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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종교의 현실과 나아갈 방향

종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영성 도덕성, 공동체성이라는 각고의 노력 요구

오늘날 한국종교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종교는 지난 몇 십년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성장이 멈췄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지탄과 조소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공신력 상실은 최근에 불거진 한국종교들의 여러 문제적인 사건들을 살펴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얼마 전 무리한 선교활동을 하다가 23명이 아프간 탈레반에게 인질로 붙잡혀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 탈세와 부동산 투기 및 세습 문제로 교회 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물의를 일으킨 일,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으로 갈등을 야기한 일 등은 한국 개신교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반기독교적 정서를 확산시킨 결과를 초래한 사례들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사찰이, 종교대학이 비정상적인 특혜를 받은 일, 사찰의 공금과 국고보조금을 횡령한 일, 주지 임명을 둘러싸고 폭행사태가 일어난 일, 교계 지도자들의 허위학력이 밝혀진 일, 입장료를 따로 징수해서 시민단체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일 등은 한국 불교의 입지를 흔들고 반불교적 분위기를 심화시킨 사례들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천주교의 경우에도 납골당 설치 문제로 지역주민과 충돌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한국종교는 우리 사회에서 영적, 도덕적 길잡이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부도덕하고 반지성적이며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집단으로 매도되고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종교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시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예를 들면 1984년부터 2004년까지 네 번에 걸쳐 한국 갤럽이 전국 단위의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에 따르면, 한국종교가 지속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2004년의 조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종교단체는 종교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데 대하여 응답자의 68%가, ‘대부분의 종교단체는 참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교세를 확장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데 대하여는 76%가, ‘요즈음의 종교단체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사람에게 해답을 못주고 있다’는 데 대하여는 64%가, 그리고 ‘요즈음 종교단체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다’는 데 대하여는 46%가 ‘그렇다’고 했다. 이 비율은 비종교인들의 경우에는 종교인보다 15-20 퍼센트나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품위 없는 성직자가 ‘많다’고(87%), 사이비종교가 ‘많으며’(95%), 그 문제가 ‘심각하다’(91%)는 응답 비율도 매우 높았다. 문제는 이러한 부정적 응답 비율이 지난 20년간 계속 증가해 왔다는 점이다. 반면에 요즈음 종교들이 이웃이나 타인에 대하여 사랑이나 자비를 ‘아주 잘 실천하고 있다’는 응답은 8%에 불과하다. 이러한 결과들은 한국의 종교들이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못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하는 평가라고 하겠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건의사항을 보면, ‘사회봉사/이웃사랑을 실천할 것’, ‘사리사욕과 물질에 치우치지 말 것’, ‘지나친 전도를 하지 말 것’, ‘헌금을 강요하지 말 것’ ‘타종교를 비방하지 말 것’ ‘종파 간 화합할 것’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종교가 오늘날 이렇게 종교 본연의 자세를 잃어버리고 제 구실을 못하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문제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는 기복주의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한계 때문에 그는 화를 면하고 복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고, 종교가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복신앙은 행위자의 윤리적 책임이나 덕의 함양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종교가 인간 계도와 인류구원이라는 본질을 도외시하고 단순히 개인의 이익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할 때 종교는 사회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한국종교의 문제는 지나치게 기복화되어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의 참된 진리를 추구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둘째는 물질주의다. 이것은 종교를 타락하게 만드는 가장 위험한 요소다. 원래 종교의 본질은 영적, 정신적,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물질주의에 빠지게 되면 그것은 성스러움을 잃어버리고 탐욕스러운 세속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한국종교는 물질가치에 너무 물들어 있다. 부유함, 거대함, 화려함, 풍족함을 성공척도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찰이나 교회를 매매하고 무리하게 신도들로부터 헌금을 요구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셋째는 반지성주의다. 종교에는 이성적, 합리적 요소뿐만 아니라 감성적, 감정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종교는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때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광적인, 반지성적인(그래서 반사회적인) 일을 자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넷째는 배타주의다.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절대적 신념과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가치, 이념, 문화를 가지고 있는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서로 존중하고 포용하지 않으면 종교적, 사회적 갈등이나 대립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나 한국종교(특히 개신교)는 배타성이 너무 강하여 다른 종교 또는 종교인에 대하여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종교문제들은 우리 사회의 변동 상황과 관계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1960년대 이후 이루어진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이것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경제, 성장, 돈을 절대시하는 분위기를 조장하고 확산시켰다. 그리하여 물질만능주의, 성장제일주의, 성공지상주의라는 가치가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가 되어버렸고, 이것은 고스란히 종교들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모든 종교들도 그러한 가치실현에 깊이 몰입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실제로 한국종교는 크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커다란 부, 명예,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영성과 도덕성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장과 함께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집단이 되어가면서 한국종교는 탐욕, 독선, 교만의 노예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종교의 세속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문제적인 종교현실과 관계된 다른 배경은 종교 다원주의라고 하는 상황이다. 현대사회의 한 특징은 다원화는 종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종교적으로 매우 다원화되어 있어 여러 종교, 여러 교파(종단), 여러 교회(성당, 사찰)가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들은 생존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사회에서는 경쟁이 상호존중, 상호협조의 정신으로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에 반하여, 한국 종교들은 대립과 갈등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 종교들은 지나친 경쟁의식,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호비방, 무리한 교세확장, 공격적인 선교라는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종교에는 무엇보다 자체의 자정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철저한 자기비판과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운동이 확산되어야 한다. 인간에게 진리를 깨우치고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종교가 갈등, 탐욕, 독선, 무질서, 부조리와 같은 사회적 역기능을 초래해서야 되겠느냐는 자각운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랑과 자비의 실천, 평화와 정의의 구현이라는 종교적 수행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기복주의, 물질주의, 반지성주의, 배타주의라는 비종교적이고 반사회적인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한국종교가 사회적으로 공신력을 회복하고 종교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영성, 도덕성, 공동체성이라는 종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