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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만남전주의 산, 들, 바다 모두를 껴안고 살아가는 안도현 시인

문학이, 시가, 지금의 안도현을 만들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그런 시인이 되었으면...

내 인생의 전부를 채우는 것이 바로 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 ‘너에게 묻는다’ 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안도현 시인을 만나보았다. 안도현 시인은 현재 시 창작 활동과 함께 전주의 한 대학에서 문학을 사랑하는 학생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강의 때문에 시 창작을 못해 아쉽지만 제자들이 시를 사랑하고 발전해가는 모습을 볼 때면 더 없이 기쁘다고 했다.


그의 작업실이 있는 전주의 어느 시골 마을 원두막에서 농부 같은 편안한 모습의 안도현 시인을 만나보자.



● 최근근황은?


현재 학교에 나가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하고 있는 일이 한 가지 더 늘었는데 그것은 북녘에 나무보내기 운동입니다. 평양에 나무도 보내고 가끔 술도 마시면서 보냅니다. 주말에는 시골집에서 꽃과 채소를 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 교수로서의 삶은 어떠한가?


저는 강의를 할 때도 항상 편하게 하는 편입니다. 청바지입고 강의를 한지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시에 관심 있는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항상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 현재 거주하고 있는 전주의 매력은?


전주의 매력은 너무 많습니다. 전주는 우선 산과 들, 바다가 모여 있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심성이 순하고 먹거리가 풍족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저와 딱 맞는 도시이기 때문에 전주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 최근 작품 활동 내용은?


대학에 교수로 오게 되면서 시를 많이 못썼습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시를 많이 쓰기로 마음 먹었는데 실천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시를 창작하는 나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고 싶어서 가지고 다니던 휴대폰도 없앴습니다.


앞으로는 시를 창작하는 나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것입니다.

● 작품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다른 장르의 글을 몇 번 써보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장르는 시 인 것 같습니다. 시 작품 중에는 ‘겨울강가’에서 라는 시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평소에는 내가 써놓은 시들을 다시 보는 경우가 드문데 이 시는 자주 읽어봅니다.

● 어린 시절에는 어떤 모습이었나?


저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그 시절 교지에 시를 투고 했었는데 실리지 못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면 문예반에 들어가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문예반에 들어가게 된 것이 인생의 통로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시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시를 쓰면서 문학과 시에게 고마움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시가 나란 인간을 바꾸고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친구 같기도 하고 나를 밀고 당겨주는 그런 존재입니다.

● 첫사랑은?


처음 만나면 첫사랑인 것 같은데 초등학교 2학년 때 처녀 담임선생님을 좋아했었습니다. 그 당시 선생님 자취방에 심부름을 갔었는데 화장품 냄새가 황홀하게 다가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선생님을 30년 후에 만났는데 선생님은 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선생님은 키도 크고 늘씬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키도 작고 많이 늙으신 모습이었습니다.

● 대학시절을 어떻게 보냈는가?


대학을 다니면서 등단했지만 80년대 시대상황과 문학을 어떻게 접목 시켜야 할지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고민을 하느라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학업에 대한 부담이나 후회는 없었습니다. 대학시절에는 학업 보다 문학이 좋았고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 이루고 싶은 소원은?


좋은 시를 써서 누군가 내 시를 보고 미쳐버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북쪽의 헐벗은 산들이 울창하게 변했으면 좋겠고 아무리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출판에 관계없이 자신이 쓰고 싶은 시를 쓰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나는 변화 중이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다듬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전교조 때의 시 세계관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는지?


만약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러한 상황이 된다면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사회는 민주화가 되어 있고 사회 여러 분야에서 투명성이 확보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시인이 예전처럼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지 않아도 그 역할을 할 사람은 많습니다. 지금 시인은 열심히 시를 써야 합니다.

● 존경하는 시인이나 작가가 있는가?


백석과 계명대의 이성복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 작가 지망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문학은 평생 하는 것이고 평생의 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 보다 중요하게 자신의 삶을 채우는 것이 문학이어야 합니다. 한순간의 장식품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