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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기획] 북한의 핵실험 강행 배경과 동북아의 미래

동북아에 미칠 파장의 가장 큰 변수는 유엔 대북 제재


‘북한이 왜 핵실험을 했나’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대개 하나로 모아진다. 핵실험 당일인 9일 중앙일보는 긴급 좌담을 했다. 사회를 본 기자가 던진 “왜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성향이 다른’세 분의 교수는 하나로 답했다.

▶ 남성욱 교수(고려대)=“지난해 5차 6자회담 이후 대미 관계가 풀리지 않자 북한은 판을 깨는 전략으로 나갔다.”

▶ 고유환 교수(동국대)=“미국과의 협상용이자 체제 결속용이다.”

▶ 김근식 교수(경남대)=“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김정일 위원장은 클린턴 정부가 용인하기 어려운 레드라인에 한쪽 발을 걸쳐놓는 전략으로 북ㆍ미 합의를 도출했다. 북한은 다시 레드라인에 발을 살짝 걸쳐 미국을 움직이려 한다.”

다른 국내외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도 비슷하다. 주 목적은 ‘대미 협상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북한은 핵실험을 동원하면서까지 대미 관계 개선에 주력할까.

북한에게 대미 관계 정상화는 일종의 만능키로 간주되고 있다. 관계 정상화, 평화 협정 체결 등을 통해 고사 직전의 경제를 살리고, 발전을 모색한다는 전략이다. 초강대국인 미국의 인정 없인 세계무대에 설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답답했다.

2005년 베이징 5차 6자회담의 9.19 성명을 통해 핵문제 해결의 가닥이 잡히는가 했더니 국면은 순식간에 교착됐다. 회담 직후 미국은 북한을 위폐 제조국으로 지목하고 북한의 거래 은행인 마카오의 방코델타(BDA)은행을 조사하면서 6자회담은 뇌사상태가 됐다. 금융제재로 동결된 BDA 58개 계좌에 들어 있는 2천4백만 달러가 크진 않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자금이고, 또 다른 은행의 북한 계좌로 불똥이 튀면서 북한은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식으로 나왔다. 아파하는 북한을 보며 미국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북한 핵 불용(不容)’이란 미국의 입장도 분명했다. 미국,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은 ‘악의 축’이다. 북의 설명에 관계없이 북한 주민은 굶고 또 죽는다. 국민을 굶겨 죽이고, 말 안듣는다고 투옥하고 총살하는 정부는 존재해선 안된다는 게 부시 대통령의 시각이다. 그런 정부가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 북한은 ‘6자회담 복귀를 위한 금융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외면했다.

7월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으로 인해 발생했던 이 장면들은 미ㆍ북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장면 1=북한의 미사일 발사설이 현안이 된 가운데 6.15 남북정상회담 6주년을 기념해 북에서 대표단이 내려왔다. 그 가운데 실력자를 정부 고위 당국자가 만났다.

『당국자=첫째 미사일을 발사하면 쌀과 비료를 줄 수 없다. 둘째 미사일을 발사해도 미국은 꿈쩍 않는다. 다시 말해 미국을 협상에 끌어내려고 미사일을 발사해도 소용없다.

북 실력자=상부에 전하겠다. 』


#장면 2=이후 크리스토퍼 힐 미 동북아 차관보가 한국에 왔다. 북한은 힐을 평양으로 공개 초청한 상태였다.

『당국자=북한을 다녀오는 게 어떤가. 조건 없이 오라 했으니 가서 대화 해보라.

힐=6자회담에 나오지 않는 북한에게 대화를 선물로 줄 수는 없다.

당국자=대화가 선물이 될 수 없다. 초청에 응했는데도 미사일을 발사하면 제재 명분도 얻는다. 』

힐 차관보는 가지 않았고 북한 지도부는 남측 충고를 듣지 않았다. 미사일은 7월 5일 발사됐다.


