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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품은 골목, 대구골목투어 - 첫 번째 이야기

경상감영길, 일제의 아픔을 딛고 대구관광의 중심이 되다


아무리 개발된 도시라 해도 작은 골목들까지 똑같이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골목은 그 지역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구도 마찬가지로 대구의 역사와 시민들의 생활이 골목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대구시 중구와 시간과 공간연구소는 시민들이 골목을 좀 더 쉽고 편리하게 찾고 즐길 수 있도록 ‘대구골목투어’를 기획해냈다. 이번 취재를 통해 여러 전문가들과 대구골목투어를 떠나 대구의 매력을 느껴보고, 골목마다 녹아있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이번 호에서는 윤순영 중구청장과 대구골목투어 최초 기획자인 권상구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와의 만남을 통해 골목투어의 첫 단추를 끼워보고, 대구의 역사를 차근차근 짚어나가보려 한다.

첫 번째로 걸을 ‘경상감영달성길’은 대략 3.25km로 탐방하는데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이 길은 경상감영공원을 시작으로 북성로를 지나 달성공원을 종착점으로 하고 있다. 경상감영달성길의 주요 장소를 소개하며 그 속에 숨어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씩 배워가도록 하자. 지금부터 과거로의 시간여행 시작!


● 경상권 행정·사법의 중심지, 경상감영공원

골목투어 1코스의 첫 번째 장소인 경상감영공원에 들어서면 푸른 숲과 한옥이 어우러져 마치 사극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하다. 옛 경상감영의 터를 보전하기 위해 조성된 이 공원은 1970년대에 만들어져 초기에는 ‘중앙공원’으로 불리다가 1997년에 ‘경상감영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공원을 투어하다 보면 바쁘고 복잡한 도시 생활에 지친 시민들이 여유롭게 쉬어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경상감영공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상감영’이라는 역사적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경상감영은 조선시대 지방 행정 8도체제하에 경상도를 관할하던 감영이다. 경상감영은 조선 초기에는 경주에 있었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며 군사적 요충지로 주목받은 대구로 옮겨졌다. 경상감영은 관청유적으로 대구가 영남지역의 수도임을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재다.

김희석(대구시청·관광문화재과·문화재기획담당) 선생은 “경상감영 안에 있는 선화당과 징청각은 경상감영 당시 중심 역할을 했던 건물로써 각각 대구시 유형문화재 1,2호로 지정돼있습니다. 경상감영이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그곳이 경상도의 행정, 사법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문화재인 선화당과 징청각이 일제강점기 시대에 훼손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건물의 지붕 쪽을 보면 시멘트로 보수한 부분을 볼 수 있는데 일제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 대구 역사 돋보기, 대구근대역사관

경상감영공원에서 걸어 나오다 보면 주변 한옥 건물들과는 다른, 독특한 양식의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이곳이 바로 대구근대역사관이다. 입구로 들어가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가면 연표나 사진, 글 등을 통해 대구 근대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1932년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조선을 수탈하기 위해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을 건립했다. 해방 이후 1945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하던 건물을, 2008년 대구도시공사가 사들여 대구시에 기증하였고 2011년 1월에 대구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대구근대역사관은 어쩌면 일제의 잔재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원형을 보존해서 지켜나가는 이유에 대해 장원태(대구문화예술회관·예술지원과) 선생은 “현 대구근대역사관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건물은 맞지만 당시 기준으로 200년이나 앞선 건축기법을 보여준 건물입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형미가 뛰어나고 건물 원형이 잘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아 2003년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될 만큼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자산이기도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 북성로 재발견의 시작점, 공구박물관

공구골목을 걷다 보면 많은 공구사들 사이로 특이한 일본식 건물이 눈길을 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공구들이 빽빽하게 놓여있다. 김기홍 공구박물관 해설가는 “1층에 전시해 놓은 것들은 베트남전과 6·25때 쓰던 무기들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기술자의 방과 창고 등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삼덕상회로부터 70%를 기증받아 그대로 재현해놓은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전쟁의 역사가 그대로 묻어나는 공구박물관은 소외되었던 북성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일제 시대 때 북성로는 최고의 상권지역이었으나 해방 이후 북성로는 일제 시대 때의 모습들을 덮기 위한 마구잡이식 불법증축과 싼값의 내·외관 마감으로 인해 건물의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그런 북성로를 재발견하고 되살리기 위한 시도로서 공구박물관이 생겨난 것이다.

