제목이 낡았으니 새로운 제목을 붙이라고 요청해온다. 그런 연유로 스물다섯 살의 나는 쥘베른에게 지지 않을 수 있는 제목을 궁구하게 된다. 마침내 그 소설의 제목은…….
만약 마스터가 새 와인을 꺼내 오지 않았더라면 다섯 살의 나는 소설의 제목을 엿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처음 보는 와인이었다. 내가 또 고트호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마스터는 그런 건 됐으니 와인의 이름이나 붙여보라 말했다. 나는 조금 삐져 있다가, 문득 마스터의 말을 이해하고서 깜짝 놀랐다. 이야기가 없는 와인이라고? 필리어스 포그와 나는 가만히 서로를 쳐다보다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말락.” 그 와인에 어울리는 이름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뿐이었다. 마스터는 만족해하는 듯했다. 그는 그 와인에 어떤 라벨도 붙이지 않았다. 말락을 마시고 용기를 얻은 나는 다시 고트호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이번에야말로 아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필리어스 포그가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네 아빠가 많이 늦으시나 보다.

세상은 정말 멸망해 버린 것처럼 더웠다. 어쩌면 이미 멸망해버렸는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에서 죽어라 지구온난화를 떠들어 댈 때, 사람들은 뭐라도 했어야 했다. 흘러내린 땀에 셔츠가 축축하게 젖었고, 심지어 일부는 바짓단 사이로 흘러내려 아스팔트 바닥을 적셨다. 가방에는 출판사에서 가져온 열권의 책이 들어있었다. 모두 엄마의 소설이었다. 나는 그늘 가에 주저앉아 엄마의 소설들을 하나하나 넘겨보았다.
막 초판이 출간되었을 때, 말락에는 마스터나 필리어스 포그를 제외하고도 몇 명의 인물들이 더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개정판이 나오면서 그들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었다. 낯설게 하기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평론가들이 문학성을 논하는 동안, 누군가는 하나의 메타포가 되었고, 누군가는 한 줄의 대사가 되었다. 또 누군가는 일종의 환상적 장치로 변모했다. 그 중에는 항상 말락으로 나를 데리러 왔던 한 남자도 있었다.
물론 소설에서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역시 나를 아들이라 부르지 않는다. 다만 정황상 그가 제일 아빠에 가까워 보일 뿐이다. 그는 땀이 많은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의 손을 붙잡고 말락을 오가는 길은 내내 축축함의 연속이었다. 그는 대부분 “그래, 그래”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종종 땀을 닦았다. 그게 전부다. 그 외에도 초기 개정판에는 그를 향한 엄마의 대사들이 간혹 있다. 예를 들면 “뭐라도 해봐! 날 때리기라도 해보란 말야!” 같은 것들. 고작 그런 것들이 없어진 것이다. 다시 개정판이 몇 번 넘어가면서 그는 점점 더 많은 땀을 흘렸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데리러 오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가 길 위의 어딘가에서 녹아버린 것이라 생각했다. 군더더기나 오탈자처럼 보이는 몇 가지 흔적들만이 희미하게나마 그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아니, 사실은 엄마의 모든 개정판을 통틀어 딱 한 부분이지만 그가 온전히 등장하는 장면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그 부분은 일종의 환상성이나 메타포로 읽혔다. 지난 이십 년 동안 나는 줄곧 그렇게 믿어왔다. 출판사에서 초판을 다시 펼쳐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계속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는 책의 마지막 챕터인 「말락의 몰락」편에서 단 한 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엄마의 데뷔작이 증쇄를 거듭할 무렵, 다섯 살의 나는 내가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이 나를 마시게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마실수록 늘어가던 주량은 어느덧 한계에 이르렀다. 마신 와인의 숫자가 늘어갈수록 와인과 와인 사이의 경계도 희미해져 갔다.
그냥 와인만 마셔도 부족할 판국에 와인을 섞기까지 하다니. 블렌딩(Blending)의 존재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후 내 머릿속에서도 와인들이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다. 타클라마칸 사막에 눈이 내리거나 고트호브에 폭염이 퍼붓는 듯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니 한 잔의 와인이라도 마시게 되면, 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야.” 마스터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어쩌면 평생 와인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에 잠겼다.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것이 시간이라면, 모든 와인은 생애 단 한 번만 마실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단 한 번만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마시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한 번으로 인간이 와인에 대해 뭔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껏 마셔온 와인들을 기억에서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었다. 나는 사막을 건너가기로 결심한 바다표범의 심정으로 꾸역꾸역 와인을 삼키다 옆에 앉아 있던 필리어스 포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의심케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지금 뭘 하는 거예요, 마스터?
그곳에는 필리어스 포그 대신 마스터가 앉아 있었다. 마스터는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그것도 병째로 퍼마시며 북극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중이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즈음엔 나 역시 깊이 취한 상태여서 도무지 화낼 기력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북극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보아하니 이전 방영분의 후속편인 듯했다.
놀랍게도 북극의 구덩이들은 이누이트들에 의해 상당부분 메워져 있었다. 그러나 눈과 얼음으로 구덩이를 다 메운 이누이트들의 표정은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에게 할당된 구덩이를 다 메운 이누이트들 중 일부는, 메운 구덩이의 눈들을 도로 파내는 중이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이누이트는 울적한 얼굴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글쎄, 그걸 다 메워버리니 할 일이 없더라고요.
