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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편지] 가죽신과 그림자

20년쯤 전, 대구의 한 방송국에 있을 때 ‘남의 말 좋게 하자’는 캠페인을 본 적이 있다.

요즘 인터넷에 올라오는 악성 댓글들이 떠오른다. 그 당시야 인터넷이 없었지만 얼마나 남에 대한 악플이 많았으면 캠페인 제목이 ‘남의 말 좋게 하자’였을까.

정신의학자인 융은 shadow라는 말로 인간의 그런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 인간의 원형을 뜻하는 아키타입에 타인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감정, 즉 shadow, 그림자가 있다는 것인데

‘남의 말 좋게 하자’는 바로 그런 그림자에 대한 각성이 담겨있는 캠페인이었던 것 같다.

햇빛에 나가면 인간은 모두 그림자를 드러낸다. 그것은 마치 감추고 싶은 약점처럼 빛 속에 노출되면 길게 꼬리를 드리운다. 겉으론 아무리 점잖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햇볕에 노출되면 그림자가 드러나듯, 닦여지지 않은 인간의 마음속엔 남이 잘 되기보다 잘못되기를 바라는 감정이 숨어있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라는 말은 바로 shadow를 나타내는 오래된 속담 아닌가.

20년 전 일이지만 그때의 그 캠페인은 지금도 유용한 캠페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그림자를 만드는 햇빛을 몽땅 없앨 수는 없다. 거칠고 험한 땅을 걸어갈 때 발바닥을 다치지 않겠다고 땅 전체에 주단을 깔 수는 없듯이, 미운 감정이 든다고 해서 수많은 미운 사람들을 다 없앨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발바닥을 보호하기 위해선 땅 전체에 주단을 깔기보다 내 발 하나에 가죽신을 신기는 것이 수월하다. 마찬가지로, 미운 남들을 다 없애려 애쓰기보다 내 마음 하나에 가죽신발을 신기는 것이 경제적이다. 남이 잘 되면 시샘하고 시기하는 그 마음에 가죽신발을 신겨 보라. 세상 전체에 주단을 까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들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학교에서는 가죽신 신는 법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 신발 신는 법을 알고 있는 스승이 드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