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박근형 씨의 ‘너무 놀라지 마라’는 한 노인의 자살로 시작되는 연극이다. 전단지 뒷면에 쓰인 한 줄짜리 유서. ‘너무 놀라지 마라.’ 자신의 죽음이 미안한지, 자식들에게 짐이 된 게 마음에 걸리는지, 노인은 가슴에 묻은 많은 이야기를 접어놓고 목을 맨다.이 연극은 노래방 도우미인 며느리,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둘째 아들, 영화 찍는다며 집을 나간 첫째 아들,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버린 아내 등이 벌이는 ‘놀랄 만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추하고, 인간이라기에 너무나 가혹한 일들이 어찌나 태연하게 진행되는지 진땀이 다 흐르는 연극이었다.최근 이런 느낌의 영화가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2014)이다.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대학살의 기억을 쫓아가는 연작으로 ‘액트 오브 킬링’(2012)의 후편인 셈이다. ‘액트 오브 킬링’이 가해자 입장에서 그렸다면, ‘침묵의 시선’은 피해자의 시선에서 그린 작품이다.인도네시아는 350년의 식민시대를 겪은 나라다.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이후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는 의회를 탄압하고 사실상 종신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그러
1980년대 초 일본에서 VCR이 처음 개발되었을 때 그 가격이 몇백만 원이나 되었다. 30분짜리 공테이프 하나가 우리 돈으로 8만원이나 했던 시기다. 일본 애니메이션 지망가들이 교과서로 여긴 것이 매주 방송되는 일본 만화의 대부 데츠카 오사무의 애니메이션뿐이었다. 물론 녹화를 하지만 1주일을 넘길 수 없었다. 1주일 후에 방송되는 분량을 녹화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공테이프가 8만원이나 했으니 쌓아놓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그들은 1주일 동안 보고 또 보고, 움직임과 색감과 스토리를 완전히 체득해 버렸다. 그리고 지우고 새로운 것을 녹화했다.그들이 바로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 ‘아키라’의 오토모 가츠히로 같은 애니메이터들이었다. 이들 덕분에 일본 애니메이션은 미국 위주의 세계 애니메이션계에 아주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재패니메이션이라는 고유의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다.일본 외에 미국 애니메이션과 견줄 만한 시장성 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그러나 실뱅 쇼메의 ‘벨빌의 세쌍둥이’, 빠트리스 르꽁트의 ‘파리의 자살가게’ 등 독특한 그림 스타일의 프랑스 애니메이션이 일부에서 열광적인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