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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 유리 피라미드 얘기를 꺼냈더니 비판의 화살이 날아왔다. 외우(畏友) 안세권 교수가 필자가 급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탐미적 도피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물었다. 나름대로 현실을 말했으나 너무 우원(迂遠)했던가 보다.

나는 대구의 교외 무태에서 태어나 두 주도 되기 전에 중국 장춘으로 데려가져서 크다가 해방 일년 전에 귀국했다. 어린 나의 눈에 고국의 모든 것이 너무 작아 실망했다. 내 속을 본 어머니는 나를 고려대학의 전신 보성전문학교로 데리고 갔다. 인가가 거의 없는 곳에 넓은 소나무 숲을 뚫고 하늘로 치솟은 화강암 석탑 도서관을 보았을 때 받은 감동을 요즈음 젊은이에게 전할 길이 없다.

일제가 지은 경성제국대학, 미국인 선교사들이 지은 연희전문, 이화전문보다도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보성전문이 훨씬 더 우람하고 패기에 넘쳐 있다는 사실이 큰 자긍심을 심어줬다. 인촌 김성수 선생은 나의 영웅이 됐다. 학교, 신전, 사찰 같은 건물은 정신의 표상이고 의지의 발현이며 미래 프로젝트의 선언이기도 하다.

40년 전 계명대학 캠퍼스를 처음 봤을 때 인상 깊었다. 미국의 작은 인문대학의 교육철학이 잘 나타나 있는 것에 애착이 갔다. 그 후 계명대는 엄청나게 커져 국제규모의 종합대학이 됐다. 얼마 전 성서의 새 캠퍼스를 찾았을 때, 깨끗한 교정과 붉은 벽돌로 단장된 많은 건물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느꼈다. 박물관, 한학촌은 도약하는 대학의 이상과 포부를 담고 있었다.

대구의 상징이 무엇일까. 아마도 팔공산과 달성공원이 꼽힐 듯한데, 산은 대구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므로 자랑거리라 할 수 없고, 달성공원을 꼽자니 너무 초라하고 약소하여 말을 꺼내기도 민망하다.

대구가 낙후한 원인은 여러 가지로 복잡하나, 가장 큰 요인은 주력 산업인 방직공업을 후발 산업 국가들에게 뺐긴 때문이다. 수성구의 부동산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도시 전체의 침체를 극복하는 데에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 토박이들이 도심의 작은 규모의 재산을 한사코 놓지 않으니 큰 규모의 도시계획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결국 하이테크와 부가가치 높은 산업으로의 전환밖에 달리 길이 없고, 이에 걸맞은 새 도시를 교외에 발전시키는 수밖에 없다. 대학이 그 중심이 된다면 물론 금상첨화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경북대학이다. 현재의 캠퍼스를 일부 정리하여 교외로 옮기거나 다른 대학과 통합을 추진 중이라는 소문이 있다. 대규모의 건물 증축이 있을 가능성이 큰데, 경북대가 옛날 보성전문이 했던 것처럼 다시 도약하는 대구의 상징물을 지을 수 있을까? 나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경북대와 여러모로 비교가 되는 서울대학의 관악 캠퍼스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인사 여러분의 진노를 기꺼이 받기로 하고 고언을 드리면, 보수적 관료주의, 민주적 하향 평준화, 평등적 나눠먹기, 향토애를 내세운 집단 이기주의, 촌스러운 애국심이 총동원 되어 관악 캠퍼스의 복제품을 대구에 세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만에 하나 새 건물 증축의 마스터플랜을 국제현상설계로 정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큰 쇼크-기쁨의 쇼크-를 받아 쓰러질 것이다.

그러면 경북대학이 하지 못할 일을 계명대학이 해낼 수 있을까? 무에서 큰 학교를 일구어 낸 그 역사를 생각할 때 오히려 그 가능성이 클 수 있다.

한국이 초고속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전 세계의 찬탄과 부러움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품위와 격조를 높이지 못하고 있는 것, 이것이 문제다. 여의도의 63빌딩이 상징하는 졸부의 행진을 더 이상 염려할 것 없다. 영종도 공항에서 뜨는 고공비행도 그동안 이룬 관성으로 순항할 것이다.

이제 연간 소득 2만불 3만불 하는 유치한 얘기 좀 거두고, 발상 전환하여 다른 차원으로 날아오를 상상력의 날개를 펼 때가 왔다. 나의 안태(安胎) 고향 대구가 새로운 비상의 시발점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계명대학이 대구를 대표하는 새로운 상징물을 우리에게 선보일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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