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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품은 골목, 대구골목투어 - 네 번째 이야기

남산 100년 향수길, 다양한 종교 문화가 길 위에 꽃피다


삼덕봉산문화길을 지나 이번에 찾아갈 곳은 마지막 코스인 ‘남산100년향수길’이다. 이 코스는 2.12km로, 골목투어 코스 중 가장 짧으며 대략 1시간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남산100년향수길은 대구의 주요 교통 요지인 반월당을 시작으로 해서 청빈한 삶을 살고자한 수녀들의 정신이 깃든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을 마지막으로 한다. 이번 코스에서는 대구가톨릭대 대신학원 이석주 팀장과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응집되어 있는 관덕정 순교기념관의 정길택 운영위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남산100년향수길을 걸으며 다양한 종교 문화를 접해보고 각각 어떤 역사적인 가치와 특징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 대구 주요 교통 요지, 반월당

10월 5일 방문한 반월당은 ‘동성로 축제’로 한창 떠들썩했다. 현재 반월당은 대구의 문화·교통의 요지로서 자리잡고 있었다. 반월당이 이러한 장소로 발전하기까지는 오랜 역사가 있다. 본래 반월당은 1936년 서문로에 있던 무영당과 함께 한국인에 의해 세워진 대구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처음 반월당은 학용품을 파는 10평 정도의 단칸 점포에서 시작했지만 사방이 트인 입지 여건 덕분에 2층 규모로 확장하면서 고급화장품과 수예품 등의 잡화를 판매하는 백화점이 되었다. 하지만 1937년 화재로 목조건물이었던 반월당 건물은 전소되었으며 재건을 통해 기능을 다시 회복하려 하였으나, 얼마 안 가 다시 화재가 발생해 결국 백화점으로서 기능을 잃게 되었다. 현재는 반월당이라는 이름만 남았지만 여전히 대구시민들에게 삶과 문화를 공유하는 중요한 장소로 남아있다.


● 대구 부처정신 실천의 중심지, 보현사

대구 남산동의 골목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부처 석상과 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건물은 1911년 당시, 절들이 산에 위치해 걸어서만 올라갈 수 있어 신도가 줄어들 것을 염려한 동화사가 산을 내려와 세운 포교당인 보현사이다. 절 이름은 중국 아미산에 지혜와 실천의 덕성을 상징하는 보살인 보현보살이 신성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에 기원한다. 보현사 내부 구조는 불전이 15칸, 법실 5칸, 향적실 5칸이다.

보현사에 위치한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대구지부 및 학생회·청년회는 이곳에서 부처님의 ‘자리이타’ 정신으로 사회의 투명한 통찰을 통해 이웃들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고 포교활동 및 노숙자들과 주변 무의탁노인들을 위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부처가 추구했던 자비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했던 현대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며 다음 코스로 발걸음을 돌렸다.


● 선조들의 순교 정신 메카,

관덕정 순교기념관

보현사에서 반월당역 19번 출구 쪽으로 몇 분 정도 걷다 보면 기와지붕을 한 높은 건물이 눈에 띈다. 이 건물은 관덕정 순교기념관으로, 이곳 관덕정에서 순교한 이윤일 요한 성인과 대구감영에서 옥사한 많은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개관시간은 월요일, 명절 연휴를 제외한 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로비가 있는 1층에는 조선시대 말기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치를 대표하는 척화비가 한국 성모자상과 함께 전시되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치로 인해 프랑스의 선교사와 많은 천주교 신자가 박해당했으며 그 일이 바로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병인박해이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신자들이 묵상과 기도를 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장소인 성당과 많은 유해들이 전시되어 있는 유해전시실을 볼 수 있다. 성당에서 나와 바로 앞쪽으로 보이는 장소는 순교전시실로, 대구에서 순교한 17인의 영정과 대구대교구 내 순교자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2층에는 경상도 지역의 천주교 도입과 순교 현장을 전통인형으로 재현해 전시해놓은 인형전시실과 대구 순교자 관련 책자, 유물 등을 볼 수 있는 사료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3층으로 올라가면 대구교구의 초대 교구장인 드망즈 주교의 말씀과 이윤일 성인의 일대기를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나볼 수 있다.

