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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개그, B급 정서를 지켜라

이 시대 아저씨들의 마지막 자존심, 아재개그

‘아재개그’는 오래전부터 있어 온 수수께끼 또는 넌센스 퀴즈의 연장이다. 한때는 허무개그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어느 지상파 방송사 코미디 프로그램의 코너명으로 소개된 이래 뭔가 싱겁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쓸 데 없는 소리 잘 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이 ‘아재’들이 하는 우스갯소리를 총칭(總稱) 한다.

누가 ‘아재’인가? 전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자, 식당에서 물수건으로 얼굴과 목덜미를 닦는 자, 카페에서 커피 한 모금 후 어김없이 ‘어~’ 하는 감탄사를 뱉어내는 자, 화장실에서 볼 일 보며 방귀를 대수롭지 않게 뀌는 자, 공공장소에서 막무가내로 떠들어대는 자는 필시 아저씨들이다. 이처럼 이 시대의 아저씨는 문명이나 문화와는 거리가 먼 단순, 무식, 이기적 존재들이다.

아저씨들은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나라를 세우고 처자식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국가와 가족을 위해 월남전이나 중동사막 행을 서슴치 않았던 대한의 남아들이었다. 먹고사는 것이 급선무인 상황에서 그들의 기여는 가족으로부터도, 사회나 국가로부터도 온전히 인정받았고, 일상에 지친 그들이 한 잔 술 끝에 보여주는 무례나 몰상식은 그러려니 하고 용서받을 수 있었다.

20세기 말을 지나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아저씨들의 가부장적 문화는 거부되기 일쑤였고 그들이 유일하게 지닌 노동 자본은 ‘돈’의 자본 앞에서 무참히 쓰러졌다. 가정 내에서는 물론 사회 내에서 그들은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를 배회하기도 했고, 너무나 경쟁적인 한국 사회에서 그들 대부분은 불안정하고 낮은 임금의 일자리마저도 쉽게 얻지 못하는 루저(loser)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어떤 사소한 권력마저도 소유하지 못하고 밥만 축내는 삼식(三食)이가 되었다. 또 왜 각종 사고와 암(癌)은 이들을 그냥 지나쳐가지 않는지! 보통 B급이라 하면 뭔가 싸구려 느낌이 나는, 아마추어 같은, 비주류적인, 주변부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정서(情緖)에 A급, B급이 어디 있겠는가. 천부적인 권리를 타고난 각자의 느낌과 감정은 그것 자체로 독보적이며 고귀한 것인데 계급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다. 만약 B급 정서가 대세라면 그것이 오히려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B급 정서는 우리를 편안하게 해 준다. A급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최고의 정점이고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차지하는 면류관을 의미하지만 B급은 실패와 좌절을 밥 먹듯 하는 보통의 인간들의 일상이고 삶이다. 그래서 B급 정서는 언제나 불완전하며 허점투성이인 나약한 존재들이 지닌 정서를 일컫는다.

아재,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호칭이라지만 아저씨보다는 정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아재들이 하는 개그란 단세포적이고 다분히 언어유희적일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단순하여 오래 생각하면 오히려 답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너무 진지하게 접근하거나 과학적인 지식체계에 의존해서도 안 된다. 답을 들으면 허무해진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질문 속에 포함된 개그성을 잘 포착해야 한다.

이 시대는 이런 모습을 지닌 아재들의 모습에 좀 더 열광한다. 순수한 건지 바보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아재들은 타인에게 까칠하기는커녕 오히려 칠칠맞다. 경계심보다는 친근감으로 다가온다. 어눌한 말투에 촌스러운 옷차림, 기껏 한다는 농담은 그저 황당, 허무, 말장난 수준이다.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한편, 이 시대의 아재들은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가족으로부터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무시의 대상이다. 그래서 이들은 인정(認定)에 목말라한다. 호네트(A. Honneth)의 설명을 빌리자면 인간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자아실현감을 갖게 된다. 결국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 인간의 행동을 잘 관찰해보면 모두가 인정받기 위한 욕구이다. 인간의 욕구를 자연적 욕구와 사회적 욕구로 구분할 때 사회적 욕구 모두는 인정을 위한 욕구다. 옷을 잘 꾸며 입는 것도, 좋은 차를 타는 것도, 남 앞에서 연설을 잘 하는 것도 모두가 타인으로부터 내가 우월하다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다.

청년의 시대를 지나 중년으로 접어든 이들은 신체의 사이클에서 하향곡선 어디쯤에 놓여 있고, 경제적 생산능력 또한 최고점을 한참이나 지나서 살아가는 고달픈 인생들이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노화되었고, 경제적으로 빈곤하며, 정치적으로 무력하고, 문화적으로 천박한 존재들이다.

회사에서 부장님이 부하직원들에게 하는 아재개그, 이런 소소한 우스갯소리로 모두 한 번 웃고 갈 수 있다면, 부하직원들이 ‘헐~’하는 모습에 부장님이 한 순간 우쭐해질 수 있다면 이 유치찬란한 개그도 쓸모 있는 대화가 된다. 혹시 주위 아재들이 자못 심각한 얼굴로 질문을 던져온다면 정답을 알아도 짐짓 모른 체 하자. 아재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는 차원에서 말이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