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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편지] 바람에 무엇을 날렸으면 좋겠노?

적어도 나에게 남해도는 거제도나 강화도와는 크게 구별되는 각별한 섬이지. 왜 그러냐고? 그것이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몰라도 공부라는 것을 하기 위하여 내가 고향 떠나 이리저리 떠돌다가, 역시 바로 그 공부라는 것을 하기 위하여 환상적인 섬 남해도를 떠나왔던 한 사내를 만났기 때문이지. 솟구치는 젊음을 돌로 눌러 죽이며 ‘no more than’과 ‘not more than’, ‘no less than’과 ‘not less than’의 그 미묘하고도 심각한 차이를 함께 외우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설사 자네를 버려두고 혼자서 훌쩍 찾아간다 하더라도 내가 남해도에 가는 것은 자네의 고향으로 달려가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미 여러 번에 걸쳐 자네도 모르게 자네의 고향엘 다녀왔었네. 심지어는 신혼여행 때도 변변한 여인숙조차 하나도 없었던 남해도로 달려가 집채같이 불어오는 바람, 길길이 날뛰는 파도 앞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오래도록 오들오들 떨었다네.


오들, 오들, 오들오들, 오들오들오들오들, 오들오들 떨다가, 남해 금산 앞 상주 해수욕장에 단 하나 있던 구멍가게 아저씨께 특별히 부탁하여 라면을 끓여 먹고 돌아왔다네. 오오, 그리하여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절대로 탈색되지 않을 추억, 그것도 총천연색 추억 !


그런데 이번에 25년 근속 끝에 5일간의 특별 휴가를 받은 자네의 길벗으로 남해에 가서 또다시 총천연색 추억을 쌓고 돌아왔으니, 앞으로의 나의 남해(南海) 행(行)이 어찌 각별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그러므로 나는, 날이 저물기 전에 아름다운 고향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줘야겠다는, 고향에 대한 신앙적인 차원의 사명감이 빚은 너무나도 급박한 마음으로 인하여 지족마을에서 봉화마을까지 자동차의 사이드 브레이크도 풀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달려갔던 사나이, 도저히 감동되지 않을 수가 없는 놀라운 절경임에도 불구하고 감동하지 않는다고 실로 맹렬하게 섭섭해 하던 그 열정적인 사나이와 함께 그의 고향으로 다시 한번 가고 싶어. 그리하여 마침내 30년을 근무하여 열흘간의 휴가를 받게 될 때는 미조 가는 길의 치자꽃 향기 같은 그 바람 속으로 흰 머리칼 날리며 달려가서 그 거대한 후박나무 밑에서 너를 만나도 참 좋으리.


아아, 그러나 흰, 머리, 카락, 마저 다 빠지고 없는 사내는 바람에 무엇을 날렸으면 좋겠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