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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편지] 아무개 현모양처(賢母良妻) 되게 하소서

<1>
어제 몇몇 친구들과 함께 10년 전에 돌아가신 선생님의 산소에 11번째로 참배를 했습니다. 돌아오다가 팔공산 뒤에 꽁꽁 숨어있는 어느 아름다운 산골에 들렀는데, 산에 들판에 꽃이 하도나 곱게 피었기에 십년 전에 지은 시를 거듭 읊으면서 삼년 만에 대취(大醉)를 했습니다.


이 봄에 가신 님께 여쭈옵노니/ 당신이 가시고도 봄이 옵니까/ 아니면 가셨기에 봄이 옵니까/ 눈부시게 푸르런 산과 들판에/ 들꽃은 또 속절없이 곱기만 한데/ 당신이 가시고도 그러합니까/ 아니면 가셨기에 그러합니까.// 이 봄에 가신 님께 여쭈옵노니/ 당신이 가셨기에 그러하다면/ 당신이 봄이 되는 것이겠지요/ 눈부시게 푸르런 산과 들판에/ 들꽃은 또 야속케도 곱기만 한데/ 당신이 가시고도 그러하다면/ 슬픔이 봄이 되는 것이겠지요.


취하고 읊을 때는 정말 좋았으나, 취하고 난 다음 날은 숟가락도 까딱, 하기가 싫어서 밥도 못 먹고 오월 하늘만 망연자실(茫然自失) 쳐다보고 있는데, 바로 그 시퍼런 하늘 속에서 쯧, 쯧, 쯧, 하고 혀 차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우리 선생님이 굽어보고 계시다가 한심해서 혀 차는 소리입니다.

<2>
99년 봄에 자네를 처음 만나 물었을 때,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장래의 꿈이라고 대답했었다. 나는 그때 자네의 이 생뚱한(?) 대답에서 정말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이 디지털시대에 아직도 우리나라에 현모양처를 꿈꾸는 처녀가 남아있다니?


그로부터 4년 뒤 졸업을 앞두고 다시 자네에게 물었을 때, 그 때도 자네는 현모양처가 되겠다는 꿈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때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이 경박한 시대에 경박의 첨단을 걷고 있는 대학에서 4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보내고도, 아직도 현모양처 타령이라니?


그런데 머지않아 현모양처가 될 자네가 올해 봄에 선생님이 되더니, 이 푸른 오월에, 오월보다 더 푸른 월급을 받아, 오월보다 훨씬 더 화사한 넥타이를 보내왔구나. 너무나도 곱고 화사하여 검고 뚱뚱한 내 얼굴과는 절묘한 부조화를 이룰지도 모르지만, 그렇거나 말거나 마르고 닳도록 매고 또 매마. 마르고 닳도록 줄기차게 매면서, “아무개 현모양처 되게 하소서 !”, 맬 때마다 이렇게 기원을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