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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계명의 현장

하계 국외봉사활동을 다녀와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나는 누구보다도 큰 기쁨과 아쉬움을 함께 만끽하고 있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같이한 봉사팀원들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감히 자신을 한다. 지난 봉사기간 동안의 여정이 가슴 뭉클하게 스미어 온다. 처음부터 나는 내 자신의 모자람을 알기에 그것을 채우려 중국 봉사활동 대표를 자청했었다.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앞장을 섰어야 함에 돌이켜 보면 그 부족함이 봉사 팀에게 피해가 되진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없진 않다.

그러나 지금 그런 아쉬움보다는 나와 우리단원들이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이 크기에 후회는 없다. 우선 국외봉사활동이라는 타이틀 아래 중국은 개인적으로도 너무나도 밟아 보고 싶은 땅이었고 이와 더불어 봉사활동까지 이루어지는 이러한 기회가 대학생활에서 얼마나 자주 있을까 ? 그렇기에 더욱더 값진 경험이었고 작년 떨어지고 이어 두 번째 도전이기에 나의 욕망은 한층 더 뜨거워 졌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를 제대로 알릴 수 있고 꼭 가야만하겠다는 그 마음을 심어야겠다는 이러한 준비가 나를 지금 이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다. 뽑힌 이들은 우리학교에서 그래도 자신의 마인드를 가지고 그 높은 경쟁 속에서 선발된 이들 이였기에 그 중 내가 있었던 것 자체가 크나큰 기쁨이자 영광이었다.

우리들의 첫 번째 만남은 여느 첫 만남과 같이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그러한 관계로서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고 서먹서먹함이 느껴지는 그런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다. 20살 막내에서부터 29살 형님까지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가진 이들이었기에 더욱더 그러 했을 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한다는 것이 지금의 우리들을 만들어놓은 밑 그름이 아니가 되짚어 본다. 되돌아보면 귀국하여 악수하며 헤어질 때 눈물까지 글썽이고 흘렸던 학생이 있을 정도의 친밀한 정을 만든 아름다운 우리 모습 속에서 과거 그 어색한 모습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값진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나 자신도 속으로 뭉클하였으니…….

한번 만나고 두 번 보고 조금씩 서로를 생각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즐거워하고 아쉬워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또한 봉사 출발 전의 준비부터가 여느 수동적인 자세의 조직과는 다른 적극적인 태도가 보였는데 그것이 귀국 때까지 이어졌다는 것 자체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역시나 대단한 우리들이다.

드디어 봉사활동의 일정이 시작되는 날, 우리 중 몇 몇 이들은 국외의 경험이 있는 사람도 많았고 중국도 가본 이도 있었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긴장되고 부 푸른 기대감을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혼자가 아니고 함께 하며 같은 길을 가고 있기에 그러하였으리라. 비행기를 타고 북경에서 연길로 그리고 흥안소학교라는 우리의 봉사 장소로 이동하였는데 밤늦게 도착하여 반겨주시는 소학교관계자들의 반김 속에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한 우리들에게 시작부터 감격의 순간이었다. 당연히 그런 배려는 봉사기간 끝까지 이어진 것은 물론이었고 감사할 따름이다. 여기 멀고도 가까운 나라인 중국에서 우리와 같은 글을 쓰고 보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기하고도 하면서 과거를 보았을 때 조금은 안타깝기도 한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다양한 봉사를 했는데 사실 우리들의 봉사는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단 우리의 작은 보탬이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것, 또한 이런 교류를 통하여 같은 민족인 우리가 우리 동포와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였다고 본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는 흙을 파헤치고 일구어 밭을 만들고 분수대 마무리 작업과 유치원 페인트 작업 및 주변 환경 정리를 하였을 때의 무언가 이루었다는 그 쾌감!!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어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일에 적응하기가 쉬웠으나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봉사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누구하나 서로에게 미루지 않고 자기 자신의 정성으로서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더욱 그러하였으리라. 연길의 날씨는 대구보단 덥진 않았지만 그쪽도 여름이라 더운 가운데에서도 서로에게짜증한번 내지 않고 배려하는 모습이 지금도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그리고 소학교 학생 및 유치원생을 위한 문화 봉사인 마술쇼와 구연동화, 풍선아트는 그때 처음 보았었는데 나로서 기대 이상일뿐더러 이를 함께한 현지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즐거움 자체에 뿌듯함을 한껏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그들보다 더 큰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단순히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하여 봉사를 한다는 것, 또한 봉사 기간 중 느낀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는 우리가 중국으로 우리 동포를 위한 봉사를 갔었지만 그 봉사 뿐 아니라 함께한 생활 동안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며 서로를 위한 봉사가 더욱 인상 깊은 가르침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몇 일간의 소학교와의 만남 뒤에 헤어지는 순간은 왜 그리도 허전한 맘이 들던지 그들의 모습들과 헤어짐의 아쉬움이 뇌리에 스친다. 가깝지만은 않은 타국에서의 만남과 헤어짐 때문일까? 그래서 더욱 그러하리라.

아쉬움을 뒤로한 체 문화 탐방 기간 중 우리의 명산인 백두산을 볼 때의 그 장관은 이로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안개 때문에 10번 중 3번 정도 1년, 그 중의 3개월 정도밖에는 볼 수 없다는 백두산을 봤다는 것이 가슴 벅찬 일이다. 다만 그 맑고 깨끗한 천지를 중국을 통하여 본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만리장성과 천안문, 자금성…….

어찌 내가 본 사실들을 여기에 모두 표현할 수 있으리오. 다만 그 거대함과 웅장함에 감탄사가 나올 뿐이라는 사실! 다행이 일정 중에 하늘도 우리를 도왔는지 날씨가 신기할 정도로 알맞아 우리들에겐 큰 행운이었다. 귀국 전 앞날의 항공기 결항까지도 우리를 피해갔으니 우리들이 열심이한 하늘의 배려에서였을까? 정말로 복 받은 팀이 아닌가 싶다. 또한 갖가지 중국음식들을 접하면서 가끔 우리 입맛과 맞지 않을 때는 봉사기간 내 팀원이 만들어준 음식을 부러워하며 감사할 때도 많이 있었지만 새로운 경험이자 묘한 끌리는 맛도 느껴 본 것 좋은 경험인 것 같다. 또한 현지의 간판이나 중국인과 대화를 하는 팀원을 볼 때 얼마나 멋지게 느껴지고 부럽게 느껴지는지 배움의 필요성과 함께 이러한 단원이 우리와 같이 있다는 것이 크나큰 행운이었다.

비록 짧은 여정이지만 단장님을 비롯한 우리 봉사단원 모두가 자신의 전공을 넘어 능력과 노력으로 이번 봉사활동기간 중 아무 사고 없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로인해 보고 배운 것도 많이 있었고 때로는 서로에 대한 의지와 도움들이 고맙고 즐거울 따름이다. 우리가 각자의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를 이루지 못하였으리라…….

훗날 이러한 단체로서 활동이 과연 얼마나 더 있을까?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만들고 싶고 함께하고 싶다. 너무도 아쉽고 멋진 중국국외 봉사활동이라 자신하기에……. 누구하나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기에……. 일일이 나열하진 못하였지만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이 소중한 추억과 함께 우리의 인연 끝까지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원한다. 우리 계명대학교 중국 국외봉사팀 파이팅!! 씨에~ 씨에~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