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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8호 독자마당] 우리는 표현하고 있는가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스물두 살의 나는 ‘평생 내가 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또,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스물여섯의 나는 ‘여전히 갈망하고 있는 것’ 이라고 답할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무엇으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우리는 조달 받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받은 만큼 표현하고 있는가.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꼭 한 가지 특성과 성질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같은 사랑이라 할지라도 전달의 과정, 무게와 의미부터 형태까지 모든 것들이 각각의 결론이 되어 남겨지고 떠나간다. 깊고도 여린 그 감정의 깊이를 헤아리는 일은 표현이 서툰 이에게는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일이 될 뿐이다. 남녀 간의 설렘이 사랑의 전부인 줄 알았던 무렵, 그것은 아무리 손을 뻗어 내밀어도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거나, 미안한 사람에게 사과는 빠르면서 가까이 있는 소중한 이들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너무도 무심하게.


청명한 가을날 곱게 자란 감나무의 감도 달게 익지 못할 것 같은 차갑고 냉철한 성격은 경상도 집안의 내력으로부터라는 꼬리말을 핑계로 삼았다. 그 무엇이 나를 어려운 사람으로 만들었나. 간질하고 뭉클한 감정들을 무수히 글로는 다루면서 말로는 전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꽤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자꾸만 마주하게 되는 것이 친구들의 손 인사 뒤로 아른거리는 늘어난 부모님의 눈가 주름이라든가, 저무는 해를 등진 두 분의 늘어진 팔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날카로운 종이에만 온기를 불어 넣는 일이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느꼈다.


지금 표현하지 않으면 나중은 없다. 미루고 미루다 데드라인에 맞추어 마음 졸이며 날려 써야 했던 초등학교 3학년짜리의 겨울방학 일기 숙제 같은 것이라면 늦은 김에 조금 더 미뤄 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적어도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쉬이 고개 돌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존재를 통하여 생겨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우리는 더 익숙해져야 한다. 


사회에서 형성된 집단의 일부에서, 자식 같은 강아지에게서, 재회한 연인에게서, 이성 간의 만남에서, 집 떠나보낸 자식에게서, 혹은 오래된 물건이나 쌓아 놓은 지난 물건에게서. 위대하고 어려운 사랑의 성질은 무수하지만 분명한 것은 날것 그대로의 표현은 어떠한 사이를 더욱 견고하고 살갑게 만든다. 다시금 나를, 그리고 당신을 살아가게 할 것이다. 또 일어나게 할 것이다. 가슴 미어지게도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이. 마음들을 꺼내어 온전히 전했던 순간들이. 


사랑은 사랑이다. 단지 그것일 뿐이다. 마음이 소리 내는 일이고, 진심으로부터 기원 되는 믿음이다. 우리는 전하고 있는가. 표현하고 있는가. 또 어제처럼 망설이다 몰래 숨겨두고 있지만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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