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선교사의 보고서에 의하면 대구 동산병원의 첫 제왕절개 분만은 1909년 6월 27일에 시행됐다고 한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지금은 제왕절개 분만이 너무 많이 쉽게 시행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 가정에서 분만을 했으므로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속수무책으로 산모가 목숨을 잃은 사례가 많았다. 제왕절개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제왕이란 단어가 들어 있기 때문에(Caesarean = 시저, 제왕), 제왕절개(Caesarean Section)라 표기 하는데 실제로 ‘시저’가 제왕 수술로 태어났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라틴어 표기로 세자레(Caesare)는 자르다 수술하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수술로 분만하게 될 때 Caesarean 이란 말을 쓰게 되었다는 말도 그럴 듯 하다.현재 우리나라 제왕절개 분만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는 사실은 신문 지상을 통해 발표되고 있으므로 잘 알려져 있다. 보건당국과 의료계 내에서도 제왕절개 분만의 빈도를 낮추어 보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쓰고 있지만 좀처럼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옛날에는, 말이 옛날이지 30년 전만 해도 가정 분만이
초기의 동산병원은 병원 이름조차 불교식 용어인 제중원으로, 또 그전에는 미국약방으로 불리고 있었다. 초대 동산병원장인 존슨 의사(Dr. Woodbrige O. Johnson)가 대구에 오기전에 선교사 부해리(Mr. Bruen)는 미리 대구에 1899년 10월 26일 도착하여 대구시 남성로 구 제일교회 자리에 있던 선교기지 내 조그만 한옥을 개조하느라 약 10일간 일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초기 병원은 병원 형태라기보다 조그만 진료소에 불과했다. 그해 7월 약품은 주문한 대로 이미 대구에 도착한 상태였다. 동산병원의 정확한 개원일은 확실하게 기록된 바 없다. ‘로즈’의 기록에 의하면 ‘진료소는 크리스마스 직전에 문을 열었다’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동산병원 개원일은 백준기 병원장 시절 임의로 10월 1일로 정하고 지금도 그날을 개원일로 잡고 기념하고 있다. ‘동산’이란 말의 어원은 지금 찾을 길이 없다. 꽃동산 처럼 조그만 언덕이라는 뜻이거나, 동쪽의 산이라는 뜻이 있을 듯 하지만 현재 남산교회가 있는 곳을 남쪽으로 본다면 서산이 되어야지 동산이라고 하기 어렵다. 본래 동산병원의 땅은 무연고자의 묘지가 있던 공동묘지 자리였고, 일부 연못과 채소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