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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9호 독자마당] 눈 먼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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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주로 택시를 이용한다. 자주 이용하는 만큼이나 불쾌한 일도 적지 않았다.

본인은 생물학적으로 여자이며 평균적으로도 키가 작고 체구도 작은 사람이다. 평소에도 몸이 자주 아파 부득이 강의를 듣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잦다. 이 때 주로 택시를 이용하는데, 간혹 독특한 택시 탑승기가 생겨나기도 한다.

며칠 전, 막 점심이 지날 즈음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 갑자기 찾아온 멀미를 참지 못하고 버스에서 내려 게워내고 말았다. 그 후 나는 택시를 멈춰 세웠다. 나는 “-로 빨리 가 주세요. 조금 아파서요”라고 말했고, 택시 기사님은 그러겠다 말했다. “그럴 거면 반대쪽에서 타지”와 같은 이야기도 했지만, 이런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본 이야기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기사님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 “몸이 많이 아프냐” 같은 질문에 힘겹게 대답했다. 결국 “죄송합니다. 속이 안 좋아서요”라고 대답하자 비로소 이야기가 끝났다. 그 뒤로는 아파트 단지 앞까지 데려다주셨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이건 나름대로 괜찮은 경우였다. 몇 달 전에 탔던 택시는 이보다 더했다.

계속 학교 바깥의 화단 근처에 누워 있던 나는 같은 과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택시를 잡았다. “-로 부탁드립니다” “예” 그렇게 대화는 끝나고 잠시 속을 가라앉힐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 기사님도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남자친구?” “아니요” 그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야 있지만,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썸을 탄다던가 하는 관계도 아니었고, 그저 도움을 주기 위해 잠시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준 친구다. “그럼 곧 사귀나?” “아닙니다” 집요했다. 남의 관계에 심하게 부담을 주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대로 내가 입을 다물자, 택시 기사님도 잠시 동안은 조용했다. 하지만 다시 입을 열었다. “많이 아파?” 그렇게 보였으면 되도록 말을 걸지 않는 게 좋지 않은가. 대답하기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네”라고 답했다. 곧바로 “병원에 가야 되는 건 아니고?” 라는 답변이 돌아와서, “아뇨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가 계속해서 오갔다.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고 나서야 말을 걸지 않았다. 진즉에 대화를 멈춰 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가 작고 말 걸기가 쉬워 보이는 어린 여자라서 더 그런지는 모르겠다. 혹자는 그럴 때는 당연히 “속이 안 좋으니 이야기 그만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어야지, 하고 다그친다.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상태가 좋지 않았고, 겨우내 대답한 말도 한마디 쥐어짜낸 말이었다. 불필요한 대화는 필요치 않고, 불쾌한 기색이 있다면 말 걸지 않는 게 도리다. 아무리 택시 기사의 서비스 정신이라 해도, 대화하는 일이 기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대화가 힘든 게 뻔히 보이는 상대에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것은 친절이 아니다. 그것은 ‘눈 먼 친절’일 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는 ‘청자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행동이 아무리 친절을 의도한 것일지라도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항상 걱정해야 한다. 진심이 진심으로 전해지는 과정은 이토록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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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디어 대한 맹신, 시민의 능동적 참여로 극복해야 미디어가 부모나 교사의 역할을 일정 부분 대체한 지 오래다. 부모에 안겨 스마트폰 영상을 응시하는 아이의 눈길과 강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휴대폰으로 해결하려는 학생들의 손놀림을 보면 어쩌면 상상하는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이제 미디어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의존하는 미디어는 세상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우리를 끊임없이 교육시킨다. 이로 인해 이용하는 미디어 채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되고, 유사한 신념과 가치체계로 이어진다. 그래서 보수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인식은 보수적 생각으로 이어지고, 진보적인 사람은 자신과 유사한 성격의 매체 이용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면서 사유의 편식은 더욱 강화되고, 자신이 이용하는 미디어가 현실이 되고 진리처럼 받들어진다. 하지만 미디어가 다루는 현실은 지속적으로 중재되고 가공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내용에는 미디어 조직의 이윤이나 정치 권력적 욕망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되고 주관적 해석과정이 관여한다. 동일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서도 매체마다 바라보는 대상이 다르고 설명이 차별적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