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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학술 총결산] 2006년 학술계는 숨고르기의 한해였다

원로급 학자들이 논쟁적인 문제 제기해 386침체현상 두드러져

2006년 학술계는 2005년이나 그 이전 해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한 해였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인지라 2004, 2005년이 워낙 사회적 문제와 맞물려 학계가 돌아갔기 때문에 올해는 숨고르기의 한해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전반적으로 특징을 뽑아내라면 여전히 역사분야가 이슈를 많이 내놓았다는 것, 황우석 여파로 과학사회학적 분석들이 몇몇 제출되었고 관련 학술대회가 열렸다는 것, 연구윤리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백낙청, 김우창, 최장집, 안병직 등 원로급 학자들이 논쟁적인 문제를 제기해 이른바 386 침체현상이 학계에서도 유별나게 두드러졌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듯하다.

<인문과학 >

2006년 내내 담론의 주도권은 역사 분야가 쥐고 있었다. 그것은 올 2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전2권, 책세상)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책이 나왔을 때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운동권을 넘어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읽혀왔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전6권)의 ‘낡은’ 역사인식을 교정하겠다는 야심찬 저작이었다. 이영훈, 박지향, 김철, 김영호 등 보수적 필진들이 지난 30년간 발표된 논문 가운데 해방공간을 잘 분석했다고 생각되는 논문들을 골라서 재수록한 이 책은 사실 새롭게 씌어진 게 아니라 있던 내용을 포장만 새롭게 해서 내놓은 것이었다.

이 책의 중요한 포인트는 필진 중에 한국사 전공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한국사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언론의 대서특필과 필진들의 인터뷰를 놓고 동네에서 떠드는 소리로 여기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무시할 만한 것은 또 아니었다. 새로운 사료와 관점으로 해석된 역사상은 기존 정통 좌파의 역사상과 본질적으로 부딪히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교수신문에서 문제적 논문 4편을 뽑아 그 반대되는 사람들에게 논평을 받고, 다시 반론을 받아서 논쟁을 시도했다는 점, ‘역사비평’, ‘내일을 여는 역사’ 등 역사전문 계간지들에서 정식 서평을 통해 담론화를 시도했다는 것은 해방전후사가 한국의 정치 및 사회, 경제의 기원을 이루는 중요한 시기이며 이런 시기에 대한 인식론적 합의가 없다는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나타내준다.

철학 분야도 간간이 화제성 논문과 책이 나와 소규모 논쟁지형이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정대현 이화여대 교수가 자신의 철학인생을 마무리하는 ‘다원주의 시대와 대안적 가치’(이화여대출판부)를 펴냈고, 이에 대한 윤평중 교수의 서평에 이어진 반론과 재반론이다. 이 논쟁의 핵심은 ‘다원주의’ 시대의 실천적 가치란 무엇인가, 자유와 평등 같은 개념이 근본적 개념인가 아니면 수단적 개념인가였다.

그 외에 동양철학계에서는 기존 철학을 재해석하려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됐다. 한자경 이화여대 교수가 지난해 다산 정약용을 비판해 파란을 일으킨 여세를 몰아 이번에는 성리학의 빅브라더라 할 수 있는 주희의 철학을 전혀 새롭게 해석했다. 여기서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긴 힘들지만, 한 교수는 주희의 미발(未發)은 단순히 마음이 발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인간 마음의 활동성을 일상적 의식보다 더 심층의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한 주희의 흔적이며 이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성리학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명제는 허튼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변을 펼쳤다. 조남호 평화대학원대 교수는 퇴계 이황을 재해석했는데, 당쟁과 연결되어서 시끄러운 싸움의 빌미만 준 것 아니냐는 사단칠정론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버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황이 ‘사단칠정론’에 매달린 이유가 그것이 “삶 속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마음이나 감정의 분류학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단칠정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가져온 개념이 바로 ‘리발설’이라고 정리한다.

그 외에 양명학의 대종주로 인식되어온 왕양명에 대한 편중을 벗어나 그와 동시대에 양명학의 또 다른 중요한 철학을 기초한 담약수의 철학을 본격 소개한 김영민 서울대 교수의 논문도 눈길을 끌었다.

