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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열풍 유감

시간은 ‘오스트레일리아 데이’, 무대는 시드니의 달링 하버. 식전 행사로 배들이 퍼레이드를 벌이는 퍼몬트 다리 위도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화려한 식전 행사가 끝나고 마침내 기념식이 시작된다. 총리의 연설, 이 날의 유래 설명에 이어 세계 각국에서 호주로 이민 와 성공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다문화 시대에 어떻게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어울려 사는지에 대한 좋은 사례인데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다. 영어 실력이 모자라서?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크다. 바로 뒤, 어깨를 맞닿다시피 한 두 그룹의 수다 때문이다.

왼쪽은 중국, 오른쪽은 한국 젊은이들이다. 어학연수의 천국이라는 호주에 영어를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다. 다 들을 수밖에 없었던 한국 학생들의 대화 내용은 “O반에 있는 XX는 누구누구와 사귀고....” “00이는 몇 년을 어디에 있었는데 조금만 더 버티면 영주권을...” 표정으로 보아 중국 젊은이들의 대화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분위기와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의 낄낄댐은 폭죽이 터질 때야 비로소 멈춘다.

역시 어학연수 관련 일로 출장 나온 나는 비감한 느낌이 든다. 이 나라의 기원과 역사를 이해하고, 다문화 정책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격조 높은 영어 연설을 들을 기회가 지나가는데, 왜 남의 나라 국경일 행사까지 나와서는 현지인들의 눈총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떠들어대는 내용이 국내에서 떡볶이 사먹으며 하는 이야기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지.

얘들아, 너희들은 도대체 왜 여기 온거야?
호텔로 돌아오는 길거리. 중심가에 차이나타운이 있고, 그 주위로 한국인 노래방, 소주방들 역시 즐비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렇게 외국에까지 나와서도 우물 안의 개구리로 놀아서는 안 된다,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자세, 상대의 말을 더 잘 들으려는 노력이다’라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귀국하고 보니 이게 웬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영어교육 문제를 건드려 놓았구나, 그것도 제대로 말이다.

대통령님, 영어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먼저 인간을 제대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