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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문학상 작품보기

제33회 계명문화상 소설부문 가작(2) - 고유진동수

  • 작성자 : gokmu
  • 작성일 : 2013-05-21 23:59:23

 

 

 

●제33회 계명문화상 소설부문 가작(2)

 

 

고유진동수


배상현(계명대학교·문예창작학·3)

 

 

 

그 전날 밤도 소리는 여느 때처럼 들려왔어요. 저는 그저 방안에 얌전히 앉아 있었고요. 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의자에 앉아서, 책상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거든요.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저는 몰라요. 예를 들어보라고요? 음…. 어떨 때는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로도, 가끔은 전쟁영화에서 들었던 포탄이 터지는 소리 같기도 했으니까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가 있다면 너무나 생소해, 아마 그렇게 들리지 않을까 합니다. 방문은 닫혀 있었지만 소리만큼은 벽과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내 고막을 때리는 것 같았어요. 예. 정말 때리는 것 같았어요. 저, 근데……. 이런 것도 일일이 다 얘기해야 하나요?

알았어요. 생각나는 대로 말해볼게요. 그럼 팁 한 가지 가르쳐 드릴게요. 고음을 견디는 가장 나은 방법은, 소리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겁니다. 소음을 해독하려는 순간 소음은 소음을 넘어 하나의 의미를 갖거든요. 이 사실을 알아낸 건 몇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그 전까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곧이곧대로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었죠. 이웃집에서 항의가 들려올 법도 한데, 이상하게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분명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인 데도요. 아버지와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간밤에 아무리 큰 소리가 나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밥을 먹을 뿐이었어요. 얼마동안은 주위가 이상한건지, 내가 이상한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그냥 제가 이상한 거라 생각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저 외의 사람의 이상하다 여기는 것 보다, 저 하나가 이상하다 여기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서요.
몇 시쯤인지는 모르겠어요. 갑자기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와장창, 하는 큰 소리가 들렸어요. 소리가 뚜렷하게 선명했던 걸로 봐서 안방이 아닌 마루에서 난 소리인 것 같아요. 유리나 무언가가 깨진, 그런 날카로운 소리. 순간, 소리에 의미를 두면 안 된다싶어, 얼른 딴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할까, 라는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소리는 예고 없이 멎었습니다. 보통 소리는 서서히 소리의 크기를 줄여가며 잦아들었어요. 시간으로 따지면, 새벽 두세 시 정도? 그러니까, 평소보다 적어도 두 세 시간은 빠르지 않았을까요.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봤지만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날짜를 넘기지 않고 잠든 적이 언제쯤이었을까요. 나는 금방 잠들었던 것 같아요. 저기, 물 좀 갖다 주실래요?

소리. 우리 집은 항상 소리에 파묻혀 있는 것 같습니다. 소리가 언제부터 들려왔는지는 저도 몰라요. 아주 오래전부터였다는 것 말고는요. 소리는 집에 있을 때만 들려왔어요. 소리가 들리는 시간은 일정하지는 않은데, 주로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계속됩니다. 어떤 때는 아침까지 계속되기도 하고요. 어머니는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아침이 되면 책상위에 아버지 용돈으로 오천 원을 놔둔 채 일하러 나가고, 오후가 되면 아버지도 그 오천 원을 가지고 집을 나가요.
앞에도 말했지만, 소음을 견디는 방법은, 의미를 헤아리려 하지 말고 그저 무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의 비명소리나, 취객의 술주정소리는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만 매미 울음소리나, 경기장의 함성소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게 바로 그 이유 때문이죠. 이 간단한걸, 왜 그 전에는 미처 몰랐는지 원.