서양철학계는 한나 아렌트 1백주년을 맞아 한해 내내 그의 인간중심 철학에 대한 재조명 바람이 불었다. 그간 번역되지 않았던 역작들도 선보였는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은 브라질에서 체포되어 독일로 이송된 악명높은 나치전범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아렌트 특유의 시각에서 정리한 책이다. 수만명의 유태인을 죽이고도 나는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정교한 자기변명을 펼친 그를 통해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 명제를 도출시키는 과정은 매우 드라마틱하다.

약간 현대로 넘어오면 요즘 유행하는 들뢰즈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우선 독일학자 레만이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이해가 왜곡된 측면이 강하다는 비판이 박찬국 서울대 교수에 의해 한 학회지에 소개되면서 관심이 고조된 상황이었는데, 박치완 한국외대 교수가 들뢰즈 철학은 결국 플라톤과 공모한 이데아주의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어떤 점에서 공모인가. 이데아를 밀어낸 권좌에 ‘시뮬라크르’를 앉혔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모든 사회,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도덕적 금욕을 요구하는 플라톤 식의 유토피아가, 각자 절제하기 힘든 개인적 욕망을 자유방사하는 그런 무정부주의적인 디스토피아로 전락한 게 아닐까” 라며 들뢰즈와 들뢰지언들을 공박했다. 차이가 일반화된 시대에 ‘차이’를 계속 주장하는 비현실적 철학 감각이 불편하다는 박 교수의 심정적 토로는 앞의 정대현-윤평중 토론과 관련하여 읽어보면서 과연 요즘 철학의 화두인 ‘차이’라는 게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숙고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철학과 역사에 비해 문학 분야는 다소 조용했다. 다만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외친 이후 이를 둘러싼 평단의 찬반 양론이 벌어졌고, 최근 초현실주의를 뺨치게 시를 어렵게 쓰는 신진시인들의 시를 둘러싸고 이를 ‘신서정’이라는 권혁웅 등의 미래파 평론가들과 시적 전망이 불투명한 것을 과대포장해서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평론가들이 맞서는 일이 있었던 것 정도다. 문단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 있었는데 창작과비평이 창간 4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행사를 했다는 것, 한국문학의 산실 중의 하나였던 민음사 40주년도 문화계에 얘깃거리를 제공하면서 두 대형 출판사의 향후 행보가 어떻게 이어져야 마땅한 것인지에 대한 주문이 나오기도 했다.

<사회과학 >

정치, 경제, 사회학 분야에서는 백낙청과 최장집의 대립이 가장 빅 이슈였다. 그리고 안병직을 필두로 한 뉴 라이트 자유주의 세력의 경제교과서 다시 쓰기가 계속 언론의 주목을 끌며 이어졌고, 해외파 경제학 교수들이 주장하는 국민경제 위기론을 두고 정건화 한신대 교수가 반박을 가하면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 후반기로 갈수록 모든 이슈들이 한미FTA라는 블랙홀 속으로 흡수통합되면서 3일에 한번꼴로 학계의 관련 학술대회, 토론회, 계간지의 특집, 일간지의 대담 등이 이어졌다. 학계의 주장은 대체로 반대론이 우세했는데 ‘녹색평론’ 같은 생태학적 잡지는 한미FTA가 한국 농업에 가져올 악영향을 분석해 내놓았으며, ‘문화과학’ 등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확산을 다시 경계했고, ‘역사비평’, ‘창작과비평’, ‘동향과 전망’ 등의 사회과학 잡지들은 종합적인 측면에서 왜 한미FTA가 위험한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서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등 중진원로들을 초청해 창립 5주년 기획강연을 실시했는데, 여기서 한국사회의 위기의 징후, 그 본질,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한 큰 그림들이 그려졌다. 특히 백낙청 교수의 분단체제 극복 및 한반도 통일 우선론과 최장집 교수의 한국사회의 계층적 균열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극복 우선론이 맞서면서 지식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 몇 년간 간헐적으로 터졌던 박정희 시대 재해석 논쟁도 올해 재점화되어 교수신문에서 진행되었다. 지난해 박정희 시대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과 비판론자들이 그 시기 임금지급 변동율을 놓고 경제학적인 논쟁을 벌였다면, 올해에는 정치권으로 바통이 넘어왔다. 논쟁은 ‘한국의 정치변동’(김영명, 을유문화사)에 대한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비판적 서평에서 비롯되었다.

