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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쥰이 오래 사는 집'

창작과 사상을 통해 새로운 미래 그리고 창작정신 이어가는 곳

2001년 하순 경 시작된 백남준미술관 건립사업은 부지의 선정과 3차에 걸친 작품 구입, 비디오 아카이브즈의 확보를 통해서 구체화되었다. 2006년 3월 실시설계가 완료되면서 백남준미술관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백남준은 2차 작품구입을 위한 서명을 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손으로 미술관이 들어설 부지 도면에 “백남쥰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적어 넣었다.


건립사업이 시작되고 담당자가 되어 백남준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현대미술의 상징적인 존재로 보아오던 백남준의 또 다른 모습을 읽을 수가 있었다. 백남준의 예술 세계는 인간과 과학, 개인과 사회, 그리고 본능과 이성이 뒤섞여 엮어지는 아주 독특한 자신만의 코드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유연성과 미래에 대한 예지력은 인류가 추구해온 다방면(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의 성과와 업적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백남준의 작품세계에서는 작가이기 이전에 한 사상가로서 끝없이 정보를 생산하고 그 정보들을 통해서 자신의 표현세계를 미술에 있어서 새로운 도전과 모험 속에 던져온 삶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느낄 수 있다.


백남준이 사용하는 언어의 유희와 사고방법은 간명하고 독특하다. 정확한 현상의 분석과 다양하고 잡스러울 정도로 해박한 지식, 사상과 사회 현상이나 과학의 진보, 지리학, 민속학 등 여러 분야를 꿰뚫는 창의적이며 날카로운 해석이 결합된 그의 언어에는 끝없는 반전과 극단적인 지점들의 일시적인 와해 그리고 여러 가지 함의들이 내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백남준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서 끊임없이 이러한 창조적인 작업과 언행으로 미술계를 이끌어 왔다. 60년대부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모니터로 형상화되고 비디오라고 지칭되는 하나의 매체를 예술의 영역에 포함을 시켰다. 그리고 그 작업에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거기에는 편견에 도전하는 자신의 삶이 담겨져 있으며 진화하고 성장하는 새로운 의식들이 담겨 있다. 시공을 가로지르는 투명한 생각들이 살아 숨쉰다. 전자매체를 통해서 허상과 실상, 그리고 동양과 서양, 제법 잘 알려진 사상가들의 허를 찌르는 명쾌함, 거대자본의 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그의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다. 그래서 백남준의 작업들은 솔직하고 분명하다. 과들카넬 레퀴엠, 바이바이 키플링, 굿모닝 미스터 오웰, 글로벌 그루브와 같은 작업들은 백남준의 이러한 사상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세계의 작가들이 그가 꿈꾸고 명명해온 그릇을 빌려서 자신들의 집을 만들고 세상을 노래한다. 우리가 비디오 아트라고 명명한 그 우산 속에서 인간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과 미학적인 탐색이 이루어지고 스스로 진화하기 위한 다양한 언어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가 처음 비디오 작업을 시작한지 30여년을 지나는 지금 스케치 북과 캔버스가 비디오와 전자매체의 화면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은 그가 추구해온 예술세계가 갖는 의미를 새삼 느끼게 한다. 역사 속의 숱한 거장들은 항상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간다. 그들은 그 사회가 만들어 내는 숱한 것들 속에서 핵심을 걸러내고 자신의 행위를 통해 동시대의 시대정신을 압축하고 실현해 낸다. 그들은 그 시대의 질적 변화를 수반하는 가치를 생산한다. 백남준은 이러한 역사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미술관이 작가들의 창작과 사상, 그들의 삶을 미래를 위해서 갈무리하고 수습해 두는 곳이라면 백남준이 스스로 명명한 “백남쥰이 오래사는 집”은 무엇을 갈무리하고 무엇을 수습해야 할 것인가. 백남준미술관은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이나 백남준 개인의 작품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곳만은 아니다. 작가가 추구하고 실천해온 정신을 이어가는 시간의 통로이자 그것을 음미하고 즐기는 전환의 공간이라고 볼 때, 백남준 미술관은 새로운 문명의 전환기에서 핵심 주제들을 하나의 선언으로 세상에 던졌던 그의 창작과 사상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창작정신을 이어가는 곳일 것이다. 거기에는 그의 땀과 열정이 숨쉬어야 하고 그리고 플럭서스를 통해서 추구했던 그의 정신과 커뮤니케이션과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미술의 영역을 확장한 그의 작품들 그리고 그의 사생활과 삶의 소품들이 그의 사상과 함께 놓여 있어야 한다. 그곳을 통해서 생동하는 실험과 도전, 다른 한편으로 놀이판을 만들어가는 백남준의 후예들이 육성되고 그들을 세계의 중심으로 네트워크 시킬 수 있을 것이다.


1만 여 평의 부지에 건평 1천6백50 여 평의 연면적을 갖는 5층 규모의 건물로 지어지는 백남준미술관은 이를 위해서 백남준 작품의 특성과 현대 미술의 다양한 경향을 수용하기 위해 공간의 설계를 가변성이 높게 설계하였다. 특히 퍼포먼스를 발표하기 위한 다목적 공간, 비디오 아카이브즈 연구를 위한 별도의 연구공간을 설계에 반영하였다. 특히 백남준의 40년간의 작업결과인 2천3백여개의 비디오 테이프로 구성되는 비디오 아카이브즈는 백남준의 창작 세계를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이 일대에 경기도 박물관, 어린이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박물관이 포함된 5만 여 평의 공간을 뮤지엄 파크를 조성하기 위한 별도의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장기적으로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창작 스튜디오와 백남준 예술세계를 연구하기 위한 부설기관들을 설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백남준 생전에 미술관이 완성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그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부지런하게 작업을 했다. 해외의 저명한 평론가들과 연구자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전후의 불확실한 시대를 거슬러 투명한 세계를 꿈꾸고 끊임없이 자신의 사상과 의식을 비디오 매체에 불어넣은,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걸음을 걸어간 그의 투혼과 정신에 대한 경의이다.
그것이 비단 전통적인 미학과 아름다움에 대한 저항이었든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추구한 것이었든 간에 말이다. 그가 명명한 세계는 우리들 곁으로 왔다. 고인이 되신 지금 백남준의 사상과 창작세계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 되었다. 그것을 이어가고 꽃 피우는 것은 순전히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백남준미술관은 그 몫을 해내기 위한 징검다리이며 마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