그날 새벽에, 아버지가 절 흔들어 깨웠어요. 잘 없었던 일이에요. 여태껏 제 방에 아버지가 들어온 적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거든요.
“나랑 어디 좀 가야겠다.”
라면서요. 아닌 게 아니라 시계를 보니 늦은 새벽이었습니다. 신문이나 우유가 집으로 배달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른 아침 직전의 새벽 말이죠. 정확한 시간이요? 시계바늘이 4였는지, 5였는지, 적어도 3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아버지의 눈은 잔뜩 충혈 되어 있었어요.
“뭘 좀 버리자.”
라고 변명하듯 말하고선 제 손을 잡고 끌었습니다. 손아귀 힘은 셌지만, 어째서인지 떨리고 있었어요. 아버지 말에 얼결에 고개를 끄덕인 뒤, 방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기다란 장식장의 유리문이 전부 깨져 있었고, 그 장식장 안에 있던, 어머니가 회사에 다니며 받았던 쇠로된 감사패의 한 귀퉁이가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아깝게도요. 그리고 바닥에 무언가가 뉘어져 있었는데, 저게…, 그러니까, 그…,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요. 아, 그러니까, 죄송해요, 잠시 만요.
아, 죄송해요. 잠시 머리가 아파서……. 제가 왜 그 이름을 까먹었을까요. 마루 한 켠에, 한쪽 귀퉁이가 일그러진 채 눕혀진 것은 스피커였어요.
처음 보는 스피커였습니다. 부모님은 도저히 음악 같은 것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로, 아마 거실구석이나 창고 한켠에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을 거예요. 어쩌면 이것이 밤마다 들리는 그 시끄러운 소음의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고요. 그걸 버리면 어쩌면,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벌써 나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한테도 준비를 하라는 듯 빤히 쳐다봤죠. 평소 입고 다니는 파카의 안주머니에 뭔가를 넣고 있는 듯, 품이 두툼했어요. 전 그걸 보곤, 옷을 차려입고 나왔어요. 장갑하고 모자까지 쓴 중무장이었죠.

스피커는 아버지 혼자 어깨에 걸치듯 들었습니다. 나는 뭘 하면 되냐고 묻자, 먼저 앞서가 다른 사람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죠. 대형쓰레기를 버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이 들어간다면서요? 짠돌이 같으니. 그래도 아버지인지라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일부러 계단으로 내려갔죠.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큰일이니까요. 저는 한두 층 앞서 걸어 내려갔죠. 사람이 보이면 재빨리 알려줘야 하니까요. 하지만 비틀거리며 주차장까지 겨우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운이 좋았죠. 아버지는 차 앞에 도착할 때까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스피커를 승용차 뒷좌석에 눕혀놓고 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 조수석의 문을 열었습니다. 빨리 안타고 뭐하냐는 듯 눈을 부라리면서요. 그렇게 안달할건 없잖아요. 조수석에 올라타려는데, 그때,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라요. 이번에 차를 타면, 다시 이 차를 탈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동이 걸리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그만, 뛰쳐나오듯 차에서 내렸어요. 아버지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죠. 두 눈은 여전히 시뻘갰어요. 잠시만 쉬었다 갈게요.

어머니가 귀를 파준 적이 있어요. ‘적이 있어요’라고 말한 것은 그게 너무 오래돼서, 대충 언제쯤이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에요. 어릴 적, 어머니가 귀를 파줄 때마다 저는 귀이개의 오목한 부분이 귀속을 긁어대는 그 소리를 견딜 수 없었어요. 아저씨도 알잖아요? 귀 속이 무너지는 듯한 무거운 소리요. 전 그게 너무 싫었어요. 간질거리는 듯 아픈, 특유의 감각보다 말예요. 고막 바로 앞에서 들리는 그 소리는 아무 가감 없이 고막을 때렸고, 그 고막의 흔들림은 뇌까지 뒤흔들어 놓는 것 같았어요. 과장하는 것 같다고요? 그래도 그 정도는 견딜 만 했죠. 어머니가 귀를 파주던 어느 날, 아버지의 발에 부딪힌 어머니는 귀이개로 제 귀를 찔렀고, 곧 귀에서 피가 흘렀어요. 그 뒤로 전 귀를 파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가끔씩 귀를 팔 때도, 저는 마음 단단히 먹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혼자서 귀를 파요. 알아요. 귀이개는 날카롭지는 않죠. 하지만 사람의 가장 깊고 연약한 곳을 찌르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그때 알았어요.