정길택(관덕정 순교기념관·운영위원) 씨는 “저희 기념관은 우리나라의 천주교 역사를 몸소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영남지역 제일의 순교지”라며 “박해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종교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본받으며 관람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 조선시대 사설교육기관, 상덕사

남산동의 인쇄골목 옆길을 따라가보면 낮은 담장의 멋스러운 단청이 보인다. 제사 등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외부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서원·사·향교의 특성상 상덕사 또한 평소에 출입할 수 없다. 상덕사는 조선시대 사설교육기관으로 상덕사 내에 위치한 문우관(文友觀)은 논어에 나오는 君子 以文會友 以友補仁(군자 이문회우 이우보인)말에서 따왔으며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을 돕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선 현종 12년에서 영조 2년까지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이숙과 유척기, 두 사람의 어진 덕을 기려 1682년 대구 중구에 상덕사가 세워졌다. 하지만 1909년 일제가 각 지방에 설치한 통감부의 지방기관인 이사청의 신축공사로 상덕사를 헐면서 현재의 장소로 옮기게 되었다. 문우관 관계자는 “1918년 조선말기 유학자인 채헌식이 상덕사 동쪽 곁에 문우관을 짓게 되었습니다. 문우관은 선비 양성과 유학 증진을 도모하며 일제하에 민족적 전통의 회복을 추구했던 채헌식을 비롯한 여러 유생들에 의해 관리되었고 그 정신을 이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문화재 속에 담겨있는 옛 조상들의 정신이 상덕사에서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 사제 양성의 요람, 성유스티노신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유스티노캠퍼스 입구로 들어가 운동장 쪽으로 걷다 보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성당 건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이 바로 성유스티노신학교이다. 한국의 두 번째 신학교로 개교한 성유스티노신학교의 초대 교구장인 드망즈 주교는 세계 각지의 유지들에게 건립 후원자가 되어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던 중 1912년 11월 상해에 거주하는 익명의 후원자가 성 유스티노를 주보성인으로 모셔주길 원하면서 2만5천 프랑을 보내왔는데, 그리하여 신학교의 명칭이 ‘성유스티노신학교’가 되었다.

1914년에 개교한 성유스티노신학교는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아 기념관이 개관됐다. 100년 전 건물의 흔적을 재현함과 동시에 성유스티노신학교의 정신과 가치를 담은 기념관은 유스티노 홀, 드망즈 홀, 앗숨 홀, 옴니아 홀 등 4개관으로 이루어져있다.

유스티노 홀은 신학교의 건축 및 설립 배경을 전시해놓은 곳으로, 1911년 서상돈의 부지 기증, 상해 익명의 신자 기부, 드망주 주교의 세계 각 지역을 대상으로 한 모금활동 등 신학교 설립의 초석이 된 이야기를 알 수 있다.

드망즈 홀은 드망즈 주교의 생애를 전시해놓은 곳으로, 1898년 주교의 한국 입국 이후 초대 대구대목구장으로의 임명, 주요시설 건립, 성직자 양성교육 등 주교의 생애를 보여주고 있다.

앗숨 홀은 성유스티노신학교의 학제를 전시해놓은 곳으로, 성유스티노신학교가 배출한 67명의 사제, 역대 교장, 교수 신부, 재개교 후 역대 이사장과 원장신부, 신학생들의 학제 변화 과정 등을 알 수 있다.

옴니아 홀은 재개교와 100년 비전을 전시해놓은 곳으로, 1945년 폐교, 1982년 선목신학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교하기까지 신학교의 역사를 한국교회사 속에서 재조명하고 현재 모습과 함께 전시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역사 연표 및 사진자료 등의 기록물들을 전시해놓았다.


● 신자들의 신앙 안식처, 성모당

성유스티노신학교와 마찬가지로 대구가톨릭대학교 유스티노캠퍼스 내에 위치하고 있는 성모당은 1918년에 세워진 천주교 건물이다. 네모난 건물에 앞쪽 중앙부가 아치형으로 되어있어 처음 볼 때 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건물은 성모 마리아를 기원하기 위해 만든 성당이다. 성모당 안쪽을 보면 동굴 암벽 사이로 흰색 마리아상이 보이는데, 방문하면 신자들이 모두 마리아상을 향해 기도 명상을 해 전체적인 분위기가 엄숙하다.

