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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5층석탑의 미학

오늘날 백제의 탑은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과 익산 왕궁리9층석탑이 남아있다. 후자는 복원하기 위해 해체돼 있어 지금 볼 수 있는 탑은 정림사탑 밖에 없다. 이 탑은 미륵사탑 이후에 만든 것으로 추정해 왔으나 최근 미륵사탑이 해체되면서 오히려 미륵사탑보다 더 오래된 탑으로 확인되었다.

이 탑은 7세기 초반의 작품으로 한국 정형 석탑의 시원이 되는 탑으로서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국보 9호). 이 탑은 백제계 탑의 일반적 형식인 낮은 단층기단의 5층탑으로서 이후 만들어지는 백제계 탑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백제 멸망 후 당의 소정방이 ‘당의 백제 정벌 기념탑’이라는 글귀를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이탑은 법당(혹은 목탑)의 형식을 석탑으로 표현한 최초의 탑으로서 한국 석탑의 여러 가지 전형을 세웠다. 기단부와 탑신의 몸돌에 갓기둥과 안기둥을 새겨 법당의 기둥을 형상화 했고, 배흘림기법을 표현하여 독특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아래로 층급을 주어 법당의 부연과 서까래를 연상케 했으며, 네 모서리를 살짝 치켜 올려 날아 가는듯한 상승감을 주었다. 우리나라 특유의 창조적 모형이다. 전체적으로 장중함보다는 우아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어 백제인들의 예술적 감각과 닮았다.

탑의 아름다움은 흔히 안정감과 축소비율에 따른 상승효과로 나타난다. 그래서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의 비례, 지붕돌과 몸돌의 비례, 상하층 기단의 비례 등을 수학적 공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탑은 그런 비례를 갖추고 있지 않다. 좁고 낮은 단층기단, 넓은 지붕돌에 비해 위로 갈수록 좁고 작아지는 몸돌은 안정감을 해치고 있다. 그런데도 이 탑은 아름답게 보인다. 탑 앞에 서면 가슴이 설레고 아득해진다. 아름다움은 직관적이어서 공식화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신라계 탑이 장중함을 뽐낸다면 백제계 탑은 단아하면서 세련되고 다소곳하다. 탑에 기대 앉아 천사백년 전 백제 장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반추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