그날 얘기 계속 할게요. 도로를 달리며 아버지는 연신 백미러를 살폈습니다. 도로를 보는 시간보다 백미러를 보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어요. 밤중이라 도로에 차는 적어서, 당연히 우리 차선에도 차는 적었죠. 그러니까 적어도 아버지는 뒤의 차를 보러 백미러를 살피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때 전, 주머니 속에 넣어둔 지갑을 계속 만지작거렸어요. 출발하기 직전, 갑자기 지갑은 꼭 가지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그랬는지는 몰라요. 다시 주차장에 갔을 때, 아버지는 차 한켠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어요. 차 안이 아니라요. 제가 조수석에 타니, 그제야 운전석에 타더군요. 왜 그랬는지는 몰라요.
차안은 마치 바깥처럼 추웠어요. 게다가 시트에서는 재떨이를 닦은 걸레의 냄새가 났죠. 그래도 그것들은 참을 만 했어요. 하지만 뭣보다 참기 힘들었던 건, 발밑에서 들리는 높은 기계음이었어요. 아주 어릴 때 말고는 이 차를 타 본적이 없지만, 예전에는 아마 그런 소리가 안 나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어릴 때라도 그런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요. 소리는 과속방지턱이나 도로의 요철부분을 밞을 때, 언덕을 올라갈 때나 맞바람을 맞을 때 특히 더 커졌죠. 어떨 때는 스피커에 마이크를 가져다 대면 나는 공명음 같기도, 어떤 때는 유리병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 같기도 했으니까……. 아, 그렇네요. 이제 보니 그 소리는 언제나 들리던 그 소음과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귀를 파는 것이 아주 싫었다고, 앞서 얘기 했었나요. 덕분에 저는 한동안 귀를 파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한 일 년 반가량을 귀를 파지 않았었지요, 아마. 결국에는 귀속이 답답하고, 누군가에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어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귀이개를 귀로 쑤셔 넣었습니다. 귀를 팔 때 들리는 그 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왔죠. 두 귀라도 막고 싶었지만, 귀를 파는 중에 어디 그럴 수 있나요. 귀지는 마치 딱지처럼, 귀 속에 달라붙어 있었어요. 평소에는 귀지를 긁어내는 정도라면, 이번엔 돌을 캐내듯, 녹을 벗겨내듯 귀지를 떼어내야 했죠. 아팠습니다. 눈물 나게 아팠어요. 방문을 잠그고 숨듯이 그래야 했어요. 한창 파는 중에 누가 들어와 저를 건들이는건 싫으니까요. 겨우 귀지를 떼어냈다 생각해서, 귀이개를 들어보니 피가 묻어있더군요. 전 뭘 파고 있었던 걸까요? 씨발. 아, 죄송해요.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것도 지겨워서, 아버지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선산에 간다고, 백미러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곳에 묻혔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제가 모르는 아버지의 친척 하나가 죽어서 그곳에 묻힐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는 사람인지, 며칠 전 가묘를 파내고 관을 묻을 준비라거나 주변 벌초라든지를 거들었다나요.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귀찮은 스피커를 얼른 버려버리고 방에 누워 한숨 자고 싶었죠. 사실은, 거기까지 따라가고 싶지도 않았어요. 아버지의 충혈된 눈과 안주머니에 숨긴 것과 스피커가 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아마 절대 따라가지 않았을거에요.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를 약간 모자란 아이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건 자기표현을 안 한다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제 생각은 머리에, 감정은 가슴에 항상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요? 꼭 필요한 게 아니면 별로 말하고픈 마음도 안 들었어요. 왜냐하면, 부끄럽잖아요. 별로 바뀌는 것도 없고.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제가 생각이나, 감정이 약간 부족한 아이가 아닐까, 하구요. 아버지는 짜증을 냈고 어머니는 저를 동정했지만 필요이상의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소리만 들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평화로울까요. 뭐, 이젠 들리지 않지만요.