박태균 서울대 교수가 펴낸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창비)의 서평을 쓴 김봉중 전남대 교수와 저자 사이에 또 논쟁이 붙었다. 쟁점은 한미관계가 초기의 일방적 원조에서 민주적 대등관계로 발전해왔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무리한 개입과 한국의 부적절한 대응 때문에 마찰이 있었음에도, 한마디로 한미관계를 규정할 수 없다는 ‘복잡성’을 강조했고, 김봉중 교수는 그러한 다양한 한미관계도 중요하지만 보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역사가의 시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문했다. 이는 박태균 교수가 최근 미국 측 사료를 활용하며 한국사를 재해석해온 측면에서 살펴볼 때 과연 그런 실증만으로는, 좀더 폭넓은 종합과 안목 제시 없이 자료를 통한 새로운 역사적 현실의 국지전적인 제시만으로는 기존의 완고한 역사의식을 흔들어놓을 수 없고, 학계에 지적 자극을 주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자연과학 >

자연과학 분야는 나노과학이 비교적 두각을 나타냈다. 하창식 부산대 교수가 연구한 ‘하이브리드형 나노 기공 구조재료의 신규 합성법’은 쌀알 하나에 아파트 수백채를 짓는 것과 같은 고밀도 기술로 주목을 받았으며, 홍승훈 서울대 교수는 기존의 반도체 시설을 이용해 탄소 나노(Nano)튜브와 나노선 소자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데 성공해 네이처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또 유사한 재료과학 분야에서 콘크리트의 재료적, 역학적 특성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온 김진근 한국과학기술원 교수가 콘크리트의 균열 제어를 위한 평가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콘크리트는 내구력은 우수하지만 인장에 약해 균열이 항상 문제가 돼 왔는데 김 교수는 이 균열이 외부의 힘이 가해져 발생한다기보다 그 재료적 성질에 균열 이유가 포함돼 있다고 밝혀 좀더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 외에 장축 고압 실린더 내면의 내마모 코팅기술 개발의 공로로 한국기계연구원 재료기술연구소 표면기술연구센터 권식철 박사가 2월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 첨단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관련 산업기계의 사용조건이 고온·고압의 악조건 환경으로 확대 활용되면서 내마모 코팅기술의 중요성이 한층 더 중요시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눈에 띄는 연구성과인 것이다.

한편 과학연구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에 주목한 메타과학적 논문 가운데 물리학 분야의 논문을 인용할 때 정치적 배경이 작용한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밝힌 강민구 씨의 논문이 ‘한국사회학’지에 실려 눈길을 끌었고, 박희제 경희대 교수는 과학의 상업화가 대학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와 달리 국가가 과학상업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분석한 ‘과학의 상업화와 공공부문연구의 변화’를 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과학사회학자인 김환석 국민대 교수가 그간 작성한 이 분야 논문을 모은 ‘과학사회학의 쟁점들’(문학과지성사)을 펴냈는데, 오늘날 과학기술사회학의 전반적 흐름을 사회적 구성주의 접근을 중심으로 다뤘고, 제2부에서는 STS와 과학사회학의 관점을 과학 기술의 윤리 및 민주화라는 실천적 문제에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보여줘 과학에 비판적 관심을 가진 대학생들에게는 필독서로 추천할 만하다.




[사설] 왜 읽고 생각하고 쓰고 토론해야 하는가? 읽는다는 것은 모든 공부의 시작이다. 지식의 습득은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식 정보를 수집해 핵심 가치를 파악하고 새로운 지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창출해 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읽기다. 각 대학들이 철학, 역사, 문학, 음악, 미술 같은 인문·예술적 소양이 없으면 창의적인 인재가 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고전과 명저 읽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교과 과정으로 끌어들여 왔다. 고전과 명저란 역사와 세월을 통해 걸러진 책들이며, 그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저자의 세계관으로 풀어낸,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하는 정신의 등대 역할을 하는 것이 고전과 명저라 할 수 있다. 각 기업들도 신입사원을 뽑는 데 있어서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에세이와 작품집을 제출하는 등의 특별 전형을 통해 면접만으로 인재를 선발하거나, 인문학책을 토대로 지원자들 간의 토론 또는 면접관과의 토론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등 어느 때보다 인문과 예술적 소양을 중시하고 있다. 심지어 인문학과 예술을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