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부가가치를 인정하는 취향 공동체와의 연결
가치소비에 익숙한 젊은 층에게 인기
중고거래도 새로운 시장, 정책과 법 등 시스템 재정립 필요
올해 5월 2일부터 16일까지 메타서베이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69%가 주 사용 중고거래 앱으로 뽑은 ‘당근’의 마스코트 ‘당근이’. 월간 순수 사용자 1800만의 당근은 ‘당신 근처’를 뜻하는 말로, 이웃끼리 중고거래가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고거래 앱이다.
중고거래 전문 플랫폼으로 출발한 당근마켓은 지난 8월 기준으로 누적 가입자 수 3500만 명, 월간 활성 이용자 수 1800만 명을 넘어서며 스마트폰 필수 앱 대열에 정착했다. 스스로 국민 생활 밀착형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고 선언할 만큼, 전 연령대, 전 지역에서 사랑받는 중요한 플랫폼이 된 것이다.
이 서비스의 성공 비결은 “중고거래”의 확장 가능성을 인지하고 극대화한 데 있다. “중고거래”의 원래 의미는, 중고물품, 즉 구매해서 “쓰던” 물품들 중에서 내게는 쓸모가 떨어진 물품들을 필요한 사람에게 증여하거나 저렴하게 되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이런 의미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오늘날 중고거래의 진짜 의미는 첫째, 산 것을 되파는 일, 즉 ‘리셀링’이다. 여기엔 ‘중고’의 개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가가치를 찾아내는 안목과 이 부가가치를 인정해 주는 특별한 취향 공동체가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 취향 공동체와의 ‘연결’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고, 당근마켓은 그 연결을 위해 ‘지역’ 단위의 탐색을 통한 발견과 그 발견 사이의 연결에 투자했던 것이다.
둘째, 현행법으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법 규정에서 애매하게 벗어난 시장에서의 거래다. 현재 중고거래를 통해 많이 거래되는 암표나 기프티콘, 할인 쿠폰 같은 것들은 발행 당시에는 ‘사용할 권리’로 바꿀 수 있는 증표였을 뿐, 사고팔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런 증표도 채권이나 주식처럼 부가가치를 붙여 파는 시장이 자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셋째, 새로운 시장과 그 안에서의 질서를 원하고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 자체가 시장이 되고 플랫폼을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 이 네트워크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구분되지 않는 비전문가들의 네트워크다. 물론 전문가, 세칭 업자들이 끼어들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좌우할 수는 없는 특별한 성격의 커뮤니티가 우선이다. 철저히 필요(취향 혹은 기호도 포함된)와 부가가치에 의해 형성되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필요를 넘어서 신뢰 자본이 바탕이 되는 이 커뮤니티는, 당근마켓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튼튼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중고거래라는 말에 다 담을 수 없는 이런 일종의 문화 현상은 새로운 정보와 발상에 민감하고 가치 소비에 익숙한 1030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일종의 ‘뉴트로’한 중고거래, 즉 변화된 삶의 패턴에 맞게 재탄생시킨 새로운 중고거래 시장을 만든 것이고 그를 통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만든 새로운 시장에서는 중고거래로 못할 것이 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것들은 교재라든가 족보가 공개된 강의의 리포트, 일부 커뮤니티에서 특정한 기간에 사용되는 일회성 물품들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옷이나 패션 소품들, 특정 시즌에만 구매할 수 있는 굿즈들이나 스마트폰, 노트북과 같은 전자기기들도 단골 거래 상품들이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주목하고 있는 명품 거래도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빛의 속도로 거래가 된다. 놀라운 것은 중고 자동차의 경우도 심심치 않게 거래가 된다는 것인데, 구매자는 보다 저렴하게 판매자는 중간 유통마진이 없어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다. 특히 이런 명품이나 자동차와 같은 상품들은 손쉽게 현금을 만들 수 있어 신용자산이 부족한 젊은 층들이 급전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고물가 시대에 주머니가 가벼워진 청춘들은 중고거래를 통해서 데이트도 즐긴다고 한다. 영화표나 공연 티켓, 운동경기 티켓 등은 이미 손쉽게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구매할 수 있다. 식사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의 기프티콘이나 할인 쿠폰 등을 구해서 해결한다. 이번에 당근마켓에서 특정 버거 프랜차이즈의 할인권이 날개 돋힌 듯 판매되었는데 실구매자들은 물론 웃돈 붙여서 다시 중고거래 플랫폼에 나타나 프랜차이즈 본사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시장의 기본 속성이 편법, 혹은 탈법적인 요소가 존재하기에 신뢰자본에 관심이 없는 사기꾼들에게는 부담없는 작업 공간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중고거래에서 사기 피해를 봤다는 사례들이 넘쳐난다. 악성 사기꾼들의 아이디와 이메일등이 공유되고 있지만, 여전히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은 계속 발생한다.
중고거래 플랫폼이나 관련 사이트에서는 다양한 보증 제도들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제는 금융앱까지도 이런 보증 제도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등 후속조치가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기준이 되는 법이 없고, 또 공공 기관들에서 이런 거래에 대해 적극적인 보호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중고거래’라는 이름 아래 이 새로운 시장을 가둬만 두면 안될 것이다. 항상 시스템과 법은 과거의 틀 속에서 미래의 삶을 제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격차를 고스란히 방치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격차가 클수록, 또 그 격차가 존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해자는 늘어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과 법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적 형편을 이겨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언제까지나 사기꾼들을 가려내는 부담까지 안겨놓고 방치하고 있어야 할까? 미래를 오늘로 당겨서 살려고 하는 청춘들을 보호하는 노력은 결국 미래를 더 앞당겨 현실화시키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된 중고거래의 현실을 파악하고 그 가능성을 예견하면서 이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그 몫은 청춘들의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