북성로 발전에 앞장선 권상구 이사는 ‘북성로스러움’을 되살리는데 목표를 두었다. “북성로가 타임캡슐로써 남아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현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직접 느끼고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죠”라며 창의 인력들이 북성로에 모여들어 직접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문화·예술의 공간, 경찰 역사 체험관

특이하게도 경찰 역사 체험관의 위치는 중부경찰서 안이다. 처음 중부경찰서에 발을 딛을 때 ‘경찰서’의 위압적인 모습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경찰 역사 체험관을 둘러보는 순간 긴장감은 한순간에 풀린다.

경찰 역사 체험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고 다양한 경찰의 역사와 문화자료를 접할 수 있다. 1층에는 추모관, 복식전시관, 체험관이 마련돼있으며, 2층에는 영상관, 역사관, 무기류전시관 등이 있어, 경찰의 역사를 눈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경찰 역사 체험관은 대구 도심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근대역사 문화벨트 구축사업’과 연계해, 중부경찰서 직원들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것이다. 위압적으로 인식되는 경찰서가 역사문화자료 전시와 체험 장비를 갖춤으로써 문화·예술과 어린이 교육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권위주의적이었던 과거 경찰의 모습을 탈피하고 대구 시민들과 원활히 소통하려는 중부경찰서의 노력이 돋보인다.


● 생명문화재 노거수, 최제우나무

종로초등학교를 방문한 날, 비가 내렸다. 운동장을 둘러싼 나무들은 비를 맞으며 생기 있는 숨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회화나무 한 그루가 눈에 보인다. 이 나무는 수령 400여년 된 큰 회화나무로 최제우 선생이 옥살이하다 생을 마감한 곳이라 하여 이름을 최제우 나무라고 붙였다.

최제우나무와 같은 역사노거수 지정에 앞장선 이정웅(전 대구시청·공원녹지과장) 선생은 도시개발로 나무가 많이 베어지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나무를 보호할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역사 속의 인물과 나무’라는 것을 기획하였다. “노거수는 생명문화재라고 생각합니다. 그 나무가 오랫동안 비바람을 견뎌내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억하니까요. 저는 나무가 보고 느꼈던 것을 스토리텔링하여 현시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보호할 가치가 있는 노거수를 지정해 사회적으로 존경할만한 인물과 관련시켜보았습니다”


● 일제가 낸 대표적 생채기, 달서문

달서문은 1906년 친일파 박중양이 일제의 도로건설을 돕기 위해 허문 대구읍성의 서쪽 문이었다. 지금은 작은 표지석만 남아있어 쓸쓸한 느낌만 든다. 대구읍성은 1590년 대구에서 최초로 지어진 석성이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상징성을 띈다.

현재 허물어진 대구읍성의 흩어진 성곽돌을 찾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대구읍성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전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영권(대구가톨릭대·지리교육학·교수) 교수는 “이미 읍성이 허물어져 복원은 못하지만 잘못된 역사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곽돌을 통해 학생들 및 시민들에게 대구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알려주어, 우리의 정체성을 찾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인의 상업적인 이유에 의해 무너진 대구읍성은 우리의 아픈 역사의 일부이다. 표지석 앞에서 대구읍성의 역사에 대해 되짚으며 한참이나 가만히 서있었다.


