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암 박지원(1737~1805)을 두고 연전에 어느 분이 하신 말씀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고전문학사에 문호(文豪)라는 호칭을 들을 만한 이들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이규보, 서거정, 김시습, 허균, 박지원 정도. 게다가 박지원은 문인이면서 정약용과 더불어 조선 후기 사상가로 그 이름을 뚜렷이 하고 있지 않은가. 요컨대 문학으로의 정채(精彩)와 사상으로의 파고를 한 몸에 지닌 조선조 최고의 지성이라 할 만하다. 이런 점에서 현대를 사는 한국 사람으로 「허생전」, 「호질」, 「양반전」 같은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만으로 박지원을 느끼고 접어 버리기에는 애석함이 크다. 최소한 그 작품의 정수는 한번쯤 통독해 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는 이런 점에서 박지원을 제대로 느끼기에 적합한 텍스트이다.
편역자 김명호 교수는 ‘열하일기 연구’로 박사학위(이후 창작과비평사에서 1990년 출간됨)를 받은 이래 지금까지 줄곧 박지원 연구에 매진해 온 중견학자이다. 한학자인 우전 신호열선생을 모시고 읽었던 ‘연암집’을 정리하여 남북한 통틀어 최초로 ‘연암집’ 완역본을 최근 내놨다(민족문화추진회 및 돌베개).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는 이 같은 수십 년의 연찬 속에 나온 결과물로 그간 박지원 작품선집의 최고 권위를 차지했던 홍기문의 ‘박지원 작품선집1’(1960년 국립문학예술서적출판사, ‘나는 껄껄선생이라오’란 제명으로 2004년 보리에서 飜刊됨)을 넘어서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소설’, ‘산문’, ‘한시’의 3부로 나누어 그의 대표작 100편을 정선한 것이다. 이 글들을 통해 지성인 박지원이 가지고 있던 울분과 격정, 우환의식(憂患意識) 그로 인한 준열한 비판·풍자와, 감성인 박지원이 보인 벗과 가족에 대한 애정, 예술과 풍류에 대한 감상안(鑑賞眼)과 여유로움 등을 골고루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가급적 작품 외적인 것은 배제해 둔 채 작품 자체만을 음미하는 것이 좋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도 적합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허기가 느껴진다면 박희병 교수가 20편의 박지원 산문을 정선하여 평설을 붙인 ‘연암을 읽는다’(돌베개, 2006)와 박종채가 쓴 아버지 박지원에 대한 전기 ‘과정록’(‘역주 과정록’과 ‘나의 아버지 박지원’ 두 종이 있다), ‘연암집’에는 수록되지 않은 박지원이 가족 및 벗에게 보낸 편지 33통을 실은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박희병 역, 돌베개, 2006), ‘국역 열하일기’(이가원 역, 민족문화추진회, 1968)로 그 허기를 달래봄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