나는 이누이트들이 힘을 모아 구덩이를 파내는 것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마스터를 찾아가 전날의 일을 따졌다. 그러나 마스터는 통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기가 막힌 내가 화를 내려는데, 텔레비전에서 내레이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느새 북극은 다시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같은 모양으로 돌아가 있었다. 마스터는 그런 광경은 난생 처음 본다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마침내 세계가 멸망해버렸군.
그 순간 아주 끔찍하고 슬픈 뭔가가 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마스터가 한 잔의 와인도 마시지 않고 이제껏 살아올 수 있었던 비밀을 그때의 나는 깨닫고 만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깨달은 것은 나 자신의 슬픈 운명이기도 했다. 종말은 언제나 미리 와있었던 것이다. 와인은 단순히 와인만은 아니었지만, 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도 했다. 술에 취하면 취할수록 우리는 술에 대해 잘 모르게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와인들은 결국 우리가 마시지 않은 와인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시지도 않은 와인들에 대해 주절대며 평생을 살아가야 할 운명이었다. 나는 취기에 몸을 가눌 수 없는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 취기는 다섯 살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것이어서, 오히려 금세 휘발되어 내 안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억울한 마음에 계속해서 마스터를 괴롭히다 테이블에 엎드린 채 곤히 잠이 들었다. 마스터가 술을 마셨던 연유를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누군가가 이곳의 와인을 훔쳐다 팔았어.
내가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필리어스 포그는 막 그 말을 꺼내는 중이었다. 손님들은 하나같이 침울한 얼굴이었다. 그날 마스터는 누구에게도 와인 값을 받지 않았다. 말락에서 뭔가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항의하는 손님들을 끌어내고, 말락의 와인들을 자루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경찰들 사이에서 엄마의 소설 72페이지에 등장하는 인물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역시 그가 맞았다.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들어 호랑지빠귀는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려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 여기였군요. 그는 바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 몇 병을 유심히 살피더니, 경찰들을 향해 “이 와인들은 틀림없는 가짜”라고 선언했다. 형사들은 마스터를 결박했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고, 또 누군가는 울었다. 마스터는 연행되면서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별 이야기가 없는 술은 금세 사라지고 말아.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이누이트 하나가 발을 헛디뎌 구멍 속으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마스터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것이 마스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말락에 남은 것은 필리어스 포그와 나뿐이었다. 우리는 경찰들이 남긴 와인을 따라 마셨다. 몇 병이나 마셔도 의식이 흐려지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그럼 내가 마셨던 건 대체 뭐였어?
와인을 훔친 건 너지?
자동피아노 소리가 티끌처럼 침묵 속을 떠다녔다. 필리어스 포그는 이유를 캐묻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런 짓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뭔가를 확인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필리어스 포그는 무심한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등을 돌려 자동피아노 쪽을 향해 걸어갔다. 손아귀 사이를 빠져나가는 그녀의 손가락은 지나치게 매끄럽고 연약했다. 하얀 손가락이 피아노의 스위치를 내렸다. 그로써 말락은 완전한 침묵 속에 잠겼다.
혼자 남은 나는 계속해서 와인을 따라 마시며, 스스로가 얼른 취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와인을 마셔도, 전혀 취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어째서 이 와인들은 와인조차 아니란 말인가.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토록 괴로운 일임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어떤 공간은 단지 시간이 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말락의 사물들은 자꾸만 시간이 되었고, 시간이 된 것들은 다시 어디론가 흘러갔다. 낮과 밤의 구분이 조금씩 흐려졌다. 시간이 빠져나간 말락에 나는 홀로 남아 있었다. 자동 피아노의 스위치를 올려보았으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필리어스 포그의 손가락이 닿았던 곳들을 상상하며 건반을 누르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슥, 하고 빙하가 잠기는 듯한 소리가 났다. 몸 전체가 아득한 심연으로 떨어져 내리는 듯한 소리였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 나를 상상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이제 말락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멜로디가 사라진 건반 소리 같은 것이 울렸다. 노크 소리였다. 나는 홀린 듯 다가가 말락의 손잡이를 쥐었다. 강렬한 빛과 함께 한여름의 열기가 엄습했다. 황제펭귄 같은 것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것은 펭귄이 아니었다.
아빠였다.