요즘은 가뜩이나 저한테서도 소리가 나서, 죽을 맛인데 말이에요. 모르긴 해도 아마, 뼈가 자라면서 나는 소리가 아닐까 해요. 그렇게 큰 소리도 아니고, 평소에는 크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밤에 잘 때에도, 뼈가 삐걱 이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죠. 성장 통은 많이 들어봤지만, 성장음(音)이 들린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었지만, 아마 맞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요즘 가뜩이나 제가 잡생각이 많아진 걸까요. 밖에서 나는 소리도 참을 수 없는데, 저한테서도 소리가 난다니요. 한때는 정말이지 제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가 신경 쓰여 견딜 수 없었지만, 요즘은 그냥 아무렇게나 살기로 했어요. 남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남과 비교를 해서 정상인지 아닌지 가늠할까요.

선산에 도착한 아버지는 트렁크에서 삽과 손전등, 노끈 한 뭉치를 던져줬어요. 삽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지만 삽날은 얼마 전에 갈아낸 듯 날카로웠고요. 산소에서 작업할 때 준비했던 것 아닐까요.
다행이었던 점은, 아버지 혼자 스피커를 둘러맨 채, 씩씩대며 산을 올랐다는 겁니다. 저는 단지 손전등으로 아버지 발밑을 비춰주며, 아버지 뒤를 따라가는 것만 하면 되었죠. 정작 제 발밑은 보이지 않았지만, 삽을 지팡이 삼아가며 겨우 오를 수 있었죠.
그런데 산을 올라가며, 간간히 아버지가 들쳐 맨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어요. 항상 집에서 듣던 그 소음이었죠. 그 소리는 집에서만 들리는 게 아니었던 걸까요. 차에서 들었던 소리는 그냥 닮은 소리였다 쳐도요.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듣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적어도 남들보다는 소리에 민감하다고 자부해왔기 때문에 잘못 들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확실히 들리는 소리에 아버지가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근데 지금 몇 시죠?
산소는 작았어요. 산의 땜빵자국처럼 산소는 산 중턱에 조그맣게 얹혀 있었죠. 그리고 그 중 하나의 묘는 파헤쳐져, 관 하나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놓고 있었습니다. 원래 시신이 묻히기 며칠 전에 묘는 파헤쳐지는 것일까요.
파헤쳐진 묘는 제법 깊어보였어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스피커를 아무데나 내팽개친 다음, 제가 들고 있던 삽을 뺏어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 가슴팍정도 오는 깊은 구덩이를, 아버지는 더욱 깊이 파내기 시작했죠. 이미 관 하나가 내려갈 충분한 깊이가 되었지만 아버지는 그 깊이가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았어요. 아저씨도 무슨 소린지 이제 알겠죠? 설마 아무도, 무덤 속 관 밑에 다른 무언가가 묻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할 테니까요. 설령 누가 의심하더라도 막 파헤칠만한 곳도 아니고요.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온 이유도 알 것 같았어요. 짐을 짊어지고, 땅을 파고 묻는 것은 혼자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이미 아버지 키 정도나 파헤쳐진 구덩이에서 흙을 퍼내는 것은 혼자로서는 아무래도 번거롭지 않겠어요?
흙은 부드러웠어요. 땅 표면의 이리저리 풀뿌리가 얽힌, 딱딱하게 굳은 땅이 아니라 삽날이 푹푹 박히는 붉은 흙이었어요. 그런 흙을 황토라 하나요? 적토? 어쨌든, 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땅을 계속 팠습니다. 파낸 흙은 여기 있던 빈 마대자루에 담아서, 노끈으로 감아올렸습니다. 흙이 담긴 자루를 퍼 올리는 건 제 몫이었죠. 너무 무거우면 제대로 올릴 수 없었습니다. 장갑을 가져가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러기를 몇 번 계속하자 땅은 훨씬 깊어져 있었습니다. 처음엔 아버지의 가슴깊이였던 구덩이가 어느새 정수리가 겨우 보일 정도까지 깊어졌으니까요. 슬슬 지치는데…….

