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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계명의 현장

하계 국외봉사활동을 다녀와서…….

● Prologue

7월 11일 출국하던 날. 중국을 다녀왔다는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내가 많은 걸 느끼고 왔구나, 갔다 오길 참 잘 했구나 ’ 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만 담긴 생각을 말로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뭔가 해냈구나라는 뿌듯한 생각에 스스로에게 고마워졌다.

아직도 국외봉사활동 참가자 명단이 발표 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확인하고자 들어갔던 홈페이지에서 학번을 확인해보고는 혼자 1학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막내라는 역할이 부담스럽기도, 아는 사람 한명 없는 그곳에서 적응하는 것도 아득하게만 느껴졌기에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한번도 안 해본 막내역할 이번기회에 제대로 해보자고, 제대로 아는 언니, 오빠 하나 없는 학교에서, 진짜 멋진 언니, 오빠들 만들어보자고, 대국이라 불리는 중국을 며칠 만에 알기란 힘들지만, 대국을 느끼고라도 오자고.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치러야 했던 기말고사가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는지 모른다. 공부를 하다가도,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도, 문득 생각나는 탓에 혼자 웃기도 했다. 처음 나가는 국외여행의 설렘보다는 커다란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는 비장한 기분이었다. 잘해야지, 잘해야지. 적어도 방해가 되지는 말아야지.


● 첫 번째 이야기 - 연길에서의 봉사활동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던 탓에, 11시가 넘어서야 흥안소학교에 도착했다. 흥안소학교가 눈앞에 보이는 순간. ‘타임머신이 있었더라면 이런 느낌 이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으로 잠시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봉사활동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일 자체가 힘들었다기 보단, 특별한 것 없는 단순노동으로 지루해질 대로 지루해져 버린 게 흠일 뿐. 33명이 힘을 합하니까 이틀 만에 텃밭하나가 만들어졌다. 70여 평쯤 될 거라는 그 텃밭의 규모에도 놀랐지만, 누구하나 게으름피우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다는 사실에 더 놀라웠다.

그 외에도 학교 지원으로 만들어진 분수대의 마무리 청소라든지 잡초 뽑기, 유치원 보수작업 등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었다. 단순한 봉사활동이라기 보단,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였을까, 마냥 즐겁기만 했다. 뜨거운 햇볕아래 지쳐버리기도 했지만. 처음해보는 삽질이 힘들지 않고 즐거웠던 건 언제 또 이런 걸 해보겠냐는 즐거운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력봉사도 있었지만, 문화 봉사도 있었다. 이 곳 흥안소학교에 다니는 조선족 아이들과 함께 놀고, 간단한 공연도 열리는 작은 축제가 벌어진 셈이었다. 기숙사에 머무는 아이들이랑 한번, 유치원 아이들이랑 한번, 두 번에 걸친 작은 축제에 참여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같은 동포라는 사실이 낯설지 않을 만큼 대화도 생각도 비슷했지만, 이렇게 떨어져서 다른 국적을 지닌 사람들로 지내는 것이 당연한 사실처럼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괜히 슬퍼졌다. 이 곳은 9월 달에 새 학년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흥안소학교에 머물렀던 기간 중에 흥안소학교의 졸업식 및 방학식이 열렸다. 각자의 사비로 졸업생들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했고, 학교 측의 배려로 졸업식 및 방학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식이 시작되고 중국의 국기가 올라가는 순간, 머리위로 손을 올리는 아이들을 보며 당황해버렸다. ‘아, 여기는 공산국가였지. 우리랑 다른 곳이지. 같은 민족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인데…….’

중국의 조선족을 돕기 위해 떠난다고 했을 때, 누군가가 그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돕지, 왜 돈 써가면서 국외까지 가냐고. 물론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민족이면서 한국이라는 국적을 가지지 못한 그 사람들을, 같은 민족인 우리가 돕지 않으면 누가 돕겠냐고 반문한다면, 대답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 있는 사람들이야, 얼마든지 상황이 될 때마다 도와줄 수 있다지만 그 사람들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중국에 살면서, 중국말을 하고, 중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한족이 아니란 이유로 중국의 중심에 끼지 못하는 사람들. 끊임없이 우리에게 ‘우리는 한민족입니다’를 외쳤지만, 우리가 너무 무심하게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기도 했다.