● 사라지지 않은 민족혼의 장, 달성공원

일제는 1905년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달성을 공원화했다. 달성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화재는 관풍루이다. 관풍루는 감사가 높은 곳에서 민심을 살피기 위해 지은 것이다. 김희석(대구시청·관광문화재과·문화재기획담당) 선생은 “관풍루는 경상감영의 정문으로 세워졌으나 일제강점기 당시 교차로를 내면서 달성공원으로 이전한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관풍루 이외에 살펴볼만한 문화재가 있다면 서침나무를 들 수 있다. 강판권(사학·부교수) 교수는 “서침 나무는 ‘서침 학자’를 기리는 나무입니다. 달성 서씨 문중에서 토지를 국가에 헌납하자 이를 포상하려 했지만 ‘서침’은 그 대신 국가에서 서민의 환곡을 탕감해줄 것을 건의했습니다. 이러한 서침의 선비정신을 기려 ‘서침나무’라 이름을 붙였지요”라고 설명했다.


시리즈 첫 번째 순서로 경상감영공원부터 달성공원까지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가 남아 있는 장소들을 찾아가보았다. 다음 호에서 만나볼 골목은 ‘근대문화골목’이다. 근대문화골목은 대구의 근대화된 과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동산선교사주택을 시작으로 계산성당, 종로 등을 거쳐 화교협회로 이어진다. 다음 호에서 또 다른 기억을 가진 길을 만나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저는 직접 골목을 만나면서 무엇인가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았고..."
대구 중구청●인터뷰1 - 대구골목투어 공동대표 윤순영 중구청장


대구 골목에 대해 관심 갖게 된 계기

2002년 월드컵 경기가 한창때였습니다. 그 무렵, 이상화 고택은 소방도로 개설로 인해 철거될 상황에 처해있었죠. 대구시는 우리의 역사문화재인 이상화 고택이 사라지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어 이상화 고택 살리기 운동을 진행하였고 저와 이상규(경북대·국어국문학·교수) 교수, 공재성(전 대구 MBC 국장) 씨가 함께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직접 골목을 만나면서 무엇인가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았고 이러한 가능성을 대구의 시민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골목투어코스 창안 배경

골목투어는 관광의 불모지로 인식되었던 대구의 도심에 역사문화자산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골목투어’ 프로그램은 중구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골목투어는 도심 속 골목이라는 인간적인 환경을 배경으로 옛 도심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날줄 씨줄로 엮어냄으로써 최고의 관광지로 자리잡았습니다. 대구 골목에는 우리 삶의 희노애락이 녹아있고, 생생한 역사 이야기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대구 골목의 의미와 지향점

골목은 한 도시가 변화해온 과거의 시간 동안 사람의 생활사가 고스란히 집약된 곳입니다. 지금도 과거의 생활사가 현재진행형으로 우리의 생활공간에 맞닿아있지요. 골목투어를 하면서 우리의 잃어버린 소박한 행복의 정서를 다시 찾고, 거리의 삶과 골목의 삶을 교류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감동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가 교과서가 아닌 도시 안에 있다는 점이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권상구 씨●인터뷰2 - 대구골목투어 최초 기획자 권상구 이사


골목투어를 기획하게 된 취지

처음 골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교 때입니다. 선배와 약전골목 주변을 걷던 중 3대째 운영 중인 약방을 봤습니다. 3대라는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장소에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한 거잖아요. 이것이 바로 ‘역사’인데, 역사가 교과서가 아닌 도시 안에 있다는 점이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그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탐문하며 골목지도를 그림으로 그렸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워 ‘골목투어’라는 것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대구골목투어만의 차별화된 매력

가장 관광지스럽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매력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느끼고자 하는 감흥을 차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구골목투어는 그런 점에서 다른 관광지들과 차별화됩니다. 관광지스러움보다는 시민들이 사는 그대로를 살린다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목표였으니까요. 도시 안에서 관광지가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것이 대구골목투어만의 매력입니다.


어떤 관광지로 알려지길 원하는지

대구 스타일이 가장 잘 나타나있는 관광지로 알려지길 바랍니다. 촌스러움과 쾌적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대구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어요. 대구가 가진 보수성이 한 장소를 쉽게 바꾸지 못해 골목도 오래둡니다. 그 보수성이 전통적인 자기 문화를 보존하려는 의지로 변해 대구가 한국에서 특정한 포지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