이누이트 복장을 하고 있지는 않았고, 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젊었지만, 나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바로 내 아빠라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에어컨을 꺼두었는지 집안은 습기로 가득했다. 나는 가져온 개정판들을 내려놓고 엄마를 찾았다. 그러나 엄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음습한 공기만이 코끝을 찌를 뿐이었다. 엄마를 뉘였던 침대에는 물기가 흥건히 남아 있었다. 침대보를 세탁기에 넣은 후, 부엌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와인을 들이켰다. 역시나 라벨이 없는 와인이었다. 어쩌면 엄마는 라벨을 뜯어내는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실수로 자신의 라벨마저 뜯어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방으로 가보니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마우스커서는 개정판의 마지막 부분인 ‘아빠였다.’에 이르러 멈춰 있었다. 문득 엉덩이가 축축하다 싶었는데 밑을 보니 의자가 흠뻑 젖어 있었다. 엄마는 마지막까지 소설을 썼던 것이다.
커서의 깜빡임이 많아지는 동안, 나는 서서히 아득한 기분이 되어갔다. 엄마는 이처럼 많은 라벨들을 뜯어 놓은 채,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나는 그 많은 와인들에게 대체 어떤 이름을 붙여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소설을 처음부터 읽으며, 엄마가 남긴 구멍들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나는 말락에 관해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마스터의 목소리를 상상했고, 들어본 적 없는 필리어스 포그의 연주를 상상했다. 사람들과 함께 마시지 않은 와인들을 상상했고, 제목조차 모르는 다큐멘터리를 상상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상상했고, 그래서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나는 기억하고 싶었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시간들을,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날들을 그리워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다섯 살의 내게 말을 걸어보는 것이 다였다. 나는 와인을 쭉 들이켠 후, 키보드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슥, 하고 빠져드는 소리가 날까봐 무서웠지만, 그것도 결국엔 내 몫이었다.
그런데 키보드에 손을 가져다대는 순간,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자동피아노의 소리였다. 나는 취객처럼 비틀거리며 소리의 궤적을 따라갔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생전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장소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렬한 태양 볕이 내 몸을 내려 쬐고 있었다.
나는 타클라마칸에 있었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필리어스 포그의 손가락이 나를 어딘가로 안내했다. 나는 모래 위에 땀을 흩뿌리며 사막의 길을 견뎌냈다. 막 사구(沙丘)를 넘었을 무렵, 신기루처럼 여자아이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아니, 여자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스물다섯 살의 필리어스 포그였다. 모래 폭풍이 불어왔고, 멀리서 유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필리어스 포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걸음을 빨리하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내 몸이 점점 녹아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오는 듯 흘러내리는 땀에 현기증이 났다. 간신히 유사에 도달했을 때,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서있었다. 그곳은 아마 세상 모든 이야기들의 끝과 같은,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말락으로 가는 문이 있었다.
나는 양초처럼 짓무른 손으로 말락의 문을 두드렸다. 나는 나를 반겨줄 마스터를 상상했고, 필리어스 포그를 상상했으며, 손님들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고트호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를 상상했다. 그러나 이윽고 문이 열렸을 때, 내 모든 상상들은 그 자취를 감추었다. 내가 본 것은 황폐한 말락의 정경이었다. 바테이블 위에는 깨진 와인 병들이 굴러다녔고, 난롯불은 꺼져 있었다. 에셔의 그림은 고정대가 빠진 채 기울어져 있었다. 오른손과 왼손이 각자 펜을 쥐고서 서로를 그려주는 그림이었는데, 기울기 때문인지 손의 크기가 달라보였다. 나는 한참이나 그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텔레비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텔레비전에서는 지구온난화에 관한 다큐멘터리 대신 북극의 역사가 방영 중이었다.
에, 또, 그린란드가 덴마크령이 된 계기는, 그러니까, 1721년 노르웨이 선교사 ‘한스 에게데’가 이끄는 탐험대가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에 ‘고트호브’라는 식민지를 세운 때부터인데요, 그러니까, 에 또.
다행히 자동피아노만은 양호한 상태였다. 그러나 음악이 흘러나왔을 때, 나는 그 연주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낯선 연주는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했다. 그곳에는 마스터도, 필리어스 포그도, 손님들도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나 혼자 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와인이 와인만은 아니듯, 나 역시 혼자였지만 혼자만은 아니었다. 이것 참 말락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고개를 숙여 다섯 살의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다섯 살의 나 또한 스물다섯 살의 나를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그렇게 오래도록 서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그런가, 하는 기분으로 다섯 살의 나를 업었다.
이 녀석,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는데.
다섯 살의 내 몸은 부드럽고 연약했다. 그에 비해 스물다섯 살의 내 몸은 무척 단단하게 느껴졌다. 다섯 살의 나는 스물다섯 살의 내게 뭐라고 말을 했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 그래”하고 대답했다.
잠시 후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나는 누군가가 내 등에다 라벨 같은 것을 붙이는 느낌을 받았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을 때, 어떤 소설의 제목이 내 머릿속에 가만히 떠올랐다. (*)