대구교구의 초대 교구장인 드망즈 주교는 주교관·신학교·성당 건립이 계획대로 이루어지게 되면 루드르에 있는 성모 동굴 모형대로 성모 마리아께 봉헌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 후 동료 선교사의 병이 낫게 해달라고 다시 한 번 성모께 기원한 드망주 주교는 기원대로 이루어지자 성당 완공에 앞서 성모당 건립을 추진해 1917년 7월 31일에 현재 위치에 터를 잡고 1918년 8월 15일 완공했다.


● 수녀들의 살아있는 발자취,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성모당이 있는 유스티노캠퍼스를 나오면 바로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이 모습을 보인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은 1927년 초대 대구교구장인 드망즈 주교가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코미넷관 우측면의 아케이드에서 북쪽으로 이어 증축한 건물이다. 화려함 없이 깔끔한 외관은 단정한 수녀의 이미지와 많이 닮아있다.

샬트르트성바로오수녀원 내 역사관은 수녀들의 100년 간의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특히 보육사업, 교육사업, 의료사업에 힘썼던 수녀들의 노력들이 자료들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또한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은 앞서 다녀온 성모당과 함께 건축학적으로 인정받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대구 중구 문화재 관계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들은 1900년대 초의 성당 건축 구조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호에서는 다양한 종교의 정신이 깃든 ‘남산100년향수길’을 걸어보았다. 종교역사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은 이번 투어를 통해 선조들의 희생정신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인터뷰1 - 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 이석주 팀장

"성유스티노신학교, 국내 두 번째 개관한 신학교로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해"


성유스티노신학교의 역사

성유스티노신학교는 1914년에 개교하여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전통 있는 가톨릭 사제들의 교육장소입니다. 1911년 대구대목구가 설정되면서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된 드망주 주교님이 교육사업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짓게 된 신학교이죠. 일제의 압박으로 신학교 건물을 일본군에게 강제로 빼앗기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서까지 수업을 듣는 선조들의 열정 덕분에 해방 후 다시 학교를 이어나갈 수 있었고, 그러한 선조들의 정신은 오늘날까지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이름으로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성유스티노신학교의 가치

우리 성유스티노신학교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개관한 신학교로서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합니다. 또,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되기 전까지 67명의 사제를 배출하며 한국천주교회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선진대학교육의 틀을 갖추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에도 근대화의 격량을 거치면서 성유스티노신학교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받아 다시 문을 연 선목신학대학은 지금의 대구관구 사제양성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또한 성유스티노신학교 건물은 건축양식이 유럽 중세 시대에 유행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용된 것으로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학생 또는 시민들에게

이번 성유스티노신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건물 자체를 기념관으로 만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지난 100년의 신학교 역사를 되돌아보고 선조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배워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2 - 관덕정 순교기념관 정길택 운영위원

"이곳을 찾는 신자들과 함께 묵묵히 선조들의 순교정신 지켜나갈 것"


관덕정 순교기념관 소개

우리 관덕정 순교기념관은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1년에 세워졌습니다. 또한 관덕정에서 순교하신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를 지하 성당 제대 아래에서 모시고, 가톨릭 선조들의 유물을 전시하면서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는 곳입니다. 꼭 관람하길 추천하는 것은 지하에 있는 성인, 성녀, 복자의 유해를 전시해놓은 유해전시실과 1층 로비로 들어오면서 보이는 척화비, 그리고 2층에 전시되어있는 황사영 백서입니다. 기념관을 직접 방문하여 각 전시실에 소개되어있는 설명을 보시면서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시기를 추천합니다.


관람 시 가져야 할 자세

일단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이므로 엄숙한 자세로 관람을 해야 합니다. 여러 수모와 박해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함께 느끼며 공감할 수 있는 열린 자세도 중요합니다. 천주교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의 역사와 그 맥을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꼭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선입견을 버리고 우리 기념관을 찾아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펴보며 지금 현재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보는 시간도 가져보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저희는 지금처럼 이곳을 찾는 신자들과 함께 묵묵히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때로는 신자들의 마음에 안식처로, 때로는 신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교육의 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시리즈를 마치며

‘남산100년향수길’을 마지막으로 ‘역사를 품은 골목’ 여행이 끝났다. 처음 기획했던 취지대로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대구의 골목들을 걸으며 대구의 매력을 느꼈다. 이번 기획시리즈에 다룬 각 코스를 독자들이 직접 걸어보며 골목골목마다 녹아있는 이야기들을 몸소 배우며 느껴보기를 추천한다. 바쁘고 복잡한 도심 속에서도 편안하고 사람냄새 나는 골목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