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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력특집 - 계명의 건축물, 그리고 계명의 역사(2)

동산의료원 제중관 - 계명대 붉은 벽돌의 역사


동산동에 있는 계명대 동산의료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남쪽 주차장 옆에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이 하나 있다. 달성로를 사이에 두고 서문시장과 마주하고 있는 3층 건물을 말한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보다 강렬한 빛깔의 적벽돌 벽이다. 이름하여 제중관, 구관 또는 구병동이라고도 하는 이 건물은 1899년 약전골목의 한 초가집에서 시작한 제중원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잘 보여준다.

제중관은 동산기독병원 2대 원장이었던 플레처(Archibald Fletcher)의 주도로 건축된 것이다. 미국에서 건축비를 모금할 때,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용할 유일한 기독병원”이 될 것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내걸었다. 3만 5천 달러를 모금한 플레처는 바로 건축에 착수했다. 한국에는 서양식 건축에 능한 사람이 없었는지 중국의 기술자를 썼다. 1931년에 제중관이 준공되면서 입원병상은 80개로 늘어났고 한국인 의사도 채용되어 메스를 잡았다.

원래는 건물 중앙에 현관 포치가 있었으나 3호선 지하철 공사 때문에 따로 떼어 뒤쪽 청라언덕에 이건해 놓았다. 이 포치의 정면에는 ‘since 1899’라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제중관은 현재 검사실, 의사당직실, 중앙수술부 물품 공급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의료사적·건축사적 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중관은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들이 경찰병원으로 사용했는가 하면 육이오 때는 국립경찰병원 대구분원으로 활용된 역사도 있다.

플레처는 31년 동안 동산기독병원 원장을 역임하며 지대한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1942년에는 일본경찰에 의해 추방되는 비운을 겪었다. 해방 후 다시 한국에 와 얼마간 선교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가 1970년에 세상을 떠났다. 플레처는 죽는 순간까지 동산의료원을 잊지 못하고 향수에 젖곤 했다. 지난해에는 그의 손자들이 의료원을 찾아와 할아버지의 향수를 대신 달래기도 했다.

플레처 선교사의 행적은 여러모로 계명대에 계승되고 있는데, 특히 ‘계명 1% 사랑나누기’가 그 중의 하나이다. 계명대 교직원들은 2004년부터 월급의 1%를 기부하며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는 바, 이 기금은 구제, 의료, 교육, 환경 등 다양한 목적 하에 세계 곳곳에 사용되고 있다. 이 1% 사랑나누기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 바로 플레처 원장이다. 그의 솔선수범으로 병원 직원들은 1921년부터 봉급의 1%를 모아 무의촌 의료봉사를 하며 사랑을 실천했다.

주지하다시피 계명대학교는 캠퍼스의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적벽돌 건물은 낭만과 고전적 아취를 풍긴다. 계명대의 붉은 벽돌 건축으로 말하자면, 그 역사가 제중관으로 이어지니 장장 80년을 웃돈다. 좀 사적인 영역까지 포함하면 100년이 넘는다. 대구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청라언덕의 세 박물관은 선교사들의 주택이었는데, 세 집 모두 붉은 벽돌로 단장되어 있다. 특히 선교박물관은 계명대 초대학장을 지낸 캠벨(Archibald Campbell) 박사가 거주했던 곳으로 1908년경에 지은 것이다.

한국에 처음으로 등장한 적벽돌 건물은 1879년에 지은 부산의 일본 영사관이었다. 그 후 많은 관청, 교회, 학교가 적벽돌을 사용하는 양식건축을 도입했다. 그러니까 적벽돌은 개화기를 채색한 핵심적인 상징물이었다. 적색은 견고하고 강력한 이미지를 주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연상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정신과도 무관치 않다. 물론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계명정신과 무관치 않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가까운AI] AI 킬러 활용법 – AI 검사기로 AI 글을 ‘내 글’로 바꾸기 “AI 검사기를 돌렸더니 ‘AI 생성 의심 90%’가 나왔습니다.” 한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학생은 “저 AI 안 썼어요”라고 항변하지만, 검사 결과는 이미 교수에게 부담과 의심을 던져놓은 뒤다. AI 시대의 글쓰기는 교수도, 학생도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고 방식, 글쓰기, 평가 방식이 새롭게 바뀌는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모두가 혼란을 겪고 있다. ● 교수도 난감하고, 학생도 난감하다 AI 검사기는 문장 패턴과 구조를 기반으로 ‘AI일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교과서적 표현이나 정제된 문장을 자주 쓰는 학생일수록, 혹은 정보 기반 개념 정리를 하는 글일수록 AI 문체와 유사하게 보일 수 있다. 교수들은 “결과만 믿자니 학생이 억울해 보이고, 학생 말을 그대로 믿자니 책임이 생기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성실하게 썼는데 AI 비율이 높게 나오면 억울함과 불안감이 뒤따른다. ‘AI에게 개념만 물어보는 것도 AI 사용인가?’, ‘교정 기능은 어디까지 허용인가?’ 학생들은 AI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경계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느낀다. AI 검사기에서 오해가 생기는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