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를 보는 시각(時角)을 크게 두 개로 나눈다면, 필연의 결과로 보는 시각과 우연의 결과로 보는 시각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예로는 창조론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예로는 진화론을 들 수 있다. 우리의 인생도 필연적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느냐, 아니면 우연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살만한 인생이 될 수도 있고, 도저히 살맛나지 않는 마냥 괴로운 인생이 될 수도 있다. 본교 설립의 역사적 의미는 계명인에게 너무나 크다. 본교 설립은 하나님의 면밀한 계획으로 세워진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업은 56년 전 하나님의 은총 속에 미국 북장로 선교부에서 파견된 선교사들과 대구경북 지역 기독교계의 뜨거운 성원으로 가능했으며,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잘 교육시켜서 사회에 배출함으로써 암담했던 시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참으로 의미있고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본교의 설립 취지서에 보면 1954년에 본교의 설립을 “지리 경제적 사정으로 원지방까지 진출 취학할 수 없는 농촌 빈민 열학 청소년층”을 위한 설립자들의 “숙원 사업이며, 초미(焦眉)의 급무”라고 명시하고 있다. 설립 당시의 우리나라 상황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오늘날에는 온갖 흉악범죄, 가짜학위 등의 사건이 들려와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한다. 수많은 법규들이 제정되어 시행되지만 사건들이 자꾸 재발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어찌하랴! 이런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면서, 나의 고향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게 된다. 나의 고향은 작은 마을이며,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유교적 전통과 불교적 전통과 무속신앙적 전통이 혼재된 문화 속에서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을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경제적 측면보다 지나친 음주, 폭력, 도박과 같은 퇴폐적인 악습이었다. 이로 인한 무질서한 삶 때문에 치명적인 병이 들어 일찍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와중에도 희망적인 사실은 마을 한 모퉁이에 오래된 작은 교회 하나가 있었고, 소수의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모범적으로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농지 보존을 강조했던 80년대 초엽에 이 교회는 이전 확장을 해야만 했다. 마침 어느 교인이 교회를 이전할 터를 헌납하셨다. 그러나 건축을 위해 터의 지목을 택지로 변경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 생전에 경찰관으로 복무하시다가 은퇴하신 아버지께서는 문제해결을 위해서 관련 기관을 여러 번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