조금 특별한 우리민족을 돕기 위해 함께했던 32명의 모두에게 너무 고맙고,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마지막 날 정훈이 오빠가 그랬다. 이 소학교에 와서 조선족을 돕는 봉사활동도 중요하지만, 단체생활을 하면서 하게 되는 서로간의 봉사도 중요하다고. 서로에게 하는 봉사가 잘 이루어질 때만이 그 단체가 원하는 봉사활동도 잘 될 수 있는 거라고-


● 두 번째 이야기 - 문화탐방

짧은 문화탐방 동안 많은 것을 보고 오지는 못했지만, ‘중국’이라고 했을 때, 금방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을 보고 온 것 같다. 민족의 정기 백두산,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 천안문 광장, 황제의 사치 자금성, 기예라고 불리는 서커스까지.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이 있는 도문교. 중국, 북한 그리고 러시아 3국이 마주한 국경선에도 다녀왔다. 같은 공산국가들이면서도 삼엄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그곳에서 한없이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곳 국경선에서조차 같은 사상은 통하지 않고, 서로가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나라구나. 다른 사상을 가졌구나. 우리랑 다른 곳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100번 올라가야 5번 정도 볼 수 있다는 백두산을 우리는 한번 만에 보고 왔다. 운이 좋았던 탓인지, 열심히 봉사활동을 한 우리를 하늘이 알아주기라도 한건지. 백두산을 올라가는 내내 안개가 잔뜩 껴있어 불안하기만 했는데, 지프차에서 내려, 마지막 발걸음을 떼는 순간 빼꼼이 보였던 천지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책에서만 보던 TV로만 보던 천지가 내 눈 앞에 있다니, 그것도 자신의 모습을 환하게 드러낸 채로 말이다. 느긋하게 천지를 즐길 필요도 있었는데, 그저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진만 찍어버려 조금 아쉽기도 했다. 내려가기가 싫었다. 그냥 한없이 바라보고 싶은 천지를 뒤로 한 채 내려왔다. 우리민족의 얼이 살아있다는 곳을 다른 나라로 와야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만 느껴졌다.

북경에 가서 처음 갔던 곳은 만리장성. 또 다시 안개가 말썽이었다. 북경은 비도 잘 오지 않고 더운 날씨가 대부분이라 약간 습한 날씨가 활동하기엔 좋은 편이라고 하지만, 만리장성을 보기엔 꽝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안개에 가려 만리장성이 보이질 않았다. 마오쩌둥이 올랐다는 사나이의 길을 걸으면서 걷히지 않는 안개를 원망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걸까, 잠깐 내린 비 덕분에 만리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꿈만 같았다. 능선마다 굽이굽이 늘어진 만리장성이 정말 장엄하다 못해 소름끼쳤다. 저 많은 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파해야만 했는지, 진시황은 알아주기나 할까.

중국의 민주화가 시작된 곳이라는 천안문 광장. 천안문 광장이 우리나라에 있었더라면, 그리고 그 곳에서 월드컵 응원이 이루어졌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규모면에서는 중국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천안문 광장을 지나 천안문을 지나고 3개의 문을 지나면 자금성이 나온다. 자금성은 특정한 건물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성 자체를 통틀어서 자금성이라고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 자금성이 7여년 만에 만들어진 거란다. 우리나라 유적지를 보고 우습게 여겼다는 중국인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아기자기하고 아담한 그런 ‘美’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그들의 성이 만만해보이지는 않았다.


● Epilogue

중국이라는 대국을 느끼고, 멋진 언니, 오빠들도 많이 만들고 돌아왔지만, 막내의 역할을 잘 해냈는지는 모르겠다. 후회하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자는 게 매일의 목표지만 어쩐지 이번엔 후회가 된다. 좀 더 잘 할걸, 좀 더 알고 올걸, 혹시나 놓친 것은 없는지, 나도 모르게 소홀한건 없는지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된다.

12박 13일 동안 함께했던 사람들과 그 날들이 벌써 그리워진다. 알게 모르게 정이 들어버린 사람들. 글을 써내려가는 동안 몇 번이나 울컥했는지 모른다. 어떤 곳을 갔는지 뭘 느꼈는지를 쓰다보면, 그곳에서 했던 이야기, 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몇 번이나 멍하게 있었다. 글로만 표현하기엔 한없이 부족하기에 마음에 담아두기로 했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도록 가끔씩 열어보기도 할 생각이다.

제일 엄격하고, 제일 자상하셨던 장요선 선생님. 자부심을 가지라고 응원해주셨던 공일남 과장님. 언제나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윤병구 교수님. 언제 어디서나 제일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신 세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겁 없는 1학년 감당하느라 고생하셨던 29명의 언니, 오빠들. 고마워요.





[사설] 왜 읽고 생각하고 쓰고 토론해야 하는가? 읽는다는 것은 모든 공부의 시작이다. 지식의 습득은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식 정보를 수집해 핵심 가치를 파악하고 새로운 지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창출해 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읽기다. 각 대학들이 철학, 역사, 문학, 음악, 미술 같은 인문·예술적 소양이 없으면 창의적인 인재가 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고전과 명저 읽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교과 과정으로 끌어들여 왔다. 고전과 명저란 역사와 세월을 통해 걸러진 책들이며, 그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저자의 세계관으로 풀어낸,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하는 정신의 등대 역할을 하는 것이 고전과 명저라 할 수 있다. 각 기업들도 신입사원을 뽑는 데 있어서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에세이와 작품집을 제출하는 등의 특별 전형을 통해 면접만으로 인재를 선발하거나, 인문학책을 토대로 지원자들 간의 토론 또는 면접관과의 토론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등 어느 때보다 인문과 예술적 소양을 중시하고 있다. 심지어 인문학과 예술을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