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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담론) 당신은 다운로드 없이 살 수 있습니까?

패러다임 변혁의 차원에서 해석한 다운로드 문화


다운로드. 이미 너무 식상하지만 동시에 현재진행형의 화두임에 분명하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깊숙이 침투한 다운로드 문화를 조명해보고, 이를 새로운 시장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고민해 본다.


● 다운로드가 변화시킨 생활

‘모래시계’가 방송되는 시간에 거리가 텅텅 비어 ‘퇴근시계’로 불렸던 시절, 그거 다 옛날 이야기다. 요즘 누가 수목 드라마 보려고 저녁 10시까지 기다리나. 원하는 시간에 HD화질의 녹화파일을 받아보면 그만이다. ‘히어로즈’처럼 국내 방영된 적이 없는 드라마가 화두로 떠오르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이 같은 다운로드 문화의 대중적 파급력은 관련기기와 인터넷 환경변화 등 기술적, 물리적 차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PMP가 나오고 2세대 PMP가 나오더니 DMB와 네비게이션 기능이 결합되고 급기야 동영상 카메라와 무선기능까지 포함된 통합기기들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동영상 파일들은 PMP나 아이팟 같은 휴대용 종합 멀티미디어 기기, 혹은 휴대전화나 USB메모리 같은 생활전자 기기에 담겨지면서 그 재생영역을 무제한 확장시켰다. 대로변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휴대용 기기로 영화를 보는 풍경은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심지어 이건 더 이상 특정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야동 보는 할아버지,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도 시대 사회적인 맥락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말이다.
유튜브와 구글로 대표되는 WEB2.0 시대를 맞아 다운로드 문화는 생활 곳곳에 더욱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다.

● 다운로드가 변화시킨 의식구조

이제까지 설명한 풍경들은 긍정, 부정의 차원을 떠난 가치중립적 현상의 나열일 뿐이다. 그렇다면 문화,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대중의 의식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우선 다운로드를 통한 영화 소비는 다양한 형태의 유통구조(비록 저작권자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기형적 구조였지만)를 낳아 결과적으로 관람의 기회를 증대시켰다. 누구라도 쉽게 특정 영화를 검색하고 다운받아 감상할 수 있게 됐으며, 심의나 배급문제로 인해 국내에 개봉하지 않았던 희귀영화를 보는 일도 예전처럼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 같은 관람기회의 확대가 결과적으로 야기한 의식적 부작용은 꽤 심각하다. 우선 전에 없이 영화담론이 축소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양상은 10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공히 나타난 현상이지만, 최근 1, 2년 사이 한국의 영화 지형도를 살펴보면 얼마나 급진적으로 담론의 쇠퇴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더 이상 아무도 영화를 사유하거나 성찰하려 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있어 미술이나 문학과는 달리 영화는 단지 소비재일 뿐이다.

또한 ‘영화를 다운로드 받는’ 행동의 불법성에 대해 완전히 무감각해진 것 역시 큰 변화다. 과거 P2P웹하드 서비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조심스러움과는 달리 이제는 공적인 영역에 드러내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만화 작가의 홈페이지에 찾아가 “스캔본을 다운받아 잘 봤으니 다음 권도 빨리 내달라”고 요구한다든지, “‘히어로즈’의 다음 자막은 왜 빨리 안 만드는 거냐”며 불평하는 모습, 특정 영화의 동영상 파일자료를 요청하는 게시물 등은 다운로드 문화 자체가 일상이 돼버린 탓이 크다. 다운로드 동영상을 활용할 수 있는 기기가 셀 수 없이 많이 출시됐는데, 다운로드 자체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용자도 의외로 많다(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는 단순히 동영상 파일을 재생하는 기능만 있기 때문에 파일 공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지 않는다).

● 다운로드를 둘러싼 발상의 전환

합법적 다운로드시장을 만들어 새로운 산업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작년 이 맘 때에도 똑같이 했던 얘기다. 그 결과 합법적 동영상 다운로드 서비스가 일부나마 제한적으로 실시되기도 했다. 워너브러더스는 자국 내에서 유명 P2P사이트 비트토런트와 영화 판매 및 대여계약을 체결했으며, 한국에서도 iMBC를 통해 다운로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좀체 풀리지 않는 문제점이 산재돼 있다. 바로 가격과 윈도우 시점(한 편의 영화가 극장 개봉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공개되는 순서, 즉 극장 개봉=DVD 출시=케이블 방송처럼 순차적 시점을 의미한다)이다. 최신영화를 다운받는 대중에게 DVD 출시 이후에나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합법적 시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불어 3백 원에서 7백 원 정도면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 받아 볼 수 있는 현실에서 편당 2천 원에서 6천 원, 1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은 현실성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어디 있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시스템의 틀에 다운로드 문화를 끼워 맞추려 한 것이다. 그것이 비용과 시간을 좀 더 절약할 수 있어 보이는 데다, 저작권 이해당사자들이 다운로드=불법이라는 공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탓이다. 그 결과물은 눈에 빤히 보이듯 현실성 부족한 사업의 출현이다. 이제부터는 역으로 다운로드 패러다임을 중심에 두고 관련 법체계와 제도적 기술적 환경을 변화, 적응시키려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다운로드 문화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면 그에 발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운로드를 척결해야 할 현상이 아닌 필연적인 문화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그 가치를 이해하는 것, 그것만이 부가판권시장의 붕괴를 둘러싼 총체적 난국을 타개해나갈 수 있는 여정의 시작이다. 우린 아직 그 첫걸음조차 떼지 못했다. 이건 일부러 비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