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제 3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작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을 읽고

삶은 무엇인가? 또한 죽음은 무엇인가? 이 둘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나는 늘 내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걱정하고, 마음을 졸이곤 했다. 친구들이 오늘 즐거운 여행을 떠올릴 때, 나는 어느 순간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위험상황부터 떠올려 버리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삶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많은 친지들의 죽음을 목격해 왔고, 긴장감은 두려움으로 두려움은 공포로 그 크기와 강도를 더해 갔다. ‘이건 아니다. 무언가 잊고 살아가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안고 있던 문제의 실체는 좀처럼 나타나 주지 않았다. 이 책은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그림자 같은 그것’의 형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평화’가 깃든 상태에서의 죽음을 인식하라는 것이었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이란 바로 이런 깨달음을 얻는 삶을 뜻하는 것이리라.

저자인 ‘크리스틴 롱가커’는 결혼 초 남편이 급성 백혈병을 앓게 됨으로써 그와 함께한 고통, 사랑과 대화로 충만한 간호, 그리고 사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해준다. 그 이후 그녀는 전 생애를 통해, 죽음을 앞에 두고 고통 중에 있는 많은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총 3부에 걸쳐 평안한 가운데서 맞이하는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점차 죽음에 대한 이해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죽음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적절한 준비와 대처는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했던 그녀였기에 더욱 절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음을 저만치 멀리 두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결코 많지 않은 나이에 그러한 고통의 시간을 경험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죽음에 직면하게 될 때, 절망만이 아닌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라는 그녀의 말이, 내게 구원의 메시지처럼 들렸다.

저자는 삶과 죽음에 있어서의 과제를 네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고통의 이해와 승화. 둘째는 치유적 관계 맺기와 놓아주기. 셋째는 죽음을 준비하기. 넷째는 삶의 의미 찾기이다. 그녀가 네 가지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과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 죽음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고통과 괴로움이다. 그것은 환자만의 고통과 괴로움뿐만 아니라, 모든 주변인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포함한다. 고통 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고통의 벽은 결코 누구라도, 어떤 식으로라도, 무너뜨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더욱 더 굳센 벽을 만들어가고, 스스로의 감옥에서 걸어 나오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본인의 경험으로 감옥에서 나올 탈출구를 알게 되었고,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들을 그 어두운 울타리 안으로부터 구출해 내고 싶었고, 남은 시간을 기꺼이 헌신하는 삶으로 살아갈 것을 택했다. 언제나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최고인 줄은 누구나 알지만, 막상 닥친 괴로움 앞에서 사랑하는 이를 돕고 자신을 추스르는 법을 알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치유적 관계 맺기’와 ‘놓아주기’를 제시한다. 정작 괴로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과정이다. 죽어가는 과정에 따른 불필요한 괴로움을 어떻게 덜어주어야 할까? 그것이 치유적인 관계 맺기이다.

떠나는 이의 고통은 말할 수도 없겠지만, 사랑하는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죽음은 더 없이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그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여기서 ‘맺는다’라는 의미는 단지 엮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맺음은 풀어버림으로도 맺어질 수 있고, 털어버림으로도 맺어질 수 있는 것이다. 화해와 화합과 결합과 교감의 모든 개념을 아우르는 의미에서의 ‘맺기’, 정말 예쁜 말이지 않은가!

자신의 괴로움과 타인의 괴로움에 대처할 수 있다면, 괴로움 속에서 긍정적인 방향을 모색해 나갈 수 있다면, 후에 닥칠 죽음에 대해서도 편안해 질 수 있을까?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많은 이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부분이 바로 ‘놓아주기’의 어려움이다. 놓기 힘들어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감정들…… 이 책을 읽어내려 가면서 미련과 집착이 이러한 괴로움의 근본 원인임을 알게 되자 조금씩 희망의 길이 보이는 듯 했다.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죽음을 향한 가족들의 여정’이라고 표현해 놓은 부분에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렇다. 그렇게 쉽지 않은 먼 여행길이 될 것이다. 그러함 속에서도 불현듯 다가올 죽음을 이질적이지 않은 느낌의 ‘여정’으로 표현함으로써, 이 책은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해, 또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편안하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세 번째 단계인 죽음을 준비하는 단계를 건너 마지막 과제인 삶 속에서 의미 찾기의 단계로 넘어가면, 이 과제들이 비단 죽음에 직면해 있는 이와 주변인들에게만 필요한 과제가 아니라, ‘지금 숨이 붙어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과제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죽음의 언급을 통해
우리는 매 순간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그로 인해 살아가야 할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는 딸,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하는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서 그 동안의 모든 단절과 침묵을 한꺼번에 허물고 껴안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맺어진 관계인가. 그렇게 보내서야 되겠는가. 안 된다. 그리하여 나오는 것이 이러한 관계의 중간자적 역할을 하는 호스피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간호제공자의 대부분이 배우자, 혹은 자녀나 며느리임을 볼 때, 이러한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전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뿐이다.

호스피스는 위에서 언급한 ‘맺기’, 좀 더 능동적인 의미로 ‘맺어주기’의 능력을 가진 이들이다. 서로 다른 표현의 침묵의 언어를 하나로 모아서 통하게 해주는 통역자이기도 하고, 그 충만한 감정들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전달자이기도 하고, 못 다한 대화를 들어 줄 친구이기도 하다. 이런 호스피스의 활동이 널리 알려져야 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책에서는 호스피스를 특정한 직업으로 볼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이러한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물질적으로 기술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이긴 하지만, 그 만큼 잃어버린 것이 많은 오늘이다. 의학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목숨까지 돈으로 좌지우지되는 시점에서 생명의 존귀함마저 잃어버린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전 세계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우리는 앞으로 맞이할 새 생명보다 보내야 할 아까운 생명들이 더욱 많은 사회가 될 것이다. 누구든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죽음이고,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의 과정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들을 보듬어 줄 의무뿐만 아니라, 영혼을 맑게 해줄, 그래서 순수하고 꾸밈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의무도 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하고 살라는 것이 아니었다. 인생에 대한 더 넓은 안목을 가지고, 삶과 사랑하는 이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로 인해 보다 의미 있는 삶을 가꾸어 나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나이 드신 어머니, 아버지를 가깝거나 먼 훗날, 보내드려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편치 않은 시간을 보냈던 삶. 그나마 그것의 긍정적인 면은 하루하루 어머니, 아버지, 나에게 후회 없는 삶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긍정적 효과보다는 괴로움으로 인한 고통이 더욱 컸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이 던져준 네 가지 과제 및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았던 영적수행등의 조언으로 내가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는 것에 대해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의도대로라면 그녀는 나를 ‘평안’의 상태로 인도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우리와 항상 함께하는 동반자라는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 그 동반자를 어떤 식으로 맞을지는 앞으로 내가 새로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책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캄캄한 밤’이었던 내 영혼의 그늘을, 맑은 해로 비추어주니 조금은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느낌이다. 우리 모두가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들로부터 의미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 가치 있고 소중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원한다.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마다 소중한 우리들의 사람임을, 그 사람들이 살아있음을 감사해야지. 끝으로 이 책 속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를 보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당신은 세 가지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원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당신의 삶이 그것에 의존해야 함을 알기에
그것을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꼭 껴안으며,
그것을 떠나보내야 하는 때가 오면
떠나보낼 줄 아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