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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12시, 청소년들의 로그아웃

셧다운제 과연 효율적인가?


지난 4월 29일 오랜 논란이었던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에는 만 16세미만 청소년들의 게임이용을 0시부터 6시까지 강제적으로 차단하는 ‘셧다운제’가 포함되어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제기되었으나 실효성 논란, 기본권 침해의 위헌성, 산업발달의 저해, 구체적 시행령 미비 등의 많은 문제점들로 인해 법제화되지 못했던 셧다운제는 2010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 두 부처 수장들의 밀실협약을 통해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연령기준을 ‘16세 미만’으로 합의하며 갑작스럽게 추진, 통과되었다. 협의된 나이기준인 ‘16세 미만’은 그동안 그 어떠한 청소년 정책의 법률적 기준에 존재하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향간에는 양부처간 원하는 나이를 더해 반으로 나눈 것이라는 조롱이 난무하다) 극적인 협의와 신속한 입법절차가 추진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 여성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전환, 내놓을 카드는 ‘출산’과 ‘셧다운제’?
2010년 여성부는 여성가족부로 전환됐다. 출산장려 정책 외에 제시할 카드가 부족했던 여가부는 모든 청소년 정책을 ‘가족화’하며 ‘청소년 보호’ 라는 이름으로 일원화하고 있다. 다양한 관점에서 청소년들의 자율적인 활동을 진흥하기 위한 전문 정책, 청소년 복지 향상을 위한 토대는 마련되지 않고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건전하고 바르게 자라나는 청소년’을 위한 학부모 관점의 정책들만 생산하고 있다.

특히, 통합된 이후 언론보도에서 자극적인 사건들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자 서둘러 내놓은 법안이 바로 ‘셧다운제’이다. (사족이지만 90년대에는 일본만화가, 2000년대에는 영화가, 이제는 게임이 청소년 범죄의 원인으로 몰리고 있다.) 게임이 문제라면 게임을 못하게 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추진된 법안답게 규제만 존재할 뿐 범위도, 대책도, 구체적인 규칙 및 시행방법에 대한 그 어떠한 협의도 진행된 바가 없고 심지어 법률적 이해도 떨어져 입법절차를 밟기도 전에 위헌성,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빗발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입법학회에서는 자녀가 게임을 하고 있는 학부모 1000명, 게임을 하는 청소년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셧다운제가 시행되어도 94.4%의 청소년들이 인터넷 활동을 계속 하겠다고 답한 결과를 발표하며 셧다운제에 대한 실효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 설문조사 중, 자녀의 게임이용 지도에 필요한 것에 대한 질문에는 학부모의 2.4%만이 ‘자녀의 게임이용에 대해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다’ 라고 답했을 뿐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스스로 직접관리’(38.2%), ‘게임에 대한 이해’(30.6%), ‘지도방법 학습’(27.6%)순으로 대답했다. 청소년의 80.8%는 ‘스스로 관리하는 방법’이 가장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미 대형 포털사이트 등에는 셧다운제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문의가 가득하고, 많은 청소년들은 이미 도용 가능한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으니 셧다운제는 게임이용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입법추진 전부터 제기된 실효성 논란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고, 심지어 태국, 베트남, 중국에서조차 많은 문제점들을 야기해 폐기된 정책을 고스란히 다시 가져다 쓰는 셧다운제에 많은 청소년, 학부모,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비판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여가부는 고집불통이다.

■ 청소년 보호법인가 문화표현규제를 위한 제2의 국가 보안법인가?
요즘, 80년대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금지곡 처분을 받은 명반들이 재 주목을 받고, 금지사유들이 예능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97년 미성년자 보호법에서 청소년 보호법으로 바뀌면서 그간 국가보안법에서 문화적 표현물을 규제하기 위해 쓴 ‘이념통제’의 잣대는 ‘청소년 보호’로 바뀌며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규제를 넘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방식의 규제로 확장되었다. 문화매체에 대해 각각의 매체별 등급위원회에서 해왔던 일들을 이중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더 강력한 법적장치인 셈이다.

청소년들의 삶과 인권, 문화와 교육, 복지가 아닌 유해 매체에 대한 감시와 규제로 가득한 청소년 보호법의 ‘청소년 보호’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모든 출발은 ‘청소년들은 미성숙하다’의 전제로 시작한다. 청소년들은 아직 어리고, 서툴고, 미숙하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능력이 부족하다는 이 위험한 전제는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의 제정 과정에서부터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의견을 배제시키고 있으며 스스로의 권리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다. 청소년들의 삶과 행동을 국가와 부모가 통제하고 감시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셧다운제는 이러한 ‘어른들의 불편한’ 시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정작 당사자들과 단 한차례의 공청회도 진행하지 않고 수많은 반대에도 강행된 비민주적 법안이다.

또한, 청소년들의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며 행복추구권이라는 기본권과 학부모의 자녀교육권, 게임 개발자들의 직업선택의 자유, 또한 국내외 게임업계간, 온라인게임과 콘솔게임간의 불평등한 규제 등 위헌적 요소가 너무나 많은 위험한 법안이기도 하다.

■ 목적은 사라지고, 산업은 죽이는 셧다운제, 게임 과몰입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은 게임에 관련한 독립된 법안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그럼에도 진흥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규제는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하고 있다. 양부처간 힘겨루기 사이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접근 및 결정권들을 박탈당하고 정작 중요한 청소년 복지, 문화정책 사업들은 뒤로 밀려나고 있다. 셧다운제가 일사천리로 통과되는 동안 학원비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내용의 법안은 또 다시 연기되었고, 여전히 청소년 문화정책은 부재하다. 또한 게임은 유비쿼터스 시대에 국위선양의 첨단 문화산업에서 모든 청소년 범죄의 원인인 유해 산업으로 낙인찍혔다.

혹자들은 게임사들이 셧다운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게임 사업에 타격을 받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전체 연령게임을 제외하고 게임이용을 위해서 이미 주민등록번호를 받아왔던 대형게임사들의 타격은 미미하다. 오히려 전체이용가 게임서비스로 이메일 입력만을 통해 가입절차를 간소화했던 개인개발자들이나 중소개발업체들은 개인정보관리를 위해 서버를 증강하고 보안시스템을 강화해야 함으로 위기에 몰리게 되어 게임시장의 양극화를 가속시키고, 개인정보관리에 대한 위험도만 증가시킬 뿐이다.

게임 과몰입 관련하여 게임업계에서 자성적인 노력들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피로도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 게임 과몰입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들이 요구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은 게임을 제공하는 게임회사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 가정과 학교에서 통합된 미디어교육과, 게임이용에 대한 다양한 연구, 그리고 게임 외에도 풍부한 청소년 문화활동, 여가활동들을 생산하며 함께 논의해야 하는 문제이다.

청소년 정책은 청소년들의 삶을 통제하는 것이 아닌 삶 전반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와 적극적인 관심에 의해서 제안되어야 한다. 차단시키고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고 적합한 이용의 모델을 제안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2011년 8월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은 청소년들에 의해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논의될 것이다. 청소년들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고 강제하는 셧다운제가 아닌, 청소년들의 발랄하고 재기넘치는 삶의 자유를 위한 청소년 정책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그들의 손에서 다시 쓰여지게 될 청소년 정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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