 

 

 

●제34회 계명문화상 소설부문 가작(2) - 당선소감

 

이갑수라는 소설가가 있다. 내겐 대사형 쯤 되는 사람인데, 참고로 그의 등단 소감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내가 받을 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청탁이 잘 오지 않는다. 이 수상소감은 그를 위해서 썼다. 앞으로 상 같은 건 많이 받을 테니 이번 한 번 쯤은 이런 짓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대사형에 관해 생각하다 보면 언제나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 장면은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에 나온다(이렇게 말하면 뭔가 대단한 장면 같지만 별 건 아니다).
J는 잠깐 생각하더니 웃었다.
“하지만 그걸 판단하는 것은 자네들 아이들의 세대지, 자네들은 아니야. 자네들 세대는…….”
“이미 끝났다 이건가?”
“어떤 의미에서는 말이야”라고 J는 말했다.
“노래는 끝났다. 그러나 멜로디는 아직 울려 퍼지고 있다.”
“자네는 언제나 말을 잘하는군.”
나는 “왜 아니꼬워?” 하고 대꾸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이 소설에 조금이나마 괜찮은 구석이 있다면 모두 대사형의 덕이다. 그리고서도 아직 남은 영광이 있다면, 그 영광은 군대에 가는 나를 대신해 시상식에 참가해 줄 나의 친구 정열이의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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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모든 존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에게,  ‘어머니와 나’ 오늘도 밥은 제때 먹었는지, 수업에서 ‘예시’를 들어 쉽게 설명했는지 물으시는 아빠께 툴툴거렸다. 당신 딸의 나이가 별로 실감나지 않으시는 눈치다. 사실, 저 안에 담긴 아빠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 놓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나 같은 학생들이 많으리라. 이 책은 어느 이름 모를 여사님의 일상 목소리를 기록한 것이다. 대화의 상대이자, 책의 저자인 김성우는 바로 그녀의 아들. 70대 초반쯤 되셨을 법한 여사님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상황-거창한 시대적 사건부터 천 원에 산 감자 이야기까지-에 대한 단상들을 꾸밈없는 잔잔한 언어로 들려준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다 보면 모든 이야기가 편편이 분절된 것이 아닌, 세월만큼 깊어진 그녀의 너그러운 지혜로 꿰어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한 여인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구술사이자 그녀의 에세이요,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철학서인 것이다. 문학과 철학의 언어는 때로 우리에게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는 별 관련 없는, 재주 많은 이들의 영역인양 느껴지기도 한다. 리터러시 연구자로서 문자 자체에 대한 이해력을 넘어 삶이 스며있는 소통에 대해 이야기 해 온 저자는 “나의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