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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는 일이 대저 그러하듯, 민주주의도 웃지 못할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옛날 그리스에서 처음 시행할 때 그 스타일이 다양했다. 특히 이상한 경우가 스파르타이다. 이들의 정치집회에서는 투표를 하지 않고 가장 크게 고함치는 쪽이 결정권을 가졌다. 소수파일지라도 우렁찬 소리로 악을 쓰는 편이 이기니, 협의와 토의가 설 자리가 없었다. 이것은 물론 다른 도시국가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이것이 전제주의인지 민주주의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긴 민주주의의 종가인 아테네도 문제가 많았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마시게 한 것은 두고두고 민중의 지성과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근거가 됐다. 돈이 탐나서 평상심을 잃은 아테네 사람들이 시실리섬의 부자 나라 시라큐스에 쳐들어가 노략질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두 번에 걸쳐 감행한 대거 침략에서 괴멸적 타격을 입고 원정군은 전멸했다.

이런 불상사들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아왔다. 이슬람의 사상가 알 파라비는 타락한 정치체제 가운데 민주주의가 그래도 제일 ‘덜 나쁜’ 체제라 했다. 후안무치의 퇴폐를 대량생산하는 체제이지만 자유를 극대화하고 고매한 인사도 배출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의회(1295)가 현대민주주의의 효시라고 하나, 주로 귀족과 대지주가 왕권을 견제하기 위함이었지 일반 민중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 귀족원은 귀족과 성직자의 모임이었고 하원도 큰 부자들의 모임이었다. 한 사람의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구 전체가 단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의 유권자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은 놀랍다. 예컨대 프랑스혁명이 난지 4년 후(1793) 영국하원의 3백 6명이 전체 유권자 1백 60명에 의해 선출되었으니 민중과는 별 관계가 없는 특권 부유층의 모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참정권의 확대가 대세가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갓 참정권의 확대가 민주주의 사회의 발전이 될 수 없음을 헤겔이 비판한 것은 그 시대를 앞서가는 탁견이다. 그의 생애 마지막 정치논설 ‘영국선거법 개혁안’은 영국사회의 전통적 특권이 어떻게 일반 국민의 빈곤과 고통을 가중시켜왔고, 식민지 아일랜드인에게는 종교적 억압과 착취까지 더해져서 비인도성(非人道性)의 극치를 갔던 것을 깊이 밝혀내고 있다. 그는 물론 참정권의 확대를 환영했다. 그러나 무산대중이 정치공동체에 실세로서 참여하지 못하는 한, 그리고 사회생활 자체에 구체적 개선을 가지고 오지 못하는 한, 참정권은 공허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으며 소외와 무관심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선거법개혁안에 대한 그의 깊은 의구심은 영국사회의 구조와 상황에 대한 그의 라디칼한 부정에서 온다. 한마디로 ‘영국에서는 거대한 부(富)와 비참한 빈곤의 대비가 너무나 크다’

모든 철학자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마르크스에 비견할만한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던 헤겔은 영국사회에 대하여 많은 취재 기록을 남겼다. 그는 식량가격과 농지임대료가 세 배나 오르는 동안 농업노동자의 수입이 전혀 오르지 않았고, 빈민은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했고, 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교도에게서 십일조를 걷어 영국국교를 지원하게 하는 등, 그대로 두면 폭력혁명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깊이 꿰뚫어 보고 있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 영국은 헤겔이 제기한 문제들을 척결해 나가서 큰 유혈혁명 없이 상당히 합리적인 현대사회를 만드는 일에 성공했다.

헤겔은 시민사회의 한계 즉 빈곤의 문제를 깊이 파악했으나, 그 궁극적 해결은 끝내 제시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의 해결책이 파산하고 나서 우리는 헤겔의 딜레마에 되돌아가 있다. 국가재정에 의한 구휼도 시민의 자발적 자선행위도 가난한 사람의 자존심을 살려주지 못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종교의 구원마저 잃어버린 낙오자가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온 세상에 늘어나고 있는 오늘, 그래도 제일 잘 나가고 있는 한국이 무엇을 해야 할까? 투표권 없는 사람도 두 개의 핵심문제를 생각한다. 그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꾸어온 남북의 해빙 기조를 살려, 대 민족화해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나아갈 지도자가 누구인가. 이들 가운데 누가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낙오자의 수를 꾸준히 줄여 갈 수 있는가. 이것이 핵심문제이고 나머지는 잔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조 5백년의 지배 이데올로기 유교에 세뇌되어 있는 우리는 명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성질이 있다. 선거전 마지막 한 주일에 표의 향방이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우리가 냉정한 이해득실의 타산보다는 순진한 정서와 감정으로 대사를 결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물론 좋은 성질들이므로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인불효(不仁不孝)하나 치세용병(治世用兵)의 기술이 있는 자’가 빛을 보고 실력 발휘하기는 어려운 지적, 정서적 환경에 우리가 있음을 새삼 생각한다.

비록 중용(中庸)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절충과 타협의 길을 함께 찾는 것이 민주주의의 길일 것이다. 인간적 매력과 치세의 기술을 불완전하게나마 두루 갖춘 원만한 인사가 지도자로 뽑힐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핏대를 올리며 고함치는 한국의 스파르타 사람들을 비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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