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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정비소] 일상 속 단어 ‘국민의례’, 그 진실의 민낯

일제 강점기 당시 천황을 숭배하던 의례의식에서 유래된 단어

“지금부터 국민의례를 거행하겠습니다.” 이 말은 각종 행사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지난 8월 15일,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도 여지없이 이 말이 쓰였다. 뿐만 아니라 3.1만세운동 100주년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올해는 유달리 크고 작은 기념식이 많아 이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러나 ‘국민의례(國民儀禮)’라는 말은 일제국주의 시대에 ‘궁성요배(천황이 있는 곳을 향해 경례), 신사참배, 기미가요(일본국가)의 제창 의식’을 가리키는 말이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듯 ‘한국의 애국가 제창, 국기에 대한 경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879년, 교토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출신의 목사인 고자키 히로미치(小崎弘道)가 세운 영남판교회(靈南坂敎會)의 『영남판교회100년사』에 따르면 “국민의례란 일본기독교단이 정한 의례의식으로 구체적으로는 궁성요배, 기미가요제창, 신사참배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민의례’의 구체적인 행동 강령을 보면, 1.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종이 울리면 회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동자세를 취한다. 2. 교직자가 입장한다. 3. 종이 멈추면 회중들은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궁성(천황이 있는 곳)을 향한다. 4. 기미가요(국가)가 연주되면 모두 허리를 구부려 경례 자세를 취한다. 5. ‘기미가요아요오와’까지 마치면 모두 바로자세를 취하고 수그렸던 윗몸을 바로 세운다. 기미가요 연주 중에는 출정군인, 상이군인, 전몰군인 및 유가족을 위해 그리고 대동아 전쟁 완수를 위하여 묵념한다. 6. 기미가요 연주가 끝난다. 회중은 궁성을 향하던 몸을 원위치 한다. 7. 교직자가 착석하면 회중도 착석한다. 8. 예배 개시 연주(찬송가)를 시작한다. 

 

 위 행동 강령만 봐도 ‘한국과는 무관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우리 겨레는 과거 일제로부터 쓰라린 침략의 역사를 겪었다. 그들의 쇠사슬에서 벗어나고자 숱한 선열들이 목숨을 바쳐 조국 독립을 쟁취해 내었다. 참으로 장한 일이다. 하지만 광복 74년째이자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면서도 우리말 속에는 겨레의 자존심을 구기는 일본말들이 요소요소에 똬리를 틀고 있다. 국민의례, 국위선양, 멸사봉공… 같은 말들이 그런 말들이다. 그렇다고 ‘국민의례를 하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쓰더라도 그 유래를 알고 쓸 일이며 가능하면 다른 말로 바꿔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말 속에 꼭꼭 숨어 있는 일본말을 청산하지 않는 한 ‘우리말의 독립’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