입도 풀 겸, 잡 지식 하나 얘기할게요. 혹시  귀 속에는 달팽이관이라는 기관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달팽이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되었다는데, 과연 달팽이 껍질처럼 돌돌 말려있는 모양인가 보죠.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으면, 저는 곧잘 상상하곤 했어요. 소리가 제 귓바퀴를 따라 모여, 외이도를 지나 고막을 건들이면, 고막 안쪽에 매달려있는 귓속뼈가 그 소리를 증폭하고, 그리고 달팽이관 속을 빙글빙글 돌면서 소리를 뇌까지 전달하는 것이죠. 그래서 흔히들 큰소리를 들으면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고 하나 봐요. 소리가 달팽이관을 다 돌고, 그래도 그 기세를 멈추지 않고 뱅글뱅글 돌면 그 소리를 받아들이는 뇌도 따라서 뱅글뱅글 도는 걸까요. 그렇다면 계속 소리를 들어온 제 뇌도 달팽이관처럼 돌돌 말려있는 걸까요. 갑자기 왜 이런 얘길 하냐고요? 좀 있으면 나오거든요.

아버지가 열심히 땅을 파는 와중에도 스피커 소리는 계속 들려왔어요. 아니, 스피커소리 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마치 삽이 귀이개라도 되어 직접 내 귓속을 파고 있는 것처럼, 한번 삽이 땅에 박힐 때마다 제 머릿속도 같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어요. 천둥소리처럼 말예요. 싫어하는 소리 두 개가 한꺼번에 들리다 보니,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만약 뼛소리까지 들렸으면 어떻게 됐을지, 뭐 그건 그때 일이지만요. 어쨌든 그렇다고 마냥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죠. 조금이라도 무덤에서 퍼낸 흙을 꺼내는 일이 늦었다간 아버지가 스피커 소리보다 더 큰 소리를 질렀거든요. 별수 있나요. 그저 열심히 할 수밖에요.
드디어, 아버지가 삽질을 그만두었습니다. 적어도 귀를 파는 듯한 소리는 멈춰, 저는 약간이나마 한숨 돌렸죠. 가져온 노끈을 가장 가까운 나무에 묶고, 아버지가 그 끈을 잡고 더듬더듬 기어 나왔습니다. 계속 움직였으니 더울 법도 한데도 파카는 계속 입고 있는 채였죠. 안주머니는 여전히 두툼했고요. 삽을 팽개친 아버지는 저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스피커를 무덤가까지 질질 끌고 갔어요. 그러고는 발로 아무렇게나 굴려, 구덩이로 집어넣었어요. 스피커는 떨어졌죠. 그 소리는.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폭발했다고 해야 하나? 그때는 마치, 소리가 폭발이라도 한 것 같았어요. 네, 그게 가장 적절할 것 같네요. 어머니가 귀를 찌른 이야기를 했던가요? 일 년 반 된 귀지를 파다 피가 난 이야기는요?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아프고, 시끄럽고, 슬펐어요. 스피커가 무덤에 떨어지며 마지막 단말마라도 내지르는 것 같아서요.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그만, 잔디 위에 엎드려버리고 말았어요. 그런데 땅을 기며 아무리 끙끙 앓아도, 아버지는 저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왜 안돌아봤을까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을까요? 어쨌든 그때, 잠시 정신을 잃었어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제가 생각한 게 뭔 줄 아세요?