#장면 3=핵실험을 한달여 앞둔 시기로 미국이 지난해 9월 16일 BDA은행 조사에 들어간 지 1년이 됐지만 아무 발표도 없는 상태였다.

『당국자=BDA 조사가 지지부진하다. 결론을 내릴 시점이다. 뭔가 있으면 조치하고 없으면 조사를 끝내라.

힐 혹은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우리도 다 잘 안다. 그러나 그 얘기는 저 윗선에 해달라.』

아직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이런 장면들은 단기적이며 협상 전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미국 책임론’의 사례로 꼽힐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ㆍ장기적 측면에서 보면 책임의 방향은 북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90년대 이후 사태악화에 대해 북한은 많은 책임이 있다. 1991년 한국과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지만 뒤로 핵폭탄 개발에 나섰다. 94년 북ㆍ미 제네바 핵동결 합의 뒤 곧바로 우라늄 농측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한국ㆍ중국ㆍ일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수차 천명했다. 이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은 결국 미국 위협론을 이용해 금지선을 넘은 것이란 평가가 가능하다.

미국의 금융 제재를 원인으로 꼽는 것도 무리다. 위조지폐 제조 현장이 증거로 잡히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위조 달러 유포현장은 무수히 발각됐다. 이를 이유로 금융제제를 하는 미국에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요컨대 북한 핵실험의 배경은 장ㆍ단기적으로 얽힌 복잡한 북미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 동북아에 미칠 파장을 보자. 단순화시켜 말하면 유엔 대북 제재가 최대 변수다. 초안이 채택됨에 따라 동북아는 북한 제재국면에 들어간다. 주요 내용은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계획에 기여하는 물자와 사치품 등의 수출금지 △대량살상무기 등 계획을 지원하고 있다고 인정된 개인ㆍ단체가 해외에 소유, 관리하는 금융자산 동결 △필요시 북한 선박 등의 검문을 포함한 협조 △유엔 헌장 7장에 따라 행동하며 7장 41조 아래서 조치 강구 등이다.

이 정도면 북한에겐 크게 무섭지 않다. 동북아의 파고도 높지 않을 수 있다.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최대 3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아사자를 내면서 버텨온 북한이다. 북한과 1천3백㎞의 국경을 접한 중국이 냉정하게 국경을 폐쇄하지 않으면 더욱 버티기 쉽다.

문제는 그 다음 국면이다. 결의안은 ‘북한의 행동을 지속 점검, 필요시 추가적 결정 요구’를 포함하고 있다. 추가 조치가 군사적 성격을 띠게 되면 상황은 가팔라진다. 북한이 대결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11일 외무성 담화에서 “압력을 가하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미국이 유엔 제재에 관계없이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의 일환으로 해상 봉쇄를 다짐,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동해에서 미 군함이 북한 선박을 정선ㆍ조사할 경우 파장은 커진다. 북한은 미국 대신 남한을 상대로 서해교전 같은, 돌발 사태를 가장한 무력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휴전선에서 소규모 무력 충돌도 일으킬 수 있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성은 당연히 높아지고 자연히 동북아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그럼에도 핵무기로 인해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이 붕괴됐기 때문에 북한을 당장 침묵시킬 수단도 없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흔들며 ‘전쟁이냐, 굴복이냐’며 위협을 가할 가능성을 걱정한다.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되면 동북아 차원에서 핵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핵폭탄을 두번 맞아 핵공포가 남다른 일본은 미국을 설득해 빠르게 핵무장을 추진할 것이다. 일본은 3개월이면 핵폭탄 수백기를 만들 실력을 갖고 있다. 대만도 나설 수 있다.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의 핵무장에 대한 공포가 한국과 중국에 역으로 확산되면 탈(脫)냉전 이후의 ‘포스트 탈냉전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더 장기적으론 긴장의 부담을 견디지 못한 북한의 체제 붕괴도 상정할 수 있지만 아주 먼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