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 분야는 행동이다.” 비폭력 저항운동의 상징인 마하트마 간디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엄청난 땅 인도를 식민의 족쇄에서 풀어낸 그의 일생은 행동으로 이어져 있다. 굶기, 집 짓기, 실 잣기, 비료 만들기, 가축 기르기, 환자 돌보기 등 그는 입술이 아니라 맨발로 자신의 이상을 만들어 보였다. 그의 이러한 행위에 대한 비판도 없지는 않다. ‘간디가 가난하게 사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고 한 이도 있지만, 그 의미는 민중의 잠자는 의식을 일깨우는 종소리였다는 점에서 찾아야 마땅할 것이다. 간디가 행동으로 보인 절정의 사건은 소금 행진이었다. 영국 정부는 식민지에 대한 탄압과 착취의 수단으로 소금에다 세금을 부과하면서 인도인 누구도 소금을 만들 수 없도록 했다. 참을 수 없었던 간디는 1930년 3월 12일 바다를 향해 아메다바드를 떠났다. “소금법을 어기고 기꺼이 처벌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수만 명이 될 것이다.”간디의 이 소금 한줌을 얻기 위한 행진을 식민 통치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제풀에 지쳐 시들 것이라고 여겨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행진이 진행될수록 무리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나이, 신앙, 출신이
팝 음악인들의 칭송을 한몸에 받고 있는 아티스트 중 하나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노래를 만들고 불렀으며, 그것들은 각종 차트를 석권하는 큰 기록들을 남기곤 했다. 특히 그의 하모니카와 키보드 연주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스티비 원더는 세 가지의 굴레를 안고 태어났다. 흑인, 맹인, 가난이 그것이었다. 이 세 가지 장애 요소를 안고 살아 내기란 여간 힘든 노릇이 아니었다. 그것도 미국이라는 독특한 땅에서. “너는 고작해야 주전자 손잡이 만드는 일이나 하게 될 거야.” 주위 사람들은 어린 스티비 원더에게 그렇게 빈정거렸다. 앞 못 보는 가난한 흑인 소년에게는 그것이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주전자 손잡이 대신 하모니카를 들고 나와 전 미국인을 감동시켰다. 오늘의 위대한 스티비 원더의 배후에는 한 선생님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맹인으로서 힘든 학교 생활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교실 안에 쥐 한마리가 나타났다. 아이들은 난리법석을 떨었고, 교실 안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때였다. 선생님은 스티비 원더에게 말했다. “얘야, 네가 친구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해주어야겠구나. 넌 청각이 뛰어나잖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