고유진동수라는 거예요. 그게 뭐냐고요? 일종의 약점 같은 거예요. 이를테면, 고유진동수에 맞게 진동을 주면 그 물체는 너무나 움직이고, 때로는 부서지기도 합니다. 이것을 공명현상이라 한 대요. 잠시 폰 좀 빌려 주실래요? 고마워요. 이거 검색 좀 해봐도 되죠?
음, 그러니까, 1940년 11월 7일의 일입니다. 미국에 있는 워싱턴 주의 터코마 해협에 놓인 현수교 다리가 무너진 적이 있습니다. 시속 190k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 된 터코마 다리는 애꿎게도, 풍속이 70km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우연히 바람의 진동수가 다리의 고유진동수와 정확히 일치했기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라네요.
쉽게 말하면, 저 다리의 한계점은 분명 시속 190km이었겠지만, 사실 약점은 바로 70km이었던 거죠. 50,60도 아닌 70이요. 저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소리 역시 고막을 흔드는, 하나의 진동이에요.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딱 맞는 소리가 있는지도 모르지요. 저는 우연히도 일찍, 그 소리를 접해 버렸는지도 모르고요. 자신에게 딱 맡는 소리를 들어버린 것만으로, 840m의 철 덩어리가 실뜨기 실처럼 출렁거리다, 끝내는 끊어져야 했던 터코마 다리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변명 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몰라요. 일어나니 산소 주변엔 아무도 없었어요. 팽개쳐진 삽도, 파헤쳐진 무덤도, 구석에 쌓여있는 흙더미도 그대로였지만 아버지만이 보이지 않았죠. 밤중의 산속, 게다가 무덤이라니, 제법 무섭더라고요. 어디있는거에요 아버지, 하고 말하려던 순간 뭔가 보였어요. 무언가가, 무덤 속에서 기어 올라오고 있었죠. 뭐였을 것 같아요? 기어 올라온 건, 지금껏 꼼짝없이 누워있던 그 스피커였어요. 귀퉁이가 찌그러져 있지도 않았고, 원래보다 조금 더 크긴 했지만 분명 그 스피커였어요. 까짓 그게 살아 움직이니, 이상하게 열 뻗치데요. 저는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데, 고작 묻히기 싫어서 움직이다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힘들게 가지고 올라왔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묻어야지요. 그리고 솔직히, 저도 나름의 화풀이를 하고 싶었어요. 아니, 화풀이랄까, 나에게 지금껏 가해온 소리를 한 번에 되갚는, 일종의 채무의 청산 같은 것 아녔을까요. 스피커가 완전히 올라오기 전에, 전 달려가 스피커 근처에 있던 삽을 주워들었어요. 스피커가 저를 붙잡았죠. 일단 손을 뿌리치고, 무덤으로 다시 밀었어요. 제법 깊었는지, 쿵 소리가 나던데요. 스피커는 계속 올라오려 했고, 저한테는 날이 잘 갈린 삽이 있었어요. 그 삽의 옆 날로 스피커를 내리쳤어요. 스피커는 의외로 딱딱했어요. 어머니의 감사패가 왜 찌그러져 있었는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데요. 때릴 때마다 제 손이 얼얼해서, 저는 다른 부드러운 데를 찾아야 했어요. 평소 다른 곳보다 부드러운 부위를 한군데 알고 있었죠. 저는 스피커의 둥근 부분에 삽날을 댔어요. 거기를 아마 진동판? 아마 그렇게 말할 거예요. 직접 고막을 본 적이 없지만, 아마 고막도 그렇게 생기지 않았을까요. 진동판에다 삽날을 갖다 대고, 찔러 넣었어요. 그때는 제가 스피커 귀청소라도 해주는 줄 알았어요. 마침 삽도 귀이개랑 비슷하고 말이죠. 시끄럽게 스피커가 계속 울어제끼더라구요. 짜증나서, 언제까지 그러나 싶어 계속 귓구멍을 헤집었어요. 마침 삽날에 걸리는 게 있어서 힘껏 뽑아보니 달팽이관이더라고요. 스피커가 아무 소리도 안 내기에, 안심하고 삽을 치웠어요. 올라오려던 중이었던지, 구멍에서 반쯤 몸을 걸치고 있던 스피커를 다시 구멍으로 돌려보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게 무덤 안을 보니까, 잠깐 물 좀 마실게요.

무덤 안에 스피커는 두 개였어요. 하나는 어디서 나온 건지 이상했지만, 거기까지 갈 때 워낙 소리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아버지가 저 몰래 두 개 가져온 건지도 모르죠. 전 신경 쓰지 않고 묻기로 했어요. 아버지가 스피커 하나만 빠듯하게 묻힐 정도로 땅을 팠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도 스피커 두 개가 들어가고도 충분할 만큼 구멍은 깊었습니다. 아니, 실은 딱 두 개를 묻을 작정이었던지 구멍이 딱 맞더라고요. 스피커들을 묻은 다음, 관이 들어올 자리를 정돈한 다음 무덤 밖으로 나왔어요.
일단 노끈이나 삽 같은 건, 내려오면서 가까운 나무들 사이에 던져버렸어요. 번거로웠거든요. 무덤 근처에 떨어져 있던 식칼도요. 결국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저를 놔두고 어디에 가신 걸까요. 산 아래 세워진 차는 그대로 있었는데 말이죠. 만약 세뱃돈을 그대로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면 저는 택시를 타고 오지 못했겠지요. 택시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려서,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이미 날은 완전히 밝아서, 어머니가 잔소리하지 않을까 걱정이었어요. 현관에는 어머니의 구두가 있어서 틀렸다 싶었죠. 그런데 어머니를 찾아봤지만, 어머니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어디에 가신 걸까요. 저는 애초에 집을 나올 때부터 현관에 어머니의 구두가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저는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 안은 조용하고, 편안했습니다. 무엇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역시 스피커가 문제였던 것일까요. 하품을 하고, 그제야 어젯밤 별로 못 잤던 걸 눈치 챘습니다. 아침이 밝았지만, 저는 지금부터라도 조금 눈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침대에 뛰어들 듯 누웠습니다. 몸이 실뜨기 실처럼 출렁거렸습니다. 그리고, 잤죠.

여기까지가 그날 있었던 일입니다. 더 해야 할 말 있나요?

 

 

 

 

 

●제33회 계명문화상 소설부문 가작(2) - 수상소감

 

 

중학교 이 학년 때 수행평가 과제가 소설 쓰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되지도 않는 글들을 아무렇게나 쓴 것 같은데, 선생님에겐 제법 과하게 칭찬을 들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별것 아닐 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면 막연하게 무언가를 해나가는 데에는 충분한 계기가 아닌가 한다. 그렇게 중고등학교를 글 쓰는 것에 대해 생각만 해오다가, 대학에 오니 기가 팍 죽었다. 중고등학교 때 좀 쓴다는 소리를 못들은 사람이 없었다. 소설은 쓰면 쓸수록 힘들고 내 성에 안찼다. 소설보다 쓰기 힘든 글은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소감문을 적으라니, 소감문이 훨씬 더 쓰기 힘들다. 소감문을 처음 적어서 그런걸 수도 있겠지만. 그냥 평범하게 감사하다, 아직 부족하다, 더 정진하겠다, 모두 누구의 덕이다, 라 적고 치워버리기엔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라 꺼려진다. 저렇게 생각 안 한다는 게 아니라, 당연한 말이라 적기 싫다는 말이다.

소설을 내고도, 너무 성에 안차는 글이라 입상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제목이 언급될 정도만 되어서, 강평내용이나 몇 자 달리면 더 바랄게 없었다. 지금은 기쁘다는 마음보다 좋지 않은 글로 당선되었다는 부끄러움뿐이다. 이 부끄럼을 잊지 않고, 다음에 또 소감문을 쓸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부끄럽지 않도록 더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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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모든 존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에게,  ‘어머니와 나’ 오늘도 밥은 제때 먹었는지, 수업에서 ‘예시’를 들어 쉽게 설명했는지 물으시는 아빠께 툴툴거렸다. 당신 딸의 나이가 별로 실감나지 않으시는 눈치다. 사실, 저 안에 담긴 아빠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 놓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나 같은 학생들이 많으리라. 이 책은 어느 이름 모를 여사님의 일상 목소리를 기록한 것이다. 대화의 상대이자, 책의 저자인 김성우는 바로 그녀의 아들. 70대 초반쯤 되셨을 법한 여사님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상황-거창한 시대적 사건부터 천 원에 산 감자 이야기까지-에 대한 단상들을 꾸밈없는 잔잔한 언어로 들려준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다 보면 모든 이야기가 편편이 분절된 것이 아닌, 세월만큼 깊어진 그녀의 너그러운 지혜로 꿰어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한 여인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구술사이자 그녀의 에세이요,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철학서인 것이다. 문학과 철학의 언어는 때로 우리에게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는 별 관련 없는, 재주 많은 이들의 영역인양 느껴지기도 한다. 리터러시 연구자로서 문자 자체에 대한 이해력을 넘어 삶이 스며있는 소통에 대해 이야기 해 온